리라책읽기

어른 노릇 사람 노릇/박완서

헤븐드림 2010. 7. 19. 22:31


 
 
 


작가의 생활 속에 문학세계와 철학관이 스며들어 있는 에세이집이다. 작가는 일제시대를 거쳐 8·15 해방과 한국전쟁, 4·19의거와 5·16 쿠데타에 이은 군사정권을 겪은 육십 대이다. 작가는 자신이 마치 오백 년을 산 것 같은 체험의 부피 때문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요즘 세대와의 괴리감과 작금의 경제 파탄에 따른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밑거름이 된 육십 대의 운명적 이중성을 밝히고 있다. 

그러고 나서 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넉넉한 마음뿐이라는 성찰이 설득력 있게 담겨 있다. 전쟁 때 없는 양식도 나누어 먹던 그 넉넉한 마음이 아니었으면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느냐고 작가는 회상한다. 빛나는 이십 대가 되었을 때 불행하게도 동족끼리 필살의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정통 한국전쟁 세대로서, 역사의 주역이라고는 뼈 빠지는 고생으로 가난을 극복한 일밖에는 없는 육십 대로서,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은 어떠해야 하는지 작가 특유의 거침없고 진솔한 필치로 쓰여 있다.

朴婉緖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게 되었고 이는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훗날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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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디에

운명적 이중성
아름다운 미수연
용서하되 잊어버리진 말자
충신과 친구
그들은 지금 어디에
소를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지금 우리의 심정
넉넉해지기
수의 유감
말이 먼절까? 병이 먼절까?
아무것도 안 달라진 여름

내가 꿈꾸는 죽음

나의 문학과 고향의 의미
『미망』을 위한 변명
내가 꿈꾸는 나의 죽음
시골집에서
야다리와 구름다리
나의 어머니
종이와 활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나의 웬수 덩어리
진드기의 시간
생각나면 그리운 땅 - 섬진강 유역
박수근 30주기전을 보고

어린것의 손을 잡고

요원한 간극
상전들
나는 나쁜 사람일까? 좋은 사람일까?
생각을 바꾸니
잔소리꾼 할머니가 손녀에게
되돌아온 말
교감
공감의 즐거움
집 없는 아이
귀뚜라미 소리를 반기며
아들의 부모 노릇

전 세계적으로 감원 바람과 경기 침체가 지속되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뉴스를 볼 때마다 연일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식들이 자주 전해진다. 제2의 IMF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IMF 때보다 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더욱이 시절이 하 수상한 까닭에 기쁜 일이 생겨도 일단 의심부터 하고 드는 요즘 시대에 편안히 기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때에 IMF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앞에서 출간되었던 작가 박완서의 산문집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의 장정과 표지 디자인을 새롭게 해서 만든 이번 책은 여러 모로 의미가 깊다. 첫 출간 당시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전해주었던 이 책은 오늘날에도 담담하고 든든한 위안으로 다가선다. 그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경제 상황, 부정부패에 이은 사건 사고들, 물질에 집착함으로써 드러나는 현대인의 이기주의 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각박한 현실이 되어 우리들을 옭죄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책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 말의 울림과 깊이 역시 더욱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일제시대, 6·25 전쟁 등을 겪으며 한 시대를 관통해 왔던 노작가가 오늘날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지혜와 성찰을 들려주는 이 책에는 세대 간의 이해와 화해의 길도 담겨 있다. 작가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세대 차이에서 오는 단절과 소통 불가라는 현상을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사색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 역시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자기보다 윗세대나 혹은 아랫세대에게 어떠한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모든 경제,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우리 각 개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어떠한 ‘노릇’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일상에서 겪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끌어들여 그 속에 자신이 생각하는 어른 노릇과 사람 노릇을 담담히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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