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피신
1-12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동방박사의 경배
[1-3절]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주전 40년부터 주전 4년까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서 유다 땅을 다스렸던 헤롯 왕(헤롯 대왕) 때에, 예수께서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그가 탄생하셨을 때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축하하고 그에게 경배하기 위해 그의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왔고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은 그들의 말을 듣고 소동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셨다. 이것은 구약 예언들의 성취이었다. 구약성경은 메시아께서 다윗의 왕위를 잇는 왕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사야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 . .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레미야 23:5,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에스겔 34:24,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호세아 3:5,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 . .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4-8절]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자, 그들은 미가 5:2로 대답했다. 거기에는 유대 땅에 베들레헴이라는 마을에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모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메시아의 출생지에 대한 성경 예언을 잘 알고 있었으나, 동방박사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경배하러 간 것 같지 않다. 그들의 지식은 생명이 없는 지식이었다. 참 믿음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고 마음의 순종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를 사랑하고 사모하며 그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헤롯은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말했다.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그러나 헤롯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를 경배하려 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고 보인다.
[9-12절]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동방에서 보던 별은 박사들을 앞서 인도하였고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다. 그들은 별을 보고 심히 크게 기뻐하였고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아기 예수님은 아마 마굿간의 구유에서 집으로 옮겨졌던 것 같다.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동방’ 곧 먼 이방나라에서 왔다. 그들은 믿음의 환경에서 자란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별에 대한 적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별에 이끌리어 먼 길을 여행하였고 아기 메시아를 찾는 열심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그의 모친과 함께 한 집에 계신 아기께 경배하였고 준비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귀한 예물도 드렸다.
이스라엘 나라 지도자들은 경건한 전통에도 불구하고 죽은 형식적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나, 동방박사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지한 열심이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그런 경건과 열심을 가지고 그렇게 먼 길을 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신 기이한 일에 놀랄 뿐이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 구약성경은 메시아께서 왕으로 오실 것을 예언하였다(사 9:6-7; 렘 23:5; 겔 34:24; 호 3:5). 유대인의 왕이신 그는 만왕의 왕이시며 교회의 머리와 주님이시다. 그는 지금 우리의 심령을 다스리시며 또 온 세상을 다스리신다. 우리는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동방박사들에게 은혜를 주셨다. 그는 유대 땅의 왕이나 종교지도자들에게 주지 않으셨던 은혜를 그들에게 주셨다. 그는 오늘날도 그가 원하시는 자들에게 환경을 초월하여 긍휼과 구원을 베푸신다. 우리가 다 그런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감사함으로 구주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가장 귀한 예물을 구주 예수님께 드려야 한다. 동방 박사들은 먼 곳에서 찾아와 아기 예수께 경배했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예물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그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한다.
13-23절, 아기 예수님의 피신과 성장
[13-15절]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동방박사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고 말했다. 요셉은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다.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호 11:1)을 이루려 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옛 시대에 꿈을 사용하여 그의 뜻을 알리셨다. 요셉이 마리아와 조용히 절교하려고 생각하였을 때에 주의 사자는 꿈에 나타나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 그를 데려오라고 말했었다(1:20). 주의 사자는 꿈에 동방박사들에게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지시했었다(2:12). 그는 또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일어나 애굽으로 피난하라고 하였다(2:13). 또 그는 헤롯이 죽은 후에 꿈에 나타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였고(2:19), 또 꿈에 요셉 가족이 나사렛 동네에 거주하도록 지시하였다(2:22).
하나님께서는 법적 부친인 요셉으로 하여금 아기 예수님과 그의 모친을 위한 보호자의 역할을 하게 하셨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황금 예물은 요셉 가족의 도피생활을 위해 유용했을 것이다. 실상, 세상의 모든 은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16-18절]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들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남자아이들을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다. 그래서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베들레헴에서 1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까지)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다.
헤롯이 박사들에게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2:8)고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유대인의 왕인 메시아가 자기 아들들의 왕위를 위태하게 한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박사들이 그에게 알려주지 않음으로 그의 은밀한 계획이 실패했을 때, 그는 베들레헴 부근의 2살 이하 남자아이들을 모두 죽이는 큰 악을 노골적으로 저질렀다. 사람은 참으로 악하다. 그의 통치연대가 주전 4년에 끝나는 것을 보면, 헤롯은 이런 악을 행한 후에 죽은 것 같다.
[19-23절]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또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서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고 말했다.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아켈라오(헤롯 아켈라오, 주전 4년-주후 6년)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했고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살았다. 이것은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었다.
나사렛(나조라이오스)은 구약성경의 나실인(히브리어 네지르, 헬라어 나지르나 나제이라이온, ‘바쳐진 자, 구별된 자’)이나 ‘가지’(히브리어 네체르)(사 11:1)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실인 중에 나실인이시며, 이새의 뿌리에서 난 한 ‘가지’이시다.
나사렛 마을은 시골 벽촌이었다. 예수님은 시골 사람이셨다. 그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셨다. 거기서 그는 약 30년을 사셨다. J. C. 라일의 말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이 어디에 사느냐보다 그가 어떠한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다.” 사람의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됨됨이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악인들은 악한 일들을 계획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과 백성들을 위해 비상하게 개입하시고 그들을 보호하시고 위태할 때는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 적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전까지는 그러하다. 그의 뜻을 좌절시킬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만세 전에 작정하신 바를 다 이루시는 자이시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룬 후에는 죽음도, 순교도 가능하지만, 그 전에는 결코 헛된 죽음이 그에게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며 그가 이루시는 일을 바라보며 참고 기다려야 한다.
둘째로, 이 세상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을 짓밟고 죽이기도 하는 악한 세상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 비록 이 세상은 그러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는 이기적이게 악하게 살지 말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질투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전 13:4-5). 참된 신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고난 받으심을 본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성육신(成肉身)은 그의 가난해지심이었다. 그는 본래 부요하신 자, 곧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의 신성의 영광과 부요는 참으로 컸다. 그러나 그는 자발적으로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다(고후 8:9). 그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셨다. 마리아는 그의 탯줄을 따뜻한 방이나 병원에서가 아니고 쌀쌀했을 마굿간에서 끊었다. 얼마 후 요셉은 가난한 자가 드리는 제물인 비둘기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다. 그는 한 시골에서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자신을 감추셨다. 그는 평생 집이나 나귀를 개인 소유로 갖지 않으셨다. 그가 때때로 시장하셨던 것을 보면 드실 음식이 늘 준비된 것 같지도 않다. 마침내 그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우리는 그의 낮아지심과 가난해지심으로 말미암아 구원과 부요함 즉 부활과 영생을 얻었다. 죄로 인하여 허무하고 비천하고 무가치했던 우리, 벌레와 같았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기도할 줄 몰랐던 우리가 기도하는 특권을 얻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자들이 되었고, 천국 기업을 상속받는 자들이 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한다.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선전하는 것은 세상 사람의 모습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모습은 아니다.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고 감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쓰실 때까지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만 높이고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