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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장-3장

헤븐드림 2021. 7. 22. 04:33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한 권의 책으로 간주된다. 느헤미야의 저자 느헤미야이다. 본서에는 ‘내가,’ ‘나의,’ ‘나를’ ‘나에게’ 등 일인칭 대명사가 약 114회 사용된다. 그것은 본서의 저자가 느헤미야 자신임을 잘 증거한다. 본서의 주요 내용예루살렘 성곽 재건(1-7장)과 회개(8-13장)이다. 또 본서의 특징적 진리는 하나님 백성의 순결성이다. 그들은 이방인과의 연혼 금지와 안식일 성수와 십일조 규례를 실천하였다.

 

 

 

 

1장: 느헤미야의 기도

[1-4절]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기슬르월(종교력 9월, 민간력 3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燒火)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본서는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감동 가운데 본서를 썼다(딤후 3:16). 그는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기슬르월에 수산궁에 있었다고 말한다. 원문에는 ‘아닥사스다 왕’이라는 말이 없으나 2:1에 의하면, 제20년은 아닥사스다 왕 제20년을 가리켰다.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연대는 주전 464-424년경이었으므로 제20년은 주전 445년경이었다. 느헤미야는 왕의 술 관원이었다(11절).

그가 수산궁에 있을 때, 그의 형제 중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왔다. 그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었다. 그들은 그에게 포로생활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부서진 채로 있었고 성문들은 불탄 채로 있었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약 140년, 바벨론에서 돌아온 지 약 92년의 세월이 흐른 때이었으나 그러하였다.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것은 그가 어떻게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성을 사랑했는지를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성은 구약교회이다. 느헤미야는 구약교회를 사랑하였다.

[5-7절]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케세드)[자비]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5-11절은 느헤미야의 기도이다. 우선, 그는 회개의 기도를 올렸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언약을 지키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자라고 말하였다. 또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주야로 기도한다고 말하며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고 하나님을 향해 심히 악을 행했음을 고백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그의 심정은 뜨겁고 간절하였다.

[8-9절]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는 또 레위기 26:40-45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자비와 예루살렘의 회복을 구하였다.

[10-11절]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救贖)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라카밈)[긍휼]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느헤미야는 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입은 백성임을 고백했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은혜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회복을 구하였다. 오늘날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혜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긍휼의 도우심을 감히 기대한다. ‘이 사람’이라는 말은 아닥사스다 왕을 가리킬 것이다. 그때 그는 왕의 술 관원이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분명한 목표와 내용이 있었다. 그는 왕 앞에서 긍휼을 입어 그의 고국의 예루살렘성을 재건하기를 소원하였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느헤미야는 포로생활을 면하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유다 백성이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예루살렘성이 부서진 채로 있고 성문들이 불탄 채로 있는 형편을 듣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위한 느헤미야의 심정을 본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약교회이었다. 교회의 건립과 평안은 하나님의 뜻이다. 어느 시대보다도 어지럽고 혼란한 오늘날, 우리는 참된 교회의 건립과 평안을 생각하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의 재건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과 선조들의 죄악을 자복하며 회개했다. 오늘날도 참된 교회의 건립과 평안을 위해 첫째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점들의 발견과 회개이다. 참된 교회의 건립과 평안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만 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목사들과 성도들의 불순종,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와 쾌락주의의 죄를 통회자복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도 회개 기도를 통해 참된 교회를 세워야 한다.

 

 

2장: 느헤미야가 유다로 보내짐

[1-6절] 아닥사스다 왕 20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愁色)[슬픈 빛]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黙禱)하고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그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헤미야는 파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다. 아닥사스다 왕 20년, 즉 주전 445년경 니산월(종교력 1월, 민간력 7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었고 느헤미야는 그것을 들어 왕에게 드렸다. 이전에는 왕 앞에서 그의 얼굴에 슬픈 빛이 없었으나 그 날 그의 얼굴에 슬픈 빛을 보고 왕이 그의 마음에 무슨 근심이 있는가 물었고 그는 자기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의 황폐함을 인함이라고 말하였다. 왕이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무엇을 원하느냐고 다시 묻자, 그는 하나님께 묵상 기도하며 자신을 그리로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시기를 왕에게 구했다. 왕은 즐거이 그를 보내기를 원하며 기한을 정하였다.

[7-10절]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군대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레박케쉬 토바)[이스라엘 자손의 형통을 구하는](KJV, NASB, NIV)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느헤미야는 또 왕에게 유다까지의 안전한 통행과 그곳에서 필요한 들보 재목도 구하였다. 그것은 여러 날 동안 금식기도하며 생각했던 소원이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였다”고 말한다. 왕은 군대장관과 마병도 보내어 그와 함께하게 했다. 느헤미야는 강 서편 총독들에게 왕의 조서를 전했다. 유다 땅에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형통을 구하는 자가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였다.

[11-16절]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 지 3일에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나의 마음에 두신](원문)(KJV, NASB, NIV)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龍井, ‘용의 우물’)으로 분문(糞門, ‘배설물 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소화(燒火)되었더라. 앞으로 행하여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그 밤에 시내를 좇아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 본 후에 돌이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서 돌아왔으나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인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고하지 아니하다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 지 삼일에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가 예루살렘성의 형편을 살폈다. 과연 예루살렘 성벽은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태워진 채로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17-20절]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燒火)되었으니 자, 예루살렘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성을]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이름을 기억함]도 없다 하였느니라.

느헤미야는 유다 사람들에게와 제사장들과 귀인들과 방백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를 도우신 일과 왕이 그에게 이른 말을 고하며 예루살렘성을 중건하자고 말하였다. 그들은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였다. 그런데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이 이 말을 듣고 느헤미야의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비웃으며 그들이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성을 건축하려니와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권리도, 이름을 기억함도 없다고 말했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기도했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왕의 호의와 허락을 얻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손길을 믿었다. 그는 예루살렘성의 재건을 위한 소원을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두신 일이라고 말했고 또 하나님께서 그 일을 형통케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느헤미야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둘째로, 느헤미야에게는 그가 소원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의 일을 대적하고 방해하는 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일에는 언제나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마귀과 악령들의 활동이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과 타협하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담대히 이루어야 한다.

 

 

3장: 성곽을 건축함

[1-4절]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羊門)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the Hundred, 일백)(NASB, NIV)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어문(魚門)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重修)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느헤미야의 인도 아래 시작된 성곽 건축의 일은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유다 나라의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5-8절]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主)의 역사에 담부(擔負)치[일을 돕지] 아니하였으며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편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로 더불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저희가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5절의 ‘그 주’라는 원어(아도네헴)는 ‘그들의 주님(Lord)’ (KJV) 곧 하나님을 가리키거나 ‘그들의[그들이 섬기는] 주군(主君)들’ (NASB, NIV)을 가리킬 것이다. 7절은,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 곧 기브온과 미스바 사람들이(KJV, NASB, NIV) 강 서편 총독의 보좌에까지 중수하였고(NASB)”라고 번역해야 좋을 것 같다. 8절은 ‘금장색들 중에 . . . 향품 장사들 중에 . . .’라는 뜻이라고 본다(KJV, NASB, NIV). 이 구절은, 금장색들과 향품 장사들 중에 성곽 건축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도 있음을 암시한다.

[9-19절]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는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풀무 망대를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고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거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糞門)까지 성벽 1천 규빗[약 450미터]을 중수하였고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으며 문짝을 달며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실로암] 못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 형제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자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병기창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

‘분문’(糞門)은 ‘배설물 문’이라는 뜻이다. 15절의 ‘셀라 못’은 ‘실로암 못’을 가리킨다(NIV). 17절은, “그 다음은 바니의 아들 르훔 아래 레위 사람들이 중수하였고”라는 뜻이다(NASB, NIV). 어떤 지역을 다스리는 자들이나 그 절반을 다스리는 자들도 성곽 건축에 동참했다.

[20-27절]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의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 그 다음은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나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하되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어 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侍衛廳, the court of the guard)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여 동편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어 민 망대까지 미쳤느니라.)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어 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28-32절] 마문(馬門)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 침방(寢房)[침실]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금장색[금장색들 중에](NASB, NIV) 말기야가 함밉갓 문(the Inspection Gate)[검사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고[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누(樓)에 이르렀고 성 모퉁이 누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고들이 중수하였느니라.

30절에 ‘여섯째 아들’을 언급한 것은 아마 다른 아들들은 이 일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 3, 8, 12장과 역대하 25-26장 등은 예루살렘성의 열두 혹은 열세 개의 문에 대해 증거한다. (1) 양문(羊門)(3:1; 12:39), (2) 어문(魚門)(3:3; 12:39), (3) 옛 문(3:6; 12:39), (4) 골짜기 문(2:15; 3:13; 대하 26:9), (5) 분문(糞門)(2:13; 3:14), (6) 샘문(2:14; 3:15; 12:37), (7) 수문(水門)(3:26; 8:16; 12:37), (8) 마문(馬門)(3:28), (9) 함밉갓 문[검사(檢査)문](3:31), (10) 에브라임 문(8:16; 12:39; 왕하 14:13; 대하 25:23), (11) 감옥문(12:39), (12) 성모퉁이 문(대하 25:23; 26:9); (13) 베냐민 문(렘 37:13; 38:7; 슥 14:10).

 

본장은 예루살렘 성곽을 재건함에 있어서 모두들이 협력했음을 증거한다. 첫째로, 그들은 남녀 귀천의 구별이 없이 이 일에 참여하였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을 비롯하여, 레위인들이 참여하였고(17절),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들과 또 유다의 각 지역들을 다스리는 자들이 참여했고(9, 12, 14, 15, 16, 17, 18, 19절), 또 어떤 이의 딸들도 참여하였고(12절), 금장색과 향품장사, 또 다른 상인들도 참여했다(8, 31, 32절). 전도와 교회 건립 같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해야 한다.

둘째로, 그들은 힘써 수고했다. 성곽을 건립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돌이나 벽돌을 쌓았을 것이고 때로는 문을 달기 위해 들보를 얹었고 문을 달았고 자물쇠와 빗장을 설치했다(1, 3, 6, 13, 14, 15절). 어떤 이들은 성벽을 약 450미터 중수했다. 또 어떤 이는 한 부분을 ‘힘써’ 중수했다(20절). 하나님의 일 봉사는 수고와 희생이 필요한 일이다. 이기적 마음으로는 할 수 없다. 그들은 그 일을 하는 동안 돈을 못 벌었을 것이고 여자들은 집안일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시간도, 돈도, 힘도 사용해야 했다. 우리도 교회 건립을 위해 힘써 수고해야 한다.

셋째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다. 10절,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외에도 23절(두 번), 28, 29, 30절에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행해야 할 것이다. 전도도 자기 집 옆에서부터 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교회 부근에서부터 전도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그러나 예루살렘 재건에 참여한 자들은 제한적이었다. 5절, “그 귀족들은 그 주(主)의 역사에 담부(擔負)치[일을 돕지] 아니하였으며.” 8절, “금장색들 중에 . . . 향품 장사들 중에.” 하나님의 일에 참여치 않은 자들도 있었던 것 같다. 유다 백성들 모두가 또한 예루살렘 거민 모두가 성곽 공사에 참여한 것 같지는 않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즐거이 자원하는 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법이다. 모세 시대에 성막을 지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는 자들의 예물을 받게 하셨고 그 일을 위해 자원하는 자들이 그것을 만들게 하셨다(출 26:2; 35:21; 36:2).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자원하는 마음이 있는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자가 되어야 한다.

 

묵상

느헤미야는 술관원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의 나라의 형편을 듣고 울며 금식하며 하나님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간구했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생각이 참 놀랍다. 긍휼의 하나님이신 것을 그는 분명히 알고 기도했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 파사왕 아닥사스다를 감동시켜 느헤미야의 사정을 듣고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축 하라는 허락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린다.

나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믿는다. 내가 울며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외면하실리가 없으니까.. 다만 그 간구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이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기도는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였다.

나도 이 패역한 세대에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에서 희희낙낙 살거나 또는 어찌하든 삶의 현장에서 자신들의 삶의 목표를 이루어보자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안타까이 여기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주변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웃들을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든지 역사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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