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김현승
아침 해의 축복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크고 작은 유리창들이
순간의 영광답게 최후의 燦爛답게 빛이 어리었음은
저기 저 찬 하늘과 추운 지평선 위에 붉은 해가 피를 뿌리고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 그들의 황홀한 심사가 멀리 바라보이는
광활한 하늘과 대지와 더불어 황혼의 黙想을 모으는 곳에서
해는 날마다 그의 마지막 정열만을 세상에 붓는다 합니다.
여보시오. 저렇게 붉은 정열만은 아마 식을 날이 없겠지요.
아니 우랄산 골짜기에 쏟아뜨린 젊은 사내들의 피를 모으면 저만할까?
그렇지요, 동방으로 귀양간 젊은이들의 정열의 회합이 있는 날
아! 저 하늘을 바라보세요.
황금창을 단 검은 기차가
어둡고 두려운 밤을 피하여 여명의 나라로 화살같이 달아납니다.
그늘진 산을 넘어와 광야의 시인―검은 까마귀가 城邑을 지나간 후
어두움이 대지에 스며들기 전에
열차는 안전지대의 휘황한 메트로폴리스를 향하여
암흑이 절박한 북부의 설원을 탈출한다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보시오! 이날 저녁에도 또한 밤을 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적막한 몇 가지 일을 남기고 해는 졌습니다그려!
참새는 소박한 깃을 찾고,
산 속의 토끼는 털을 뽑아 둥지에 찬바람을 막고 있겠지요.
어찌 회색의 포플러인들 오월의 무성을 회상하지 않겠습니까?
불려 가는 바람과 내려오는 서리에 한평생 늙어 버린 전신주가
더욱 가늘고 뾰죽해질 때입니다.
저녁 배달부가 돌아다닐 때입니다.
여보시오.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허다한 사람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프레젠트하는 우편물입니까?
해를 쫓아버린 검은 광풍이 눈보라를 날리며 개선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그려!
불빛 어린 창마다 구슬피 흘러 나오는 비련의 송가를 듣습니까?
쓸쓸한 저녁이 이를 때 이 땅의 거주민이 부르는 유전의 노래입니다.
지금은 먼 이야기, 여기는 동방
그러나 우렁차고 빛나던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던 날
오직 한 마디의 비가를 이 땅에 남기고 선인의 발자취가
어두움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합니다.
그리하여 눈물과 한숨, 또한 내어버린 웃음 위에
표랑의 역사는 흐르는 세월과 함께 쓰여져 왔다 합니다.
그러면 여보시오, 이러한 이야기를 가진 당신들!
쓸쓸한 저녁이 올 때 창 밖에 안타까운 집시의 노래를 방송하기엔
―당신들의 정열은 너무도 크지 않습니까?
표랑의 역사를 그대로 흘려보내기엔
―당신들의 마음은 너무도 비분하지 않습니까?
너무도 오랫동안 차고 어두운 이 땅,
울분의 덩어리가 수천 수백 강렬히 불타고 있었습니다그려!
마침내 悲戀의 감정을 발끝까지 찍어 버리고
금붕어 같은 삶의 기나긴 페이지 위에 검은 먹칠를 하고
하고서, 강하고 튼튼한 역사를 또다시 쌓아 올리고
캄캄하던 東方山 마루에 빛나는 해를 불쑥 올리려고.
밤의 험로를 천리나 만리를 달려 나갈 젊은 당신들―
정서를 가진 이, 일만 사람이 쓸쓸하다는 겨울 저녁이 올 때
구슬픈 저녁을 더더 장식하는 가냘픈 선율 끝에 매어달린 곡조와
당신의 작은 깃을 찾는 가엾은 마음일랑 작은 산새에게 내어 주고
녹색 등잔 아래 붉은 회화를 그렇게 할 이웃에게 맡기고
여보시오! 당신들은 맹렬한 바람이 부는 추운 거리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름 찬 당신들의 일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삶과 영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영혼의 비밀/이원유 (0) | 2021.05.06 |
---|---|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노천명 (0) | 2021.05.01 |
봄날의 기도/황금찬 (0) | 2021.04.19 |
내일은 없다/윤동주 (0) | 2021.04.13 |
상처/박두순 (0) | 2021.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