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1835-1921)
1835년, 프랑스 파리에서 관리를 지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사망했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생상스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생상스는 자신도 아버지처럼 폐질환으로 죽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고 그래서 추위를 싫어했다. 그의 평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다니는 일이었고 이런 여행은 그의 음악에 이국적인 느낌을 넣게 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음악 신동으로 세상에 이미 어릴때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피아노 실력에선 모짜르트를 넘어서 리스트에 비견될 정도의 비범한 천재성을 보여준다. 2살부터 피아노를 연주했고 3살부터 작곡을 시작했으며 4살땐 이미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의 피아노 파트를 연주할 만한 실력이었다고 한다. 10살의 나이에 피아니스트로 데뷔해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10곡이 넘는 곡을 연주한다음에 자진해서 앵콜을 요청했는데 베토벤 소나타(32곡)중 어떤 곡이든 쳐보이겠다고(...) 신동답게 13살의 나이로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다. 생상스의 피아노 실력은 오르간으로 발전해서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 분야에서 14살 나이에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16살에 자신의 첫번째 교향곡을 작곡했다.
생상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작곡가 보단 뛰어난 오르가니스트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생상스의 작품보다는 연주에 집중하는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널리 알려진 바그너의 로엔그린 3막에 나오는 결혼행진곡을 오르간으로 편곡한 사람이 바로 생상스였다.
1857년, 생상스는 프랑스 오르가니스트의 최고봉의 자리라 불리는 파리의 성 마들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계속 작곡을 해나갔는데 당대의 평가는 "전위적인 작곡가"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3]
후세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다재다능한 음악가로,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음악학자, 심리학자로서도 상당 활동하였으며 심지어 오컬트 계열의 학문에다가 자연과학까지 일부 발을 담는 음악가였다고 한다. 특히 음악학자로서 그는 상당히 좋게 평가되는데 그 이유는 후기 낭만시대인 당시에 베토벤 이전 음악을 자세히 연구한 학자였기 때문이라고,
2. 작곡
오르간과 피아노에 능통한 생상스였지만 작곡가로서는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도 많이 만들었는데 이렇게 된데에는 당대 스페인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의 덕이 컸다. 사라사테에게 자신의 바이올린곡을 헌정했는데 생상스의 작품에 감탄한 사라사테는 이후 귀찮을 정도로 바이올린 협주곡을 청탁해 오게 되었다(...)
덕분에 생상스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많이 작곡했다. 정식으로 바이올린 협주곡이란 제목이 붙은 작품은 3곡 뿐이지만 그 밖에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은 꽤나 많으니 사라사테가 얼마나 생상스를 들볶았을지 상상이 갈 정도다.
후기낭만 이후 신고전주의 성립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음악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3. 작품
역시 생상스의 유명한 곡으로는 제 3번 교향곡인 오르간 교향곡이 있다. 피아노와 파이프 오르간을 사용하는 대편성의 기악곡으로서 프랑스 낭만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할수 있겠다.
그보다 더욱 사람들에게 익숙한 곡이라면 "동물의 사육제"가 있다. 학교 음악시간에 가끔 듣게 되는 노래들이다(주로 감상문(…) 써오라는 경우). 판타지아 2000(?)에서는 이 곡(정확히는 가장 마지막 곡인 14번 "피날레")을 BGA화하기도 했다. 이 중에는 "백조"(13번)도 있으니 전체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한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 곡으로도 유명한 죽음의 무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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