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큐티

예레미아 16장-18장

헤븐드림 2021. 3. 17. 04:38

 

 

16장: 회복의 날이 있음

1-13절, 슬픔의 시대

[1-4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이는](원문) 이곳에서 생산[출산]한 자녀와 이 땅에서 그들을 해산한 어미와 그들을 낳은 아비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말함이니라]. 그들은 독한 병[병들]으로 죽고 슬퍼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여 지면의 분토(도멘)[똥]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몇 가지 특이한 명령을 하셨다. 하나는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까닭은, 이 땅에서 부모와 자녀들이 질병과 전쟁과 기근으로 죽고 슬퍼함이나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땅 위의 똥과 같이 되고 그 시체는 새와 짐승의 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과 재앙의 날이 올 것이며 그때에는 결혼과 자녀 출산이 무가치하게 될 것이다.

[5-7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상가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지 말라. [이는]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긍휼을 제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겠고 자기 몸을 베거나 대머리 되게 하는 자도 없을 것이며 슬플 때에 떡을 떼며 그 죽은 자를 인하여 그들을 위로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들의 아비나 어미의 상사(喪事)를 위하여 위로의 잔을 그들에게 마시울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상가에 들어가지 말고 거기서 통곡하지 말라”는 특이한 명령도 선지자에게 하셨다. 그것은 그가 그들에게서 평안을 빼앗으시고 인자와 긍휼을 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이기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말고 통곡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날에는 어른이나 아이나 이 땅에서 죽을 것이며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애곡하는 자나 위로하는 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장례식은 쓸쓸할 것이다. 6절에 ‘자기 몸을 베거나 대머리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방인들의 풍습을 가리킨다(레 19:28; 신 14:1).

[8-9절] 너는 잔치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잔칫집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기뻐하지도 말라”는 특이한 명령도 선지자에게 하셨다. 그 까닭은, 그가 그 땅을 심판하실 때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들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쁨과 즐거움 대신에 슬픔과 고통이 있을 것이다.

[10-13절]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또 너희는]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을 내리는 이유를 증거한다. 그것은 그들의 열조와 그들의 죄 때문이다. 그들의 열조의 죄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은 죄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죄는 그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한 것이었다. 그들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쉐리루스)[완고함]을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에게서 은혜를 거두심으로 그들은 이방 나라들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그곳에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마지막 날이 가까울수록 세상의 것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심판의 날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취하지 말라, 상가(喪家)에 들어가지 말라, 잔칫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등의 특이한 명령을 하셨다. 결혼이나 출산이나 잔치나 장례식이나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이런 것에 너무 큰 의미와 가치를 두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런 일에 너무 기뻐하지 말고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고전 7:29-31). 우리는 이런 것에 대해 약간만 기뻐하고 약간만 슬퍼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천국의 백성이며 내세를 사모하며 소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의 이유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은 것 때문이다. 불의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재앙과 멸망이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고 그의 계명만 순종하자. 그것이 의의 길이며 평안의 길이다. 전도서는 세상의 허무함을 증거한 후에, 결론적으로 12:13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모든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만 믿고 바르게만 살자.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그의 평안을 빼앗고 인자와 긍휼을 제하였다고 말씀하셨다(5, 13절).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거두시면, 세상에서 구원받을 자와 평안과 행복과 영생을 누릴 자는 아무도 없다. 죄인들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는다. 우리의 구원, 우리의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았다. 또 우리의 평안도, 행복도, 영생 복락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만 구하며 사모하자.

 

14-21절, 회복의 날이 있음

[14-15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나(라켄)[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14절 초두에 ‘그러나’(NIV)는 문맥적으로 맞는 것 같으나 원문에는 ‘그러므로’(BDB, KJV, NASB)라고 되어 있고 그것은 본장이 북방 포로를 강조하기 때문에 문맥에도 부합하다. 즉 유다 백성이 북방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사방에 흩어질 것이기 때문에 장차 사람들은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열조에게 주신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예언하신 것이며 그들의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의 돌아옴을 의미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 회복의 일, 곧 북방으로부터 돌아올 일에 대해 반복해서 예언하였다. 예레미야 3:18, “그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함께 이르리라.” 23: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 31:8,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16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작은 산과 암혈[동굴]에서 사냥하게 하리니.

본절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다음절에 비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한 징벌로 많은 어부와 포수를 불러 그들을 포로로 잡아 북방 땅에 데려가실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성경에 어부를 그런 뜻으로 사용한 예들도 있다(암 4:2; 합 1:15).

그러나 다른 하나는 앞절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많은 어부와 포수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을 그 흩어진 땅에서 구원하여 내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뜻으로 본다. 14절과 16절 초두에 나오는 ‘보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뜻보다는 그의 회복에 대한 뜻에 더 적합해 보인다.4) ‘어부’라는 말은 주 예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실 때 사용하신 비유이다. 주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4:19). 사람을 낚는 어부는 전도자를 의미하였다.

[17절]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이스라엘 백성이 온 세계에 흩어져 모든 산과 모든 작은 산과 동굴들에 있게 될 이유를 보이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 되게 하실 것이고 온 세계에 흩어지게 하실 것이다.

[18절] 내가 위선[우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또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이 먼저 그들의 죄에 대해 내릴 그의 엄위한 징벌을 전제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 미운 물건의 시체’란 우상들에게 바쳐진 더러운 제물들이나 무고하게 피를 흘린 사람들의 시체들을 가리킬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땅을 우상숭배로 심히 더럽혔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와 악을 엄하게 배나 갚으시며 징벌하실 것이다.

[19-20절]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날의 피난처시여, 열방이 땅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열조의 계승한 바는 허무하고(쉐케르)[속이는 것, 우상](BDB, NASB, NIV) 망탄하고(헤벨)[헛된 것, 무가치한 것](KJV, NASB) 무익한 것뿐이라.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날의 피난처”라고 고백한다. 참 경건은 하나님을 아는 것, 곧 그를 우리의 힘과 피난처로 아는 것이다. 세상에는 죄의 유혹과 마귀의 시험과 환난과 재앙이 많지만, 하나님을 아는 자는 죄의 유혹에 빠지지도 않고 환난 중에 낙심치도 않고 오직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한다.

예레미야는 장차 세상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이 허무한 삶인 것을 고백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조상으로 내려오는 헛된 풍습을 따랐다. 그것은 속이는 우상이며 헛되고 무가치한 것이며 무익한 것뿐이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이 아닌 그런 것을 신으로 삼았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 아닌 것을 신처럼 가치 있게 여기며 살고 있다. 세상에는 아직도 우상들이나 가짜 신들이 많다. 모든 비진리들이 그런 종류의 것들이다. 또 많은 사람들은 돈과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살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육신의 쾌락에 삶의 의미를 두고 사는 것 같다. 또 어떤 지식인들은 사람의 이성과 과학을 최고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들이 참 하나님이 아니며 참으로 허무한 것들이라는 것은 너무 자명하다.

[21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이 말씀은 본장의 전체적 방향, 즉 이스라엘 나라의 심판과 회복이라는 방향에 관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과 택자들의 회복을 말한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통해 영원자존하신 주권자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이 허무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우상들이 허무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 외에 모든 종교, 모든 철학, 모든 사상, 모든 인생관, 모든 가치관이 허무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과 그가 계시하신 진리들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허무함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죄에 대해 철저히 갚으실 것이다. 17-18절,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 내가 위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니라.” 로마서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보응하시리라].”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북방에서 인도하여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15, 16절).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우리는 죄와 지옥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천국 소망과 위로를 감사해야 한다.

 

 

17장: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1-8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1-2절]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그들의 자녀가 높은 메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그들의 자녀들이 높은 언덕들 위 푸른 나무들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할 때, 유다의 죄는 금강석(솨미르)(KJV, NASB)[부싯돌](BDB, NIV)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도다].

유다 백성은 높은 언덕들 위 푸른 나무들 곁에 있는 제단들에서 또 아세라들을 통해 우상을 섬겼다. 그들의 죄 곧 우상숭배의 죄는 너무 확실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판들과 그들의 우상숭배하는 제단 뿔들에 금강석(다이아몬드) 끝 철필로 확실하고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3-4절]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지경의 죄로 인하여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대적을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로 맹렬케 하여 영영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니라.

‘들에 있는 나의 산’은 시온산 곧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고 본다. 유다 땅은 어느 한 지역만 부패한 것이 아니고 온 지역이 부패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재산과 모든 보물이 노략을 당하게 하실 것이며 산당들도 다 파괴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업을 잃어버릴 것이다. 또 그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였던 이방 나라로 잡혀가 그들을 섬길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불같은 노를 일으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벌이다.

[5-6절]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짠기 있는, 소금기 있는]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떨기나무’는 관목(bush, shrub)이라고 하는데, 키가 작고 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불분명한 나무를 가리킨다(이것과 달리, 큰키나무는 교목이라고 함).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고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경건과 불신앙이며 인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휴매니즘, humanism) 즉 사람 중심 사상은 무신론 사상이며 저주 받을 사상이다. 그런 사람은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사막의 떨기나무같이 메마를 것이다.

[7-8절]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여호와를 의지하며 의뢰하는 자는 복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시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늘 푸르고 가뭄이 들 때에도 걱정이 없고 항상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더위와 가뭄, 곧 환난과 핍박 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시편 1편의 말씀과 같다. 거기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하였다(시 1:1-3). 참된 믿음은 순종을 가져오고 순종은 의와 선을 낳고 의와 선은 기쁨과 평안과 형통의 복을 가져온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의 죄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 기억된다. 사람의 죄들은 철필로 마음 판에 기록되듯이 기록될 것이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지 않으면 자기가 지은 죄들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형벌을 받을 것이다. 비록 그가 자신의 행한 죄들을 잊어버렸다고 할지라도, 그 죄들은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날, 심판대 앞에서 사람들을 그 행위대로 공의롭고 공정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자.

둘째로, 헛된 우상숭배와 인본주의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을 죄악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들을 섬겼고 하나님 대신 사람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고 저주를 받았고 멸망하여 온 세상에 흩어졌고 포로로 잡혀가서 오랫동안 고생스런 삶을 살았다. 우리는 우상숭배를 버리고 사람을 의지하고 자랑하는 것, 즉 인본주의를 버려야 한다. 이사야 2:22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한다. 시편 146:3-4도,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상숭배와 인본주의를 버려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의지하며 그의 계명을 순종해야 한다. 7-8절,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우리는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만 살자.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성경책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가족들과 함께 그렇게 하며 성경말씀대로 행하자. 이렇게 믿음으로 살고 순종으로 사는 자들은 복된 삶과 승리적 삶을 살 수 있고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다. 그는 더위와 가뭄을 이길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환난과 핍박을 이길 것이다. 그는 행복자이다. 또 그는 성령의 열매 즉 인격과 삶의 선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9-11절, 심히 부패한 마음

예레미야서의 특징적 진리는 사람의 전적인 부패성에 관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심히 악하고 부패된 상황을 보고 깊이 느끼면서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받아 그것을 책에 기록하였다.

[9-11절]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부를 얻는] 자는 자고새(메추라기 종류)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본문은 사람의 마음이 심히 부패하였다고 증거한다. 사람의 마음은 영혼의 활동이며 지식과 감정과 의지의 세 요소를 가진다. 사람의 죄악된 말과 행위들은 마음의 부패에 기인한다. 사람은 지식이 부패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계명과 뜻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이 없고 도리어 헛된 것을 섬기며 거기에 가치를 두고 산다. 사람은 감정도 부패하였다. 사람은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 때가 많고, 난폭하고 격한 감정, 미움, 염려, 불안 등의 감정 장애를 가진 자들도 많다. 또 사람은 의지도 부패하였다. 사람은 바르고 선한 일을 알아도 그것을 행할 힘이 부족하고 우유부단하고 때로는 완고하고, 또 죄악된 습관에 굴복한다.

본문은 사람의 마음이 치료 불가능하게 부패했다고 말한다. 본문에 ‘심히 부패한’이라는 원어(아누쉬 שׁ������אָ)는 ‘병든, 연약한, 치료할 수 없는’이라는 뜻이다(BDB, KB). 사람의 마음은 전적으로 부패하였다. 이것은 성경에 계시된 한 중요한 진리이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것을 증거하고 성경이 전체적으로 이 진리를 확증한다. 예레미야 13:23도,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였다. 로마서 8:7-8도 말하기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

본문은 하나님의 감찰에 대해 증거한다.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심장’이라는 원어(레브)는 ‘마음’이라고도 번역하는 말이고, ‘폐부’라는 원어(켈라요스)는 ‘신장(콩팥)’이라는 말인데 ‘영혼의 작용들, 심리적 작용들, 생각과 감정 등’을 가리킨다.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자는 사람 중에는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성경은 그것을 증거한다.

시편 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시편 44:21,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시편 139:1-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그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다 아신다.

본문은 하나님의 보응에 대해서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행위를 살피시고 그 옳고 그름과 선하고 악함을 시험하시고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그는 사람의 선한 마음과 그 행위들을 장려하시고 복주시며, 악한 마음과 그 행위들에 대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벌을 내리신다. 요한계시록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본문은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메추라기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한 대표적 죄는 불의로 재물을 취하는 것이다. 거짓과 사악과 탐욕은 죄악된 사람의 모습이다. 그 반면에 진실과 선과 의, 절제와 검소와 자족함은 참된 성도의 모습이다. 불의의 소득은 결코 복이 되지 못한다. 부도덕하게, 거짓되게, 또 탐심으로 버는 돈은 복이 되지 못한다. 잠언 16:8은,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하고, 잠언 20:17은,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자갈]가 가득하게 되리라”고 말한다. 불의의 소득은 복이 되지 못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의 마음의 전적 부패성을 알아야 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사람의 마음은 심히 부패되어 있고 의와 선을 행하기에 무능하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감찰하심과 공의로 보응하심을 알고 두려워해야 한다. 불의함으로 얻는 소득은 결코 복이 되지 않는다. 죄를 짓는 자는 하나님의 복과 평안을 누릴 수 없고 그의 엄한 징계와 징벌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죄를 멀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몸의 죄성을 따라 살지 말고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따라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갈라디아서 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의(義) 안에서 성경말씀의 교훈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12-18절, 선지자의 기도

[12절]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태초부터 있는 영화로운 높은 보좌는 우리의 성소이시로다](KJV, NASB, NIV).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 창조 이전의 세계는 사람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원한 세계이다. 하나님의 보좌는 태초부터 계신 영화로운 높은 보좌이시다. 그는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신다. 보좌는 통치권을 뜻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온 천하만물을 친히 다스리신다. 시편 93:1-2는,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영화로운 분이시다. 그의 보좌는 영광의 보좌이시다. 세상의 그 어떤 영광도 하나님의 영광에 비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가장 최선의 방식, 가장 최상의 방식으로, 가장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하늘 보좌는 우리의 성소이시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이며 장차 하나님과 교제하며 섬길 수 있는 곳이며 그의 충만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지상의 성전이나 교회는 천국의 한 모형에 불과하다. 우리는 장차 그의 영광을 누릴 자들이다.

[13절]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시며 또 우리 모두의 소망이시다. 죄와 불행과 죽음 문제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사람의 참된 위로와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나온다. 슬픔과 절망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망, 우리의 위로와 힘이 되신다.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는 자는 허무하고 불행케 될 것이다. 본문은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원문에는 “나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리라”고 말하였는데(KJV), 그것은 선지자가 갑자기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며, 선지자의 독특한 영감성을 보인다. 흙에 기록된다는 표현은, 돌에 새기는 것과 달리, 지워져 버리는 것을 뜻하며, 허무하고 무가치하고 불행한 삶을 의미할 것이다. 악인의 삶은 허무하고 불행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그렇게 되는 까닭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생수의 근원이시다. 몸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따라서 사람의 건강과 연약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지만, 특히 영생은 하나님께 있다. 그는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자는 영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떠나고 그와 분리되면 영생을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더욱 힘써 알아야 한다. 호세아 6:3은,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꼭 붙잡고 따라야 한다. 신명기 10:20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에게 친근히 하라[그를 꼭 붙들라]”고 말했다.

[14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예레미야는 사람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고백한다. 그는 “나를 고치소서,”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아뢴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병도 고쳐주실 수 있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병인 영혼의 병, 즉 죄 문제의 해결, 죄책의 해결과 죄성의 극복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고 고침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은 다 죄인이며 심히 부패된 죄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면 죄인이 의인이 되고 죄성을 가진 자가 변하여 거룩하고 선한 인격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 신약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곧 십자가 보혈 공로와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으로 얻은 중생(重生)과 성화(聖化)의 은혜이다. 예레미야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한다. 그는 하나님을 “나의 찬송”이라고 고백한다.

[15-16절]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좇았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치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악한 자들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보게 하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그는 낙심치 않았다. 그는 목자의 직분, 곧 선지자의 직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그 직분에 충성하였다. 그는 재앙의 날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이들과 같이 그 날을 원치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입술에서 나온 설교들은 다 그가 하나님께서 주시고 명하신 바들을 선포한 것이었다. 그는 선지자의 사역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하지 않았고, 또 회중의 귀를 즐겁게 하려 하지 않았다.

[17-18절]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나를 박해하는 자로 수욕을 당케 하시고 나로 수욕을 당케 마옵소서. 그들로 놀라게 하시고 나로 놀라게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예레미야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재앙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는 재앙의 날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피난처이심을 고백한다. 그는 자기를 박해하는 자들이 수치와 해를 당할지언정 자기가 수치와 해를 당하지 않게 하기를 구한다. 그는 악인들로 놀라게 하시고 자신은 놀라지 않게 해달라고 말한다. 또 그는 재앙의 날에 악인들이 철저하게 멸망을 당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심을 알아야 한다.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 그는 영원자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태초에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영광의 보좌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 자이시다. 신명기 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하고 평안한 처소가 되신다. 또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며 섬기자.

둘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자. 14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고 그에게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과 몸의 모든 문제들을 고치시고 회복시키시고 해결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슨 어려운 문제가 있든지 하나님께 구하며 아뢰자.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빌립보서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참된 믿음은 쉬지 않는 기도와 순종의 삶으로 나타난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우리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고난 중에서도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 증거한 후,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했다(15:58). 우리는 평소에 우리의 직무를 다해야 하며 고난 중에라도 우리의 직무를 다해야 한다. 주께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신다(계 2:10).

 

19-27절, 안식일을 지킬 것

[19-27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가서 유다 왕들의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아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함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그들은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 다윗의 위에 앉는 왕들과 방백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남방에서 이르러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의 희생을 가지고 여호와의 집으로 오려니와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친히 말씀하셨다. 19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20절,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21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2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저장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귀한 것이며 절대적 권위를 가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저장소일 뿐 아니라,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면 그것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고 안식일에 집에서 짐을 내지도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아서 안식일을 거룩히 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열조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치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않고 교훈을 받지 않았음을 상기시키셨다. 또 그는 만일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면 왕들과 방백들이 유다 백성과 함께 예루살렘에 드나들며 이 성이 영영히 있을 것이며 사람들은 제물을 가지고 이곳에 와 하나님께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릴 것이지만, 만일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친히 예루살렘 성문에 불을 놓고 예루살렘 궁궐들을 삼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내산 언약의 내용인 십계명 안에 제4계명으로 명시되어 있다. 출애굽기 31:13, 16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라고 말한다.

안식일 계명은 제7일에 휴식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출애굽기 20:8-10,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애굽기 23:12, “너는 6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이와 같이, 안식일은 집안의 종들과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까지 쉬는 날이다. 출애굽기 34:21,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7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니라.” 그들은 1년 중 가장 바쁜 때인 발 갈 때나 거둘 때에도 쉬어야 했다. 출애굽기 35:3은 안식일에는 모든 처소에 불도 피우지 말라고 명하였다.

안식일은 또한 공적 예배회로 모이는 날이다. 레위기 23:3,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聖會)라.” 성회는 공적 예배의 모임을 가리킨다. 모든 백성은 그 날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했다.

구약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매우 필수적인 일이어서 그것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며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이었다. 출애굽기 31:14-15는,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7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한다.

느헤미야는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파는 것을 보고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크게 꾸짖었다(느 13:17-18).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예표적이었다. 율법이 명한 모든 절기들은 성막과 제사 제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사역을 예표했다.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죄사역을 이루셨을 때 성취되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성취되었다. 그는 믿는 우리들에게 참 안식을 주셨다(마 11:28). 골로새서 2:16-17은,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말했다.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이었다.

그러나 안식일 계명의 도덕적 요소는 오늘날에도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7일 중 하루의 구별과 육신의 휴식과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 등이다. 특히 신약성경은 교회의 공적인 모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 율법의 성취는 위축된 방식으로가 아니고 풍성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신약성도는 온 몸을 하나님께 바치며 모든 시간과 모든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토요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되었으므로, 신약성도는 주일을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일과 공적 예배의 날로 구별하여 지킨다. 그것이 안식일 계명 속에 담긴 도덕적 요소이다. 주일를 거룩히 지키는 것은 신약 성도들에게 복된 의무이다. 우리는 주일을 구별하여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을 얻는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구약의 안식일 계명은 의식적 요소와 도덕적 요소를 가진 계명이었다. 그 내용은 제7일 토요일을 구별하여 휴식하며 성회로 모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생활에 매우 필수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엄격한 규칙이었다. 그것을 어기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려졌다. 안식일 계명의 도덕적 요소는 일주일에 하루를 휴식과 예배의 날로 구별하는 것이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토요일 대신에 주일, 곧 주께서 부활하신 날을 휴식과 예배의 날로 지키게 되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복된 의무이다. 주일 성수는 많은 영적 유익과 복이 된다. 오늘 우리는 주일을 내 날로 사용하거나 세속적 날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물론, 신약성도는 주일을 구약시대의 안식일처럼 엄격한 법에 따라 지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 우리 자신의 영적 성장과 유익을 위해 구약시대보다 더 풍성하게 그러나 자유함과 자원함으로 한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휴식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지켜야 할 것이다.

 

 

18장: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을 거절함

1-17절, 백성들의 부정적 반응

[1-4절]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轆轤)(wheel)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부서지므로]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셨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보았다. 토기장이는 녹로(轆轤)로 일을 하고 있었다. ‘녹로’(轆轤, wheel)는 질그릇을 만드는 데 쓰는 물레(돌리는 틀)이다.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만든 그릇을 손으로 부서뜨려서 그것으로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녹로로 일하는 토기장이를 통해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쳐 주셨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성경책을 펼쳐서 그 책을 읽어야 한다. 신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다.

[5-10절]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첫 번째 말씀의 요점은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이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주권자이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계가 다 그의 손 안에 있다. 두 번째 말씀의 요점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람의 책임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재앙 대신 평안을 주실 것이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악을 행하면 평안 대신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11-12절]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베풀어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노아쉬)[소용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도모[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세 번째 말씀의 요점은 악한 길에서 돌이켜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동일하시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헛된 말이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며 모욕이고 매우 큰 죄악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계명들을 버리고 자기들의 계획과 생각대로, 자기들의 굳은 마음대로 악한 길로 나가려 하였다.

[13-15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가 열방 중에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반석을 떠나겠으며 원방에서 흘러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대저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그의 계명을 저버리고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허무한 우상에게 분향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과 의인 노아가 걸었던 길,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이 걸었던 길,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성령의 사람 여호수아가 걸었던 길, 하나님의 종 다윗이 걸었던 그 옛길, 우리가 가야 할 그 옛길에서 떠난 것이었다.

[16-17절] 그들의 땅으로 놀랍고(솸마)[황폐케 하고](KJV, NASB) 영영한 치소(嗤笑)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 머리를 흔들리라. 내가 그들을 그 원수 앞에서 흩기를 동풍으로 함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은 황폐케 되며 이방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며 다 흩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등만 보이시고 그의 긍휼의 얼굴을 감추시고 그들을 구원치 않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이시며 우리는 그의 손 안에 있는 진흙과 같다. 주권자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둘째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악을 버리고 거룩과 의와 선을 행하는 것이다. 11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하게 하라.” 우리는 모든 악을 버리고 오직 거룩과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아모스 5:14,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미가 6:4,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들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며 평안과 형통의 길이다.

셋째로, 하나님을 거스르며 악을 행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황폐케 되고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온 세상에 흩어지며 하나님의 은총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다.

 

18-23절, 예레미야의 고난

[18절]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하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꾀를 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치려 하였다. 그들은 악하고 거짓되었다. 악은 숨어서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정정당당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은밀하고 악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들은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참 선지자 예레미야의 설교와 다른 거짓 선지자들의 설교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의 차이이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말로 비방하였다. 하나님의 종들은 때때로 말로 비난을 받았다. 고라 일당은 모세에게 분수에 지나치다고 말했고 모세가 그들 위에 왕이 되려 한다고 비방했었다(민 16:3, 13). 고린도후서 6:8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영광도 받으나 욕도 받고 악한 이름도 가지며 아름다운 이름도 가진다고 증거했다. 또 디모데후서 4:14-15에 보면, 구리 장색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해를 많이 보였고 그의 말을 심히 대적했다. 이처럼 주의 종들은 때때로 비난을 받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또 선지자 예레미야의 설교를 무시하였다. 그들은 그의 설교를 소용이 없는 헛된 말로 여기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하였다(딤후 4:3-4). 오늘 시대는 하나님의 진리가 무시당하는 시대라고 보인다.

[19-20절]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로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옵소서.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선한 말씀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이스라엘 백성은 예레미야를 해치려고 구덩이를 팠다. 예레미야는 그들의 이런 꾀와 비방과 무시, 그리고 구덩이와 올무 때문에 마음의 고통이 컸었다. 성경 시대에나 그 후 교회의 역사에서나 하나님의 종들은 때때로 이런 고난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당하는 고난은 결코 수치가 아니고 오히려 영광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레미야를 대항하고 비방하고 무시하고 구덩이를 파고 올무를 놓은 것은 정당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호소하였다. 그들은 예레미야의 선포한 말씀을 자기들에게 욕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였으나, 실상 그 말씀들은 하나님 앞에서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들의 유익을 위한 선한 말씀이며, 그들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하는 말씀이었다. 율법은 본래부터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모세는 신명기 10:12-13에서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21-23절]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戰場)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주께서 군대로 졸지에 그들에게 임하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취하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치려고 올무를 베풀었음이니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시며 그 죄를 주의 목전에서 도말치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엎어지게] 하시되 주의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호소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며 그들의 아내들이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들이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칼을 맞게 하실 것을 호소한다. 이것은 선지자의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기를 간구한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을 구한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으로 생각하지 말고 복으로 바로 깨달아야 한다. 참된 선지자들은 책망하는 설교를 많이 하였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을 기원하고 축복하는 설교를 많이 하였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신명기 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으로 여기지 말고, 우리의 행복의 길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함부로 비방치 말아야 한다. 그들은 주께서 보내신 종들이다. 그들을 영접하는 것은 주를 영접하는 것이며 그들을 거절하는 것은 주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들을 비방하면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2-13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하였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귀히 여기고 달게 받고 믿고 힘써 지켜야 한다. 그 말씀들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행복이 되는 말씀이며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정상적 과정이며 방편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사랑하고 섬기며 그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주신 그의 모든 계명들과 교훈들과 규례들을 지키는 것이다(신 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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