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례요한
1. 출생 및 성장 배경
세례요한은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중의 한 사람이었던 사가랴와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례요한이 출생했던 시대적 상황은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 C.27-A. D.14년)가 로마 황제로 제위 하였으며, 팔레스틴 전역은 분봉왕 헤롯(The Great Hrod, B. C. 37-4년)에 의해서 통치하던 시대이었다. 로마 식민지였던 유대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던 시기였고, 종교적으로 매우 타락했던 시기였다. 헤롯은 겉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등 종교적 부흥을 힘쓰는 듯 했으나 유대사회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직을 자기 권한 아래 둠으로 정치적 도구로써 자기 권력의 방편으로 이용하려 했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들은 강한 정치적 색채를 띨 수밖에 없는 암울한 시대였다.
세례요한의 부모인 사가랴는 이러한 암울한 시대임에도 주의 계명과 규례대로 행하며,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의인이라고(눅1:6)하였으며, 제사장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주 앞에 바른 헌신을 다했음을 알 수 있다. 제사장의 전례대로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들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는데,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며,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요한”이라고 지명하여 주었다(눅1:9-13). 사가랴는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나자 그 상황을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당황하게 되자 그러한 반응에 대하여 주의 사자는 표징으로 그를 한시적으로 벙어리가 되도록 하셨다(눅1:20)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은 수태를 못하는 무자하고 나이가 많아 자식은 바랄 수도 없는(눅1:7) 아무런 낙이 없던 중, 아들을 낳아 준다는 소식은 한편으로는 기쁘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웠을 것이다. 노년이 되어 임신을 하게 되어서 과연 건강한 자녀를 낳을 수 있을런지? 염려가 되었을 것이고, 유대 역사상 처음으로 성소에 들어가서 벙어리가 되어 나왔으니 그 당시 모든 백성들이 성소 밖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였으니 소문은 빠르게 확산되어 퍼져나갔고,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수군하면서 이야기 거리의 주인공이 되어 열 달 내내 불안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된 사건이라 하더라도 임신한 엘리사벳 입장에서는 매우 두려웠을 것이다. 성경에도 온 유대 산골까지 그 소문은 퍼져나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고 한다(눅1:64-65).
온 유대 사람들의 관심과 축복 속에 건강한 아이는 일가친척들이 부친의 이름을 따서 ‘사가랴’라고 짓자는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개입을 확신하며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다(눅 1:63).
2. 청소년기와 성인기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한 요한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요한의 유아기 때부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의 생애에 대하여, 기도하면서 양육했을 것이다. 요한은 그의 잉태되는 순간부터 출산 그리고 그의 이름과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음을 그의 부모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예정 속에 선택되어진 생명으로서 온 정성을 기울여서 양육을 했을 것이다.그의 아동기와 청소년기 성장과정 속에서 보여준 예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보면 그의 성장 배경이 어떠했으리라 짐작할 수 가 있다(눅1:80, 2:52). 즉,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철저하게 구별된 나실인으로 성장했으며,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절제된 생활과 부정한 것들은 멀리하는 아동기와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청소년 시절은 황량한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극히 절제된 검소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감당하며 천국복음을 전하는 고독한 순교자의 길을 걸으며,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그가 예수님의 공생애가 30세 전후라고 볼 때, 후기 청소년 시기를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자로서 고독하게 지냈을 것이다. .
3. 요한이 끼친 영향
세례요한이 살았던 시대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신약 시대를 펼쳐나가기 위해 신약시대의 문을 여는 역할을 감당했으며, 구약시대 선지자 시대의 문을 닫는 역할을 요한이 감당했다고 할 수 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자”이다(마11:11). 마태복음 11장 13절에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라고 적고 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수 백 년이 지난 후 등장한 세례요한을 많은 사람들은 그를 메시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을 표현하기를 장차오실 메시야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며, 자신은 그 주인의 신발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그 주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겸손한 고백을 하고 있다(막1:7, 마3:11).
세례요한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고독과 맞서 싸우며, 겸손히 감당한 휴먼리스트였다. 잉태되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선택되어 순교자의 삶을 살다간 사람, 철저하게 주인공을 위해 조연의 역할을 소리로서 그림자로서 그의 정해진 삶의 둘레를 벗어나지 않고 살다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