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설교(45) 마태(막2:13-17)
● 세리로 잘 알려진 마태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한명이며,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막상 마태가 어떤 인물인가? 하고 물어보면, 우리는 그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제자의 한 사람 같은데, 세리였고, 마태복음을 기록했다는 말 외에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마태는 성경에 오직 두 사건에만 나타난다. 세관에서 세리로 일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 부름받는 장면과, 곧 이어 예수님과 동료 세리들, 죄인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잔치를 베푼 장면이다. 그 외에는 공관복음에 기록된 열두 사도의 명단에 이름이 나오며, 예수 승천 후 마가의 다락방 기도 모임에 참석한 제자들의 이름에 나올 따름이다.
특히 그는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어디에도 그의 목소리를 단 한 군데도 남기지 않았다. 세리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일행의 회무는 가룟 유다가 맡았다. 한마디로, 마태는 우리에게 그 이름이 잘 알려진 것에 비해 그와 관련된 사건은 많지 않으며 자기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은, 요즘 말로 하면, 제자들 중 튀지 않는 조용하고 겸손한 인물이었다.
● 하여튼 마태에 대한 기록이 충분하지 않지만, 성경과 교회의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마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몇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마태는 아람어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 히브리식으로 하면 ‘맛다냐’(헤만의 아들로 성가대장, 대상25:4) 혹은 ‘맛다니야’(시드기야 왕의 본명, 왕하24:17)로 둘 다 ‘여호와의 선물’이란 뜻이다. 주로 레위지파와 관련되어 많이 나타나는 이름이다. 본명은 ‘레위’(결합됨)였는데, 사도로 부름받은 이후 개명된 이름인 듯하다. 가버나움 태생으로 알패오의 아들이며, 또 다른 야고보(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작은 야고보’라 불린다.)의 동생이었다.
이상의 기록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히브리인이긴 했으나 유대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레위라고 하는 그의 이름은 그가 유다나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임을 암시하고 있다. 다시말해 그는 변절한 레위인이거나 제사장이었다는 것이 보다 설득력 있다.
그의 부친은 알패오였는데, 알패오란 ‘지도자’란 뜻이다. 뿐만 아니라 알패오는 엠마오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글로바’와 동일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글로바’란 이름이 ‘유명한 아버지’란 뜻이다. 그러므로 마태의 부친 알패오는 당시 백성들 사이에서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지도자 역할을 했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레위인은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살면서 백성들에게 구약 율법을 비롯 전승되어오는 유대인의 지혜를 가르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 역할을 했다.
그의 모친의 이름은 마리아이다. 마리아란 이름은 히브리어 미리암의 헬라식 표기로 ‘높은, 고상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당시 가장 흔한 여성의 이름이었다. 마태와 작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는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수종하며 따랐던 여러 경건한 여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십자가 바로 밑에까지 따라갔으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던 날 새벽, 향품과 향유를 가지고 무덤에 갔던 경건한 여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마태는 경건한 가정교육 아래서 자랐을 가능성이 크다.
2) 그런데 이런 가정에서 자란 마태가 어찌하여 세리가 되었을까? 마태의 고향 가버나움은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국립세관이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마태는 세리로 일했다. 그런데 당시 세관에 근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동족들이 사용했던 아람어나 히브리어는 물론, 헬라어, 또 로마사람들이 사용하던 라틴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했다. 그리고 장부를 기록하고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세리들의 일반적인 행태는 나라에서 정한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 그 웃돈은 자기 호주머니에 챙겨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래서 회개를 외치는 세례 요한의 날카로운 경고에 양심이 찔린 세리들이 요한에게,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고 물었을 때, “정한 세 외에 늑징치 말라”고 말했던 것이다.
애국심이 강한 유다인은 적대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할 뿐만 아니라, 그 지위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웠으며, 우상숭배하는 수많은 이방인들과 접촉했기 때문에, 세리야말로 대표적인 매국노요, 창기나 죄인, 이방인과 같은 부류요 개. 돼지처럼 천시하고 혐오하였다.
마태가 왜 세리가 되었을까? 비록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산다고 해도, 재물만 있으면 모든 것이 보상된다고 생각하는 현실주의자였는지, 아니면, 동족에게 부당한 세금을 징수하는 그릇된 관행의 세관을 자신이 변혁시키려고 했던 개혁자였는지, 그 사연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만일 자신의 직업에 큰 만족을 하고 있었다면, 마태는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즉, 그가 그토록 의지했던 재물이 그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을 것이며, 세관의 개혁은 커녕 날로 마비되어 가는 자신의 양심을 바라보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마태의 형 작은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 유대인 애국단체였던 ‘젤롯당’ 단원이었다. 따라서 마태는 세리로 있으면서도 엄청난 갈등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그의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었을 리가 없었다.
3) 또한 마태는 철저히 종교적인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마태복음을 살펴보면, 다른 복음서에 비해 구약을 많이 인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나머지 세 복음서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태는 구약과 직접 연관된 99번의 인용 외에도, 히브리 성경을 형성했던 모든 기록들, 토라, 율법서, 느빔, 예언서, 그두빔, 성문서 등 모든 기록들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부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에 끊임없이 구약성경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과 왕 되심을 증언하고 있다.
그가 비록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게 변절자요 매국노로 보였을지 모르나,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에서 완전히 떠난 사람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는 다른 모든 제자들보다 두드러지게 구약의 문헌들을 연구하였으며, 엄밀한 의미에서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비록 세관에 앉아 있었으나,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소문,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소문 가운데서, 예수님의 소문을 이미 듣고 있었을 것이다. 구약성경 말씀에 통달했던 그에게 예수님의 소문, 예수님의 메시지, 예수님의 행적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 그러던 어느날 방황하고 있던 한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 다가가신다. 그리고 긴 말 없이 그를 부르신다. “나를 좇으라.” 비록 예수님의 말은 간단했으나, 이 말은 마태의 심령 가운데 천둥번개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의 머리끝에서부터 손끝, 발끝까지 온통 전기에 마비된 듯,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마태는 즉시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른다.
그는 이 기쁨을 혼자만 느낄 수 없어 동료 세리와 죄인들을 부르고, 주님과 그 제자들을 맞아들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 자리를 마련했다.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은 남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자기만 구원받고 이웃의 구원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참으로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 모임은 대단히 은혜스러워 자리를 함께 한 세리나 죄인들이 대부분 주님을 따르게 되었다(막2:15).
이때 놀라고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학자나 바리새인들이었다. 뱀처럼 혐오했던 세리의 집에 예수와 그 제자들이 초대를 받아 참석하고 동석한 자들은 모두가 세리와 죄인들이니, 명색이 그리스도라고 자처하는 자가 이 무슨 꼴인가 하고 그들은 비난했다. 이에 대해 주님의 입에서는 참으로 귀한 말씀이 흘러나왔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막2:17).”
얼마나 귀한 위로의 말씀인가? 인류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있을까?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잠든 죄인이거나 아니면 깨어난 죄인이다.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있는 사람보다 죄가 없다고 자부하고 남을 얕보는 사람은 더욱 큰 죄인이다. 자기가 죄인인 줄 알게 된 세리나 창녀들은 자칭 의인보다 훨씬 의로워졌다고 주님은 가르치셨다. ‘죄인의 친구인 예수님’이야말로 멸망해 가는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다. 마태는 은혜 안에서 자기의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여 12사도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 마태는 전승에 기록된 대로 15년 동안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여러 사도들은 복음을 들고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로 나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로 인하여 주님을 알게 되고 교회가 세워진다는 좋은 소식들이 들려왔으며 거기에서 용기를 얻어 마태도 마침내 복음을 들고 길을 떠났다.
마태는 아람어로 마태복음을 기록했으며 당시 북부 팔레스틴 사람들은 아람어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후에 그는 히브리어로 많은 사본을 만들어 그가 다녔던 곳마다 복음의 소식을 나눠주었음이 분명하다. 마태가 히브리어로 된 복음을 가지고 사역을 했다는 것이 이방인들보다도 유대인들을 더욱 많이 개종시킨 이유 중의 하나로 들 수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될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을 많이 다루고 있다. 그러한 구약의 인용구들은 이방인들에게는 이렇다 할 감명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마태도 종국에는 유대인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이리하여 그의 발길은 들을 귀를 가진 이방인들에게도 향했다. 마태가 여러 명의 왕들과 고위 관리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많은 전승과 전설들이 있다. 그는 학식 있는 사람이었고 주님을 따르기 이전에 관리로서의 그의 경력을 상기해 볼 때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그는 고위 관리들이나 왕족들의 세계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적절하게 복음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로마 카톨릭 전승에 기록된 대로 마태가 아프리카에 있는 이디오피아에도 복음을 들고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의 시신이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발견되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다나시우스파의 한 수도사가 발견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후 교회는 마태의 시신을 이탈리아 살레르노로 가져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후에 사도의 유해를 모실 웅장한 성당이 세워졌다. 마태 사도의 유해의 일부분이 로마로 옮겨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로마로 유해의 일부분을 옮겨간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까지도 마태 사도의 대부분의 유해는 살레르노에 보존되어 있다. 마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각기 분분해서 그가 정확히 어디에서 죽었는지 규명되지는 않았다. 산헤드린 전설은 마태가 이집트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마태는 아프리카에 있는 이디오피아에서 돌아와 이집트에서 순교를 했다는 추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도출된 결론이 확실한 것은 아니다.
다른 대부분의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마태 또한 여러 나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레니우스는 마태가 히브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말한다. 이레니우스가 말한 히브리인들이란 팔레스틴에 있는 유대인들인지 아니면 저 멀리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아마도 이들 유대인들을 모두 가리키는 듯 하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마태가 복음을 들고 수고한 햇수는 15년이라고 말했다. 클레멘트는 또한 마태가 이디오피아, 그리스 북부에 있는 마케도니아, 시리아, 그리고 페르시아까지 갔다고 증언하고 있다. 초기의 그리스도인 작가들은 헤라클레온의 말을 인용하여 마태는 순교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작가들은 그가 고통스럽게 죽어갔다고 주장한다.
● 마태는 마태복음서를 기록할 때에 과거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이 될 수도 있는 ‘세리’라는 칭호를 자신의 이름 앞에 겸손히 덧붙이고, 또 자신은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왕되심만을 신실히 증거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할 자로서 택함 받은 우리는 겸손히 나를 감추고,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존귀히 드러나도록 애써야 하겠다.
마태는 과거 자신이 세리로 있을 때에 유대 공동체로부터 죄인 취급당하며 소외받았지만, 오히려 유대 성도들을 위해 히브리어로 마태복음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동족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예수님을 좇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같이 죄인 취급을 받는 여러 동료들에게도 주님을 만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주를 따르는 것이 아닌, 열정에 찬 뜨거운 감사와 순종으로 주를 따라야 하겠다. 또한 나 혼자만의 구원 받음에 만족하지 말고, 나와 같이 힘들어 하는 여러 이웃들에게도 새로운 삶, 곧 복된 소망의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소명을 받은 순간부터 묵묵히 예수님을 따르던 마태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붙잡히실 때 도망치는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체험한 후에는 사도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고, 마태복음을 기록하여 복음을 전파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연약한 성도를 담대케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셨으며 성령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이 사실을 늘 기억할 때만이 담대하게 주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성경인물설교(45) 마태|작성자 예레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