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이제 와 우리 죽을 때에 /박노해

헤븐드림 2016. 5. 25. 23:29







 이제 와 우리 죽을 때에 


하나님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제 남은 길이 아무리 참혹해도 
다 받아들이고 그 길을 따를 테니 
제가 죽을 때 웃고 죽게만 해 주세요. 

다른 거는 하나도 안 바랄게요. 
그때가 언제라도 좋으니 
"저, 잘 놀다갑니다." 
맑은 웃음으로 떠나게만 해 주셔요. 

저도 제 사랑하는 이들께 
삶의 겉돌기나 하는 약속 따윈 하지 않을게요. 
오직 한가지만 다짐할게요. 
우리 죽을 때 

환한 웃음 지으며 떠나가자고 

"고마웠습니다. 저 잘 놀다갑니다" 
그렇게 남은 하루하루 

남김없이 불살라가자고. 


(박노해·시인,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