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가난한 오늘 / 이병국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헤븐드림 2013. 5. 1. 07:48

 

 

 

 

 가난한 오늘 / 이병국


  검지손가락 첫마디가 잘려나갔지만 아프진 않았다. 

다만 그곳에서 자란 꽃나무가 무거워 허리를 펼 수 없었다. 

사방에 흩어 놓은 햇볕에 머리가 헐었다. 

바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은 여전히 형태를 지니지 못했다.

  발등 위로 그들의 그림자가 지나간다. 

망막에 맺힌 먼 길로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나는 허리를 펴지 못한다. 

두 다리는 여백이 힘겹다.

  연필로 그린 햇볕이 달력 같은 얼굴로 피어 있다. 

뒤통수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양손 가득 길을 쥔 네가 흩날린다. 

뒷걸음치는 그림자가 꽃나무를 삼킨다. 배는 고프지 않았다.

  꽃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