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섬, 이유 / 김유경
이 섬에선 사람이 죽으면 바람에 묻는다 그건 섬의 풍토병 같은 내력이어서 묘비명이었다 남은 여자들이 제 주검을 보듯 길게 울다 돌아갔다, 섬에서 여자가 죽으면 살아서 뜨겁고 애달팠던 곳이 먼저 젖는다 바람은 젖어 있는 것부터 시나브로 말린다 소금에 간이 밴 깊이를 모두 말려 눈물의 뿌리가 마른 우물처럼 어물어물 붉어지고 꼭 쥐고 있던 바람의 손아귀가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돌아오지 않는 아비들의 빈 배가 웅웅 우는 소리를 죽은 여자는 그 소리에 기대어 바람 몰래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 머리칼은 제멋대로 자라나온다 아이를 품은 움 같이 보드라운 궁륭, 해초 내음이 나날이 짙어졌다 마침내 바람이 여자를 온전히 데려갈 때 죽은 여자는 아이를 홀로 누워 있었던 자리에 노란 은행잎이 수북수북 쌓인다, 가을 한 철 내내 바람의 장례가 제 열매 다 익도록 잎을 물들이지 않는 은행나무의 사랑 같은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바람이 먼 바다 부표를 향해 치솟아 아이는 그 바다 어디쯤에서 돌아오지 못한 제 아비를 그대로 빼닮았지만 섬도 바람도 그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