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201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섬, 이유 / 김유경

헤븐드림 2013. 3. 19. 22:52


      201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섬, 이유 / 김유경



      이 섬에선 사람이 죽으면 바람에 묻는다
      그건 섬의 풍토병 같은 내력이어서
      여자는 바다로 떠나 돌아오지 않는
      아비의 아이를 박주가리 씨앗처럼 품은 채
      바람에 묻혔다
      은행나무가 여자의 무덤이며
      묘비명이었다
      남은 여자들이 제 주검을 보듯
      길게 울다 돌아갔다,
      섬에서 여자가 죽으면
      살아서 뜨겁고 애달팠던 곳이 먼저 젖는다
      바람은 젖어 있는 것부터 시나브로 말린다
      소금에 간이 밴 깊이를 모두 말려
      눈물의 뿌리가 마른 우물처럼
      바닥을 드러내면 영혼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의 법이다
      하루 두 번 물마루 끝이
      어물어물 붉어지고
      꼭 쥐고 있던 바람의 손아귀가
      스르르 풀리면
      섬은 귀를 열고 듣는다,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돌아오지 않는 아비들의 빈 배가
      웅웅 우는 소리를
      죽은 여자는 그 소리에 기대어 바람 몰래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
      뭉텅뭉텅 사라지는 몸에서
      눈동자는 빛을 잃고,
      머리칼은 제멋대로 자라나온다
      아이를 품은 움 같이 보드라운 궁륭,
      그 곳에선 바다 밑바닥에서만 나는
      해초 내음이 나날이 짙어졌다
      마침내 바람이 여자를 온전히 데려갈 때
      죽은 여자는 아이를
      은행나무 잎 속에 묻어두고 떠난다,
      홀로 누워 있었던 자리에
      노란 은행잎이 수북수북 쌓인다,
      가을 한 철 내내
      바람의 장례가 제 열매 다 익도록
      잎을 물들이지 않는
      은행나무의 사랑 같은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바람이 먼 바다 부표를 향해 치솟아
      올라 길을 잡고 여자의 푸른빛 인광은
      그리운 바다를 향해 따뜻하게 흘러간다,
      아이는 그 바다 어디쯤에서
      돌아오지 못한 제 아비를
      그대로 빼닮았지만
      섬도 바람도 그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