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책읽기

남한산성/김훈 장편소설

헤븐드림 2011. 11. 26. 01:47

 

 

1636년 겨울, 인조의 어가행렬은 청의 진격을 피해 남한산성에 들었다. 그후 47일.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참담했던 날들의 기록을 담은 김훈의 신작 장편.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렇게 다시 조국의 가장 치욕적인 역사 속으로 뛰어든다.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갇힌 성 안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을 담고 있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 ‘수성守城이 곧 출성出城’이라는 헌걸찬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김훈은 370년 전 조선 왕이 ‘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하였다. 갇힌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무섭도록 끈질긴 질감을 보여준다.

金薰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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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눈보라
언 강
푸른 연기
뱃사공
대장장이
겨울비
봉우리
말먹이 풀
초가지붕
계집아이

바늘
머리 하나
웃으면서 곡하기
돌멩이
사다리
밴댕이젓
소문

말먼지
망월봉
돼지기름
격서
온조의 나라
쇠고기
붉은 눈
설날
냉이
물비늘
이 잡기
답서
문장가
역적
빛가루
홍이포
반란
출성
두 신하
흙냄새
성 안의 봄 
하는 말 
남한산성 지도 
연대기 
실록 
낱말풀이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 죽고,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는 순환의 고리가 김류의 마음에 떠올랐다. 버티는 힘이 다하는 날에 버티는 고통은 끝날 것이고, 버티는 고통이 끝나는 날에는 버티어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지 김류는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그날, 안에서 열든 밖에서 열든 성문은 열리고 삶의 자리는 오직 성 밖에 있을 것이었는데, 안에서 문열 열고 나가는 고통과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통의 차이가 김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김류는 느꼈다.--- p.93


 

서날쇠는 새벽에 떠났다. 김상헌이 떠나는 서날쇠를 성벽까지 따라갔다. 동쪽 성벽은 옹성을 지나서 오르막으로 치달았고, 그 아래에 배수구가 뚫려 있었다. 서날쇠는 배수구를 향해 산길을 걸었다. 지팡이가 눈 속으로 빠져서 김상헌은 자주 비틀거렸다. 서날쇠가 김상헌을 부축했다.
- 대감, 여기서부터는 더 가팔라집니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 아니다. 떠나는 걸 보고 싶다.
서날쇠의 행장은 가벼웠다. 초로 봉항 격서를 기름종이에 싸서 저고리 속에 동였다. 등에 진 바랑 하나가 전부였다. 바랑 안에는 가죽신 세 켤레와 버선 한 죽, 호미 한 개, 칼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서날쇠는 먹을 것을 지니지 않았다. 김상헌은 서날쇠의 바랑 속이 궁금했다.
- 끼니거리는 지녔느냐?
- 먼 길을 가니, 한두 끼를 지녀서 될 일이 아니옵고......
- 어찌하려느냐?
- 백성들이 아직 살아 있으니 얻어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빈 밭을 파면 뿌럭지들이 나옵니다.
김상헌의 목젖이 뜨거워졌다. ...날쇠야, 너는 갈 수 있고, 너는 돌아올 수 있다......
--- p.231


 

적이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종묘와 사직단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도성이 포위되면 서울을 버릴 수 없을 것이고, 서울로 다시 돌아올 일은 아예 없을 터였다. 파주를 막아 낼 수 있다면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서울을 버려야 할 일이 없을 터이지만, 그 말이 옳은지 아닌지를 물을 수 없는 까닭은 적들이 이미 임진강을 건넜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 pp.18~19

눈 덮인 성벽에 햇빛이 내려서 성은 파란 하늘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 북쪽 능선을 넘어가는 성벽 위에 낮달이 떠 있었다. 간밤에 작은 교전이 있었는지 성벽에 돋아난 나뭇가지에 찢어진 시체가 몇 구 걸렸고, 시체 언저리의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용골대가 통역 정명수에게 말했다.
-단단해 보인다. 산골나라에
... 펼처보기 --- p.218


 

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1636년 12월 13일 조정은 청의 대군이 청천강을 건너 한양을 향해 진격 중이라는 장계를 받고 술렁인다. 9년 전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들어가야 하는가. 분분한 논란이 이어지고 인조의 어가행렬은 황망 중에 강화행궁을 향한다. 그러나 이미 청군은 가는 길을 차단했다. 인조는 얼어붙은 송파나루에서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양주 석실에서 형 김상용이 보낸 급보를 받고 남한산성으로 출발한다. 송파나루에 닿은 그는 뱃사공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강을 건너는데, 얼음길을 잘 아는 뱃사공에게 함께 남한산성에 들기를 청하나 뱃사공이 거절하고, 김상헌은 뱃사공을 죽인다. 한편 산성 안에서 대장장이 서날쇠는 아내와 쌍둥이 아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 대장간을 지킨다.

성 안은 춥고 식량은 모자라며, 말들은 먹을 풀이 없었다. 비와 눈이 모질게 내려 얼어 죽는 병사들이 속출했고, 말들은 굶주려 죽는다. 청나라 장수 용골대는 삼전도에 진을 치고 성 밖을 둘러싼 채 항복을 요구하고 있었다.

전면전은 엄두를 낼 수 없고 몇 명씩 유군을 편성, 암문을 통해 나가 소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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