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댁 대문을 들어서면 감나무에 묶인 철사 줄이 마당을 가로질러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빨랫줄을 따라가다 보면 마당중간쯤에 붕긋 솟아오른 장대가 줄을 떠받치고 서 있고, 장대를 중심으로 옷이 널려있었다. 그 집 옷가지들은 우리 집 빨랫줄에 널린 것과 달리 하나 같이 무명치마와 몸빼바지 뿐이었다. 고부간, 두 여자만 살고 있으니 남자 옷이 없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왠지 가슴이 허전해왔던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어 그랬던 것 같다.
빨랫줄을 떠받치고 있는 장대와 그 집 안방 문은 마주하고 있었다. 장대에 한 손을 잡고 서서 축담을 바라보면 댓돌이 보이고 댓돌 위에는 남자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새 구두도 아니고 기름기가 빠진 낡은 구두를 멀찍이서 바라다보면 내 눈에는 아버지가 신다버린 헌 구두 같아보였다. '왜 우리아버지 신발이 저기 있지?' 호기심이 발동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날 온 식구가 두렛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때 나는 창녕 댁 구두에 대해 물었다.
그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잠시 멀건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말고 헛기침만 했다. 대신 누나와 큰 형의 눈이 심상치가 않았다. 한마디만 더 하면 머리를 쥐어박을 것처럼 험상궂은 얼굴로 나를 째려봤다. 왜 저런 얼굴을 할까? 어린나이였지만 더 이상 물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 분위기를 알아채고 입을 다물었지만 그럴수록 더 궁금해져 왔다. 하지만 달리 물을 때도, 묻는다고 내게 가르쳐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다들 쉬쉬 했구나!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내 스스로 해답을 찾으며 고개를 끄덕일 나이가 됐을 때, 나도 그들처럼 쉬쉬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마을에는 유달리 고철동가리가 많았다. 허물어진 담장을 다시 쌓으려고 바닥을 파다보면 퍼렇게 녹이 쓴 총알과 유탄들이 나왔다. 때로는 포장된 채 묻혀 있는 포탄도 있었다.
6.25 전쟁 때 우리 마을은 인민군 치하에 있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쌍방 간에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곳이라 미군 폭격에 떨어진 유탄과, 인천상륙작전이 있은 후 서둘러 철수하던 인민군들이 땅에 묻어둔 것들이었다.
담벼락에 박힌 탄피나 포탄파편을 빼내 엿이나 바꿔먹던 내가 창녕 댁이 혼자 된 사연을 알게 된 것은 유복자였던 그 집 딸이 물에 빠져 죽은 다음날이었다.
봉창이 희뿌옇게 밝아 올 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 그 누나를 땅에 묻고 돌아온 아버지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에 박복한 사람, 아이고 박복한 사람 연신 그 말을 하며 혀를 찼다.
어머니는 창녕 댁과 둘도 없는 사이였다. 어쩌다 고깃국을 끓이는 날에는 나는 쟁반에 국그릇을 받쳐 들고 그 집 대문을 들락 거렸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창녕댁네에서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유복자 누나가 우리 집 대문을 들어 설 때도 있었다. 그게 어머니와 창녕 댁이 쌓아온 정이라면 두 사람보다 더 오래 우정을 쌓고 지낸 사람이 아버지와 창녕양반이었다. 그런 사이였으니 그 집 궂은일을 해주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껏 내가 몰랐던 게 있었다. 아버지는 창녕 댁이 혼자 된 게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동네를 잠시 점령해 있던 인민군들이 물러가자 도망을 쳤거나 몸을 숨겼던 사람들이 다시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적이 물러갔다며 만세를 부르며 그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쟁보다 더 무섭고 더 큰 희생을 치르는 일이 우리 마을에 일어났다. 그들은 인민군보다 나은 게 없었다. 담장을 기웃거리는 그들의 눈빛에 마을은 공포에 휩싸였고 민심은 날로 흉흉해져갔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한 사람이 붙들려 가면 줄줄이 잡혀갔다. 그들에게 붙들려 간 사람들의 대부분은 미쳐 피난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거나 양식을 구하려 내려온 사람, 모내기한 논에 물고를 보러 내려왔다 인민군에 붙잡혔던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도 현실을 비켜갈 수 없었다. 아버지는 잠을 자다 말고 동구 밖으로 끌려 나갔다. 그곳에는 창녕양반과 마을 사람 몇이 잡혀와 있었다.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그냥 조사차원에서 불려나온 게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다. 이미 뒷조사를 끝내고 온 건 아닐까? 예감이 이상했던 아버지는 창녕양반에게 도망치자고 했다. 아저씨는 자신은 인민군을 이롭게 하거나 도운 게 없는데 설마 무슨 일 있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날 붙잡혀 간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 중이라 재판도 없었고, 어떻게 죽었는지 시신도 찾을 수 없었다. 이듬해부터 우리 마을에는 창녕 댁을 포함해서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느라 새벽녘까지 등불을 밝힌 집이 네댓 집이나 됐다.
한바탕 회오리가 지난 후 마을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날 일은 기억에 없었다. 아니 억지로라도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도 죽은 사람도 모두가 죄인이었다. 그 사람은 죄가 없다며 거들고 나섰다가는 행여나 낭패를 당할까봐 아무 말 못했고, 사지로 잡혀가는 사람도 내가 아니고 저 사람이다 말을 한다고 해도 숫자만 불어날 뿐 살아날 길이 없었다. 산 사람은 죄가 없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었고, 죽은 사람은 죄가 커서 죽은 게 아니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이고, 운이 나빠 그렇게 된 것뿐이었다. 그 자리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 차이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쩌다 이웃끼리 싸움을 해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그 일이었으며 한 번도 깨지지 않은 불문율이었다. 그들에겐 과거는 아픔이며 어느 누구도 비켜날 수 없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 뿐이었다.
아버지는 친구와 함께 도망치지 못하고 혼자 살아 나온 게 미안해서 창녕 댁네에 무슨 일이 있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나섰던 것이다. 그게 살아남은 자신의 할 몫이고 그렇게 간 친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창녕 댁은 왜 남자구두를 놓아두었을까. 나라도 지켜주지 못한 일을 스스로를 지키려고 그렇게 구두를 놓아둔 것이었을까. 빨랫줄에 널린 옷보다 댓돌 위에 놓여 있던, 낡은 구두가 더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담과 이브의 삶/석희구 목사 (0) | 2024.12.13 |
---|---|
당신의 웃음/김진악 (0) | 2024.11.02 |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김우영 (0) | 2024.08.13 |
인생은 한 편의 시 / 임어당 (0) | 2024.07.30 |
시간의 흐름과 생명살이의 관계를 생각하며 /김우영 (0) | 2024.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