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그리고 이중섭 그림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한국화가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인, 이중섭! 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중섭, 이중섭..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고, 또 그분의 작품을 이곳저곳에서 많이 보기는 했지만.... 언제 태어났고, 왜 그림을 그렸고, 어떤 그림을 그렸고, 누구와 결혼했고, 언제 돌아가셨는지... 등에 대해서, 사실 아는 것에 비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던 것 같네요. 앤디워홀, 피카소, 클림트 등 외국 유명한 화가에 대해서 아는 것도 좋겠지만, 그 보다 먼저 우리나라의 멋진 화가님들 알아보고 싶습니다.
다소 부족한 내용이 있겠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마음으로 적어보겠습니다. 아래의 이미지들은 이중섭 화가의 작품들인데요. 솔직히~ 오늘 온라인으로 겨우 이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이중섭의 그림들이 좋아지더라고요. 왠지 모를 감동이랄까. 예전에 관심 없이 봤을 땐,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역시 최고의 화가라고 생각이 들 정도네요.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났습니다. 1916년이면 약 100년 전이네요. 2016년이면 100년이 되는 거네요.
이중섭은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1931년 평안북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을 했고, 미술부에 가입해 당시 교사였던 백남순, 임용련 부부의 지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임용련은 미국 예일대에서 미술공부를 했고, 파리에서 활동을 했다고 하네요, 당시 대부분의 작가의 유학지가 일본이었는데, 임용련은 드문 이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식민당국의 우리말 말살정책에 반발한 그는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된 그림을 그렸고, 한글 이름쓰기를 실천했다고 합니다. 1934년 일본회사의 보험금을 타서 한교를 재건하겠다는 의도로 친구들과 교사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졸업 기념사진첩에 일제에 항거하는 그림을 그려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하네요.
1935년 졸업 후 곧 일본 동경으로 가서 테이코쿠 미술학교(제국미술학교=현재의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서양학과로 입학했습니다. 이중섭은 여기서 곧 제국미술을 그만 두고 분카가쿠엔(문화학원) 미술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분카가쿠엔은 당시 일본 미술계에 유입되었던 전위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중섭은 강렬한 야수파의 조형성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참가한 공모전 등에서 상을 받으며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무렵 미술학교 후배인 야마모토 마사코(한국이름 이남덕)를 알게 되었고, 사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중섭의 반일 감정과 일본에서의 대학생활, 그리고 일본인 마사코와의 연애와 결혼은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없잖아 있네요 - 개개인의 사랑은 반일 감정-민족감정-과 역시 무관한 것 같아요.)
1940년 졸업을 하고 각종 전시회에서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때쯤 이중섭은 여친 마사코에게 그림 엽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이중섭은 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원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해인 1945년 4월 마사코가 홀로 현해탄을 건너와 원산으로 와서 결혼을 했습니다. 1946년 첫 아이가 태어났지만 디프테리아가 아이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이중섭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 첫 아이와 관련 된 그림 : 하얀 별을 안고 하늘을 나는 어린이
6.25전쟁이 발발하였고, 이중섭은 전국을 전전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1946년, 31세 쯤 부인이 일본인이어서 친일파로 분류되었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서 자주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이중섭 그가 32세 때에 큰 아들 태현(1947년생)과 차남 태성(1949년생)이 태어났다고 하네요. 그리고 피난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갑니다. 1951년 36세 초에 가족과 부산을 떠나 제주도로 갔습니다. 여러 날 걸어 서귀포에 도착, 서귀포에서 만난 주민이 방을 내주어 안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중섭과 그의 가족은 제주도에 정착했지만 가난이 계속 되어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인 수용소에 들어갔다가 곧 일본의 친정으로 가고 이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그 후 이중섭은 1953년 도쿄에서 단 5일의 해후를 끝으로 가족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됩니다.
지인의 도움으로 1954년까지 통영에 머물렀던 그는 소 연작과 부부 등 한국미술의 대표작을 완성합니다. (아픔 속의 예술)그때부터 부인과 두 아들에게 보내는 그림편지가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이후 진주, 서울, 대구 등을 전전하며 전람회 출품작에 몰두하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술로 달래던 이중섭은 1956년 9월 6일에 간장암으로 사망하였습니다.(서울 적십자 병원)
- 이중섭의 인생, 그리고 그의 작품... 아름답지만 슬프네요.
아래는 이중섭의 작품들입니다. 총 300점이라고 하는데... 그중 극히 일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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