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황금찬
아침 식탁에
한 그릇의 국과 몇 술의 밥
살찐 무 배추로 된 식찬
그것으로 나의 하루는
행복하다.
출근 가방에
시집 한 권
채근담이나 아니면
수필집
무겁지 않게
그것으로 고단한 영혼을
위로하고.
운수 좋은 날이면
퇴근길에
친구와 만나 차를 나누고
그 비어가는 찻잔에
젊은 추억을 담아도 본다.
세월은 허무하고
인생을 무상하다고 말하지 말라
아직도 너와
내 앞엔
하늘꽃 한 송이가
피어 있지 않는가
오늘과 내일도 영원 안에 있느니.
1918년 8월 10일 강원도 속초(당시 양양군 도천면)에서 태어났다. 열네살 때 함경북도 성진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이생활>이란 청소년 잡지를 보면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3] 해방 후 함북 성진에서 강원도로 내려와, 1946년부터 9년간 강릉에 살았다. 교직 생활을 보내면서도 문인들을 여럿 길러냈고, 1952년에는 시동인지 <청포도>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이때의 활동은 강원도 문학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3] 이후 1953년 문예로 문학계 등단[4] 이어 시인 박목월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시를 기고하며 문학계에 등단했다.[2][5] 1954년 서울 용산구 후암동으로 이사한 후 돈화문로의 초동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했고, 이때부터의 경험이 그의 문학세계에 기독교적 바탕을 깔게 되었다.[3]
1965년 첫 시집 〈현장〉을 내고 활발한 문학 활동을 벌였다. 이후 〈五월나무〉(1969)와 〈나비와 분수〉(1971), 〈오후의 한강〉 (1973) 등의 시집을 출간하며 수십여 권의 시집을 냈다. 초창기 작품은 시조적 발상에서 비롯된 향토색이 많았다. 이후 현실성이 강해지며 서술적 표현을 통한 아름다운 시구를 남겼다.[2]
문학 원로로써 제자들에게도 존경받는 선생이었는데, 2016년 백수연 행사에서 제자 김문중 시인 외 다수으로부터 2018편의 필사집을 헌정받았다. 제자들을 중심으로 그의 이름을 단 문학관 건립도 추진 중에 있으며, 후배들에게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2]
2017년 4월 8일, 오전 4시 40분 강원도 횡성의 자택에서 건강 악화로 인해 향년 99세로 숨을 거두었다.[5] 41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4월 11일에 발인을 거쳐 경기도 안성시 초동교회 공원 묘지에 안장됐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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