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의일상

고 김남조 시인을 추모하며

헤븐드림 2023. 10. 12. 06:04

아가(雅歌) 2

김남조


네게로 가리
한사코 가리라
이슬에 씻은 빈손이어도 가리라
눈 멀어도 가리라

세월이 겹칠수록
푸르청청 물빛
이 한(恨)으로 가리라

네게로 가리
저승의 지아비를
내 살의 반을 찾으러
검은머리 올올이
혼령이 있어
그 혼의 하나하나 부르며 가리


네게로 가리

 

시인의 시심은 늘 온화하고 유려했다. 1000여편의 시를 쓰고도 못다한 마음을 어쩌면 위의 대상이 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김남조 시인의 시와 수필을 읽으며 나 역시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친 적이 있었다.

어떻게 이리도 섬세하게 자신의 정서와 사고를 펼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도 들었었다. 시인은 그만큼 뛰어난 시인이다.

내가 김남조 시인의 겨울 바다를 처음 읽고 난 다음 두번째로 읽은 시는 바로 가난한 이름에게이다

 

가난한 이름에게

김남조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검은 벽의 검은 꽂그림자 같은
어두운 香料(향료)

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
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 겨울밤
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얼굴을 가리고
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

불신과 가난
그 중에 특별하기로 역시 고독 때문에
어딘 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
허무와 이별
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
때론 골똘히 죽음을 생각하는
고독한 여인네와

이렇게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
머리를 수그리고
당신도 고독이 아쉬운 채 돌아갑니까

인간이란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
못 가진 이름 울면서 눈감고 입술 대는 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
나는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

사실 젊었을 때는 고독이라는 말이 익숙치 않았다

시인이 시를 쓰기위해 과장법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감이 들었다.

고독하기 때문에 멋진 세상에 합류 못하는 영혼들이 많긴하다는 지금에서야의 생각이다.

 

이 시는 오늘 내가 김남조 시인에게 다시 돌리고 싶은 편지이다. 시인은 사랑스럽게 시로 내게 다가와 외롬을 알려주고

슬프게 하고 나의 안을 들여다 보게 하여 고스란히 나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준 사람 중이 한 분이다.

그래서 오늘은 김남조 시인의 깊이 있던 글을 되새기며 시인의 타계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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