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외국땅에서 초라하게 살다간 한 여인/정희숙 수필가

헤븐드림 2023. 4. 23. 13:14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에서 누릴 복이 정해져있는가? 파라다이스의 꿈을 그리며 더 좋은 복, 더 큰 꿈을 그리며 건너온 이곳 미국, 어느덧 3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후덥지근하고 비릿한 바다 냄새를 실은 바람이 탐스럽게 매달려있는 코코넛 열매를 당장이라도 땅바닥에 떨어뜨려 버리려는 듯 주위를 맴돌다가 사라지는 플로리다 한 여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S라는 여인은 자그마한 키에 당차고 바지런 하며 얼굴은 항상 미소를 머금고 활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신앙심도 대단하여 모두들 힘들어 하는 외국생활에 슈퍼 우먼처럼 살아갔다. 하지만 혼자 살기엔 고독하고 외로웠던 S는 아는 분의 소개로 누군가를 알게 되었다 그저 행복하기만 했고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니 지금 당장 죽는다 할지라도 행복한 나날들이였다. 시간은 흘렀고 이제는 이 남자는 내 남자라고 마음을 놓으려고 할 즈음 K는 철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S의 신분으로 미국에 자리를 잡게 된 K는 한국에 두고 왔던 가족을 미국으로 데려오고 본 가족에게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S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였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고 흐르는 세월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휘청거리며 화장품 장사로부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변변한 옷 한 벌 사 입지 못하고 그리고 정상적인 신체검사 한번 받아보지 못한 S의 몸속엔 이미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항상 S를 짓눌렀지만 혼자의 목숨 부지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했다. 고통에 못 이겨서 병원으로 실려 갔을 때엔 암세포가 이미 온몸에 퍼져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 할지라도 현대 의학으로는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항이었다.


몸이 약하여 방사선 치료도 불가능하여 하루하루 고통을 호소하며 기적을 기다릴 수밖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한국엔 언니와 남동생이 있지만 연락 하는걸 극구 말리는 것을 몰래 수첩을 뒤져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한숨에 날아온 언니는 10년 동안 보지 못했던 동생이 초라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은 대단했고 마음이 찢기는 듯 몸부림치며 우는 것이었다. S의 몸은 꺼져가는 작은 촛불처럼 점점 더 빠른 시간에 쇠약해저 가고 있었지만 한 많은 세상이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있었던지 간절히도 기적을 바랐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가면서도 그이가 또 다른 병원 입원실인줄 알고 깨끗해서 좋다고 하던 S였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가 그 병원을 도착 했을 때는 S는 숨을 거둔 뒤였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길조차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 외롭고 초라하게 생을 마감한 것이다. 죽어서도 관하나 준비되지 못한 불쌍한 한 여인의 이국땅에서의 마지막 길….

죽은 사람은 두시간 이상 병실에 두지 않는다 하면서 호스피스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표정이 없는 남자가 나타났다. 우린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한참 후에 그남자는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하얀 시트로 꽁꽁 말린 시신을 밀고 나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의문투성이였다. 시신을 밀고 가는 그를 뒤따라 차에까지 갔다. 그 남자는 트렁크를 열더니 시신을 마치 장작개비 던지듯이 아무렇게나 던져 넣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본 난 아찔하게 현기증이 일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S는 한줌의 재로 변하여 작은 종이 박스에 담겨서 돌아왔다.

미국인 교회에서 박스 안에 담긴 S의 시신을 올려놓고 장래예배를 드려 주었다. 마지막 가는 S를 위하여 우린 최선을 다해서 꽃 장식을 해주었다. 장래 예배가 끝난 뒤 우린 이제 S를 어떻게 처리해 주어야 할지 난감했다. 산 좋고 물 좋은 우리 고국이라면 곱게 묻어줄 곳도 또는 흐르는 강물 위에 뿌려줄 곳도 많지만 열대지방에다가 조금만 숲이 보인다 하는 곳이면 악어가 우글대는 이 플로리다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따라 쉽게 그칠 온종일 비가 내렸다.

우린 우리가 가끔 가던 인적이 드문 공원을 택하기로 했다. 공원 안을 들어가 한참 운전해서 들어가면 외진 곳에 정자처럼 지어져있고 얕은 물줄기가 모래를 살랑 살랑 뒤흔들며 일렁이는 곳이 있었다. 외국 부부 두 사람과 몇 사람이 함께 해 주었다. 마치 모래주머니처럼 S를 손에 덜렁 덜렁 들고서 그곳에 도착했다. 비가 내려서 인지 다행히 인적은 없었다.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그 광경을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할 수 없다. 한 사람은 망을 보고 있다가 “지금 이예요”라고 신호를 하면 빠른 동작으로 쏟아붓기로 약속했지만, 지금이라는 소리가 들릴 때 마다 “안돼!”하며 울부짖는 S의 언니 비명 소리에 우린 불안하고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한참 후에야 우린 한 여인의 시신을, 한줌의 재로 변해 버린 한 여인의 육체를 모래주머니를 비우듯이 버리고 왔다.

이것이 한 인간의 삶의 마감이란 말인가? 파리 목숨보다 못한 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떨었고, 마지막 가는 한사람에게 이렇게 밖에 해줄 수 없다는 현실의 비참함에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먹히질 않았다. 하지만 그런 쓰디쓴 아픔의 기억들도 시간 속에 묻혀서 사람들의 기억의 저 편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외로운 타국생활 이방인의 삶 불쌍한 사람은 단지 이 한 사람뿐만이 아니다. 미국까지 와서 남편에게 버림받아 정신 병원에 버려진 여자,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

오늘도 변함없이 해는 떴다가 붉은 노을을 곱게 남기고 멀어져 고 있다. 노을 저무는 서 쪽 하늘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시간, 야무진 희망으로 행보하게 웃으며, 친구들과 해가는 줄 모르고 입술이 새파랗게 물들도록 진달래꽃잎 따 먹던 어린 시절 그립기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