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수필의 눈/정목일

헤븐드림 2023. 4. 19. 04:14



수필의 눈 
/ 정목일

 

평생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언젠가 문리文理라 트이지 않을까 싶다.

한 늙은 석공石工의 얘기로는 바위를 정으로 두드려보면 소리가 다르다고 한다. 만 년 침묵을 지닌 바위들도 깨달음의 깊이가 달라 영혼에서 나는 소리가 각각이라는 것이다. 평생을 나무만을 다뤄온 소목장小木匠은 나무의 겉모습을 보고서 속에 품고 있는 나이테의 무늬, 목리문木理紋을 짐작한다.

석공이나 목공이 한 점의 명품을 남겨놓기까진 일생을 통해 터득한 솜씨와 집중력을 기울였을 것이지만, 먼저 좋은 돌과 나무를 만나야 한다. 어떤 소재를 만나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게 되는 것은 자신만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 가지 일에 정성을 다한 끝에 마음이 열려 영감이 우러난 게 아닐까.

 

좋은 인생이어야 좋은 수필이 나올 수 있다. 인격에서 향기가 풍겨야 수필의 꽃이 피어날 수 있다. 좋은 수필은 마음이 피우는 깨달음의 꽃이다.

물질이 풍요할수록 정신은 황폐하고, 지식이 넘치나 인격은 저속하다. 재주는 비상하지만 덕이 부족하며, 문장은 유려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

마음속에 거울을 하나 간작하고 있어서, 맑고 깨끗하게 닦을 줄 알았으면 좋겠다. 마음속에 샘을 하나 파 두어서 마음에 묻은 이기의 때와 욕망의 먼지를 스스로 씻어낼 줄 알았으면 한다. 마음속에 종을 하나 달아 두어서, 양심의 종을 댕그랑 댕그랑 스스로 울릴 수 있길 바란다. 마음이 투명해야 자신의 영혼을 비춰보고, 사물의 영혼과도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재주와 솜씨가 모자라서 하늘의 도움이 있길 원한다. 인생 경지가 보잘 데 없기에 하늘이 살펴 저를 도구로 삼아 좋은 글을 쓰게 해달라고 기구해 본다. 어림없는 생각이 아닐까. 하늘도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인가를, 언제나 깨끗한 마음을 지닌 사람인가를 판정해서 영감을 주시리라 생각한다.

 

수필의 소재는 대개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것들이다. 신변잡사에서 시작되고 개인적인 체험일지라도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데 수필의 묘미가 있다. 인생에서 얻은 발견과 깨달음을 공유하려면 사소하고 평범한 것을 특별하고 비범한 것으로 바꿔 놓아야 한다. 체험하고 느낀 것을 그대로 쓰면 신변잡기로 자기만족의 글이 되고 말 것이다. 인생에 결부시켜 의미를 부여해야 수필이랄 수 있으며, 독자만족의 글이 될 수 있다.

 

작자만이 찾아낸 남다른 눈이 필요하다. 자신만이 찾아낸 비범의 눈이 있어야 맛과 광채가 난다. 드러난 것을 그대로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닿아 있고, 들리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에 닿아 있다. 생각나는 것은 생각나지 않는 것에 닿아 있다.’ 19세기 독일의 노발리스의 말을 음미해 본다.

경주에 가면 신라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들지만, 당시의 대표적인 사찰은 황룡사였다. 황룡사는 몽골의 군사에 의해 불타 주춧돌만 남았다. 폐허화 된 사찰 터만 남아 있고 당시의 모습은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주춧돌 위에 건축물을 상상으로 재현해 보고, 황룡사 건축미의 특질이 무엇이며, 핵심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신라 시대 종鐘을 보고 신라인들의 염원이 무엇이었으며, 마음의 추구와 의탁처를 찾아내고, 종소리의 특질과 여운의 미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리라.

 

아름다운 것, 깊고 오묘한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내면內面에 있고, 모습을 감추고 있다. 잘 드러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신비가 깃든다. 바깥만을 보는 데 머물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을 줄 아는 마음의 눈을 갖길 원한다.

음식을 보고 맛을 알고, 소리를 듣고서 표정을 보아야 한다. 단순하고 평범한 것들의 깊이와 멋을 찾아야 한다. 죽음에서 삶을 보고, 찰나에서 영원을 보아야 하리라.

보이는 것에 닿아 있는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에 닿아 있는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들을 줄 아는 마음의 눈과 귀는 인생 경지에서 얻어진다. 마음이 우러나오고 영혼 교감이 이뤄질 때까지 백 번 이백 번 보아야 내면을 들여다 불 수 있지 않을까.

 

지식만으론 깨달음의 눈을 뜰 수 없다. 지식은 경험이 없는 앎이다. 직접 경험에서 얻은 앎인 지혜를 통해야 한다. 지혜에는 시간과 마음이 연마가 필요하다.

글의 소재로 삼으려면 무생물이라 할지라도 생명과 사랑을 불어넣어야 한다. 대상을 열렬히 사랑해야 교감할 수 있다.

나만의 발견일지라도 다 드러내선 안 된다. 자신이 다 설명하고 묘사하려 들지 말고 독자들이 생각할 틈을 주어야 여운이 생긴다. 여백이란 그냥 비어둔 게 아니다.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며 마음의 여유가 아닐 수 없다.

퇴고가 많을수록 흠잡을 데가 없어진다. 글의 마무리, 퇴고의 솜씨야말로 완숙의 경지을 말하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퇴고의 달인이다. 퇴고를 적게 한 글일수록 후회가 남는다. 감정과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작품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래된 술이 맛과 향이 좋듯이 글도 오래 묵혀야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오랜 세월 동안 숙성시켜 발효돼야 먹음직한 젓갈이 되듯이 글도 오래 묵혀야 좋은 작품이 되는 게 아닐까.

 

수필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은 자신의 글에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쓴 글과 삶의 모습과 인격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 글은 향기를 잃고 만다.

좋은 글을 만나면 작가에게 경배하고 싶어진다. 좋은 수필을 쓴 이는 인생도 향기로운 것이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수필은 인생에 대한 깨달음의 글이다. 내면에 대한 응시이며, 알고 있음에 대한 표현보다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한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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