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길을 걷는다는 것/나태주

헤븐드림 2023. 4. 13. 06:47

 

오늘도 길을 걸었다. 오전에도 걸었고 오후에도 걸었다. 오후에는 동학사 쪽에 약속이 있어 택시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 한동안 걸어서 갔다. 아직은 여름 햇살이라 따가왔지만 그래도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도로를 버리고 논둑길로 걷고 밭둑길로도 걸었다. 모처럼 그렇게 걸어 보니 느낌이 아주 새롭고, 보고 듣고 하는 것들이 달랐다.

 

  단연 우리는 어디를 갈 때 주로 자동차를 이용한다. 자동차를 타면 시간이 단축되고 몸이 편하다. 그래서 아예 걷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걷는다 하더라도 그 걷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애쓴다. 그러면서도 운동 부족을 호소하고 러닝 머신 같은 운동 기구로 시간을 따로 들여 가면서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들의 조금은 모순된 일면이다.

 

 걷는 것이라 하더라도 길을 걷는 것과 러닝 머신을 이용해 걷는 것은 적잖이 다르다. 길을  걸을 때는 길 을 걸으면서 주변의 많은 사물을 보고 또 많은 소리를 듣는다. 그러니까 단순히 몸을 움직여 걷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인가와 상호 작용하는 만남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러닝 머신을 통한 걷기는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계속 되는 지루한 육체의 노역일 따름이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과 걸어서 가는 것은 사뭇 다르다. 자동차를 타고 갈 때는 자동차만 움직이고 사람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가는 것이 아니라 뭠춰져 있는 상태인것이고 여전히 방 안에 앉아 있는 꼴이 된다. 다만 움직이는 것은 창밖의 풍경일 따름이다. 이렇게 되면 방 안에  앉아서 텔레비젼이나 컴퓨터 화면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손님으로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번 건너다보라, 그의 얼굴은 얼마나 고독한 얼굴인가! 무었엔가 골몰하고 있는 그것은 피곤하고 짜증난 얼굴이기도 할 것이다.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얼굴은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무엇인가 상념에 빠진 얼굴이기 십상이다. 역시 피곤하고 고독하고 더 나아가 찌든 얼굴일 것이다. 다 같이 기계 속에 앉아서 길을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직접 길을 걸을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우선 그의 발바닥은 대지를 굳건히 디디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의 팔다리는 힘 있게  휘둘러지거나 움직일 것이고, 그의 가슴은 또 활발하게 숨을 쉴 것이다. 머리위로는 넓은 하늘이 펼쳐질 것이고, 그의 가슴 속으로는 많은 공기가 들락거릴 것이다. 그의 눈과 귀 또한 주변의 온갖 사물들과 상호 작용을 할 것이다. 때로는 땀이 나기도 할 것이고 숨이 가빠지기도 할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다. 그야말로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의 가장 아름다운 상태인 것이다.

 

 산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풀이 보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새로운 산이요. 나무요,풀이다. 그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만남의 시간이다.

 새소리를 듣거나 바람 소리, 물소리를 들었다 해도 그것은 또 전혀 새로운 소리들이다.  그렇게 하여 길을 걷는 사라람들에게 이 세상 만물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고, 길을  걷는 사람 또한 세상 만물 속에서 새롬게 소개되는 것이리라.

 

  자동차를 타고 갈 때는 혼자서 가든 여럿이서 가든 그것은 외롭게  홀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걸어서 갈 때는 혼자서 가는길이라 해도 그것은 결코 혼자서 가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온갖 사물들과 대화 하면서 가는 길이고 어울리면서 가는 길이다. 말하자면 '만남'의 기회로서의 시간이 된다. 여기서 '만남'이란 그냥 스쳐서 이루어지는 접촉이 아니라 마음 깊이 기억되는 하나의 흔적으로서의 접촉을 말한다. 그래서 자동차를 타고 가는 길은 독행(獨行)이 될 수밖에 없는 반면, 걸어서 가는 길은 동행(同行)이 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약속 장소로 가면서 수월찮은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이것저것 두리번 거리기도 하고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땀을 약간 흘리긴 했지만 그로 해서 몸이 가뿐해지기도 했다. 마침 계룡산 기슭을 스치면서 여러 봉우리들을 새롭게 보았다. 그것은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는 보지 못하던 계룡산의 일면이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를 타는 곳까지 어두운 밤길을 걸어서 갔다. 그 길에서 글쎄 반딧불이를 여러마리 만났지 무언가! 그것은 걷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만 허락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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