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 클래식

현대적 교회음악, 예배음악에 대한 역사적 관찰과 이해

헤븐드림 2023. 3. 24. 06:36

새로운 교회 음악이나 소위 복음성가 또는 CCM의 출현은 옛 음악과 쉽게 갈등 관계에 놓인다. 이는 일반 음악사나 교회 음악사에서모두 마찬가지이다. 새 음악의 출현은 교회에서 거의 항상 세속성 시비를 불러왔다. 따라서 교회음악 논의는 항상 "교회음악이란 무엇인가?"하는 본질적 물음 이외에도 "음악의 세속성 문제"를 같이 논의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매우 단순하게 풀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었고, 그런 논의 이후 그 음악들이 어떻게 교회에 받아들였는지 살펴보아, 거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의식이다. 여기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다 다룰 수 없지만 그러나 몇 가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 번째 로는 카톨릭의 역사적 교회음악 논의를 14세기, 16세기, 19세기에 있었던 예들과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 음악론을 중심으로 개신교의 교회 음악론 입장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한국의 개신교를 중심으로 논의의 중점에는 70년대 이후 아직까지도 가장 많이 논란이 되는 대중 음악적 교회성가(또는 CCM)에 관한 것이 놓인다. 이 문제는 오늘날 신 구교를 막론하여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교회의 현재 진행형 갈등이다. 한국 개신교 전체와 교파간 내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가 되어지고 있고 내면적으로 현실적 갈등의 소지가 다분하여 늘 상 시대간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며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큰 것이 사실이다. 오늘 이글에서는 아주 적은 수의 예를 들어 보지만 모든 교회가 큰 관점에서 공통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이며 이러한 문화적 음악적 신앙적 영적 신학적 갈등이 빨리 해소 되어 지고 신학문적인 관점에서 바른 개념이 빨리 세워져야 할 때이다.

카톨릭의 경우에서 본다면

14세기의 교회음악은 "새로운 학파의 제자들이 멘수라 음표를 억제하고 새로운 음표형식에 기울어서 잘 전해져온 옛 것 대신에 자신들이 새로 만든 것을 연주한다. 교회노래들이 짧은 음표로 연주되고 작은 음표로 넘쳐난다. 노래하는 이들이 멜로디를 호케투스로 잘라놓아 디스칸트들을 통해 성부를 많이 만들어서 가끔 천박한 제3성부와 모테투스 성부를 강요하여 안티포날레와 그라두알레의 원곡을 무시하여 자기 음악의 기본이 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으며, 교회선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서 그 선법들을 구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혼합시켜버린다. 이는 음표로 범벅시키는 것이 성가선율의 절제된 상승과 온건한 하강을 통해 교회선법이 구분되어야할 것을 알 수 없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노래하는 이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에 경건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신에 청각을 마취시킨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몸짓으로 대신 표현하려고 한다. 그 결과, 본래의 목적인 경건심은 한쪽으로 물러나고 책망 받아야할 경망함이 펼쳐진다. 그러나 축일 또는 축제적인 미사에서는 옥타브, 5도, 4도 등의 선율적 협화음 사용을 금하지는 않겠다." 위의 인용문은 1322년 요한 22세가 아르스 노바의 모테트에 반대하면서 내린 칙서이다.
이 글은 교회음악 논의의 발단이 되는 전형적 내용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우선 교회가 교회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경위를 잘 드러낸다. 교회가 교회음악에 대해 논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교회음악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할 때이다. 즉 교회음악이 세속화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이거나 교회음악의 본령을 벗어난다고 생각할 때이다. 위에서는 "경건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신에 청각을 마취"시키는 새로운 교회음악에 대해서 경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의 모테트들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채택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새로 붙여진 성부들에 의해 가려진다. 당시의 음악가들은 새로운 기보법의 발달로 인해 아주 작은 음가까지 기록하는 일에 열중하면서 원래의 곡이 거의 들리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다성 음악 역시 기본적으로는 금지 사항이었던 것을 위에서 읽을 수 있으며 미사에서는 옥타브, 5도, 4도를 쓰지 말라고 하였고 단 축일은 예외적으로 허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미사에 쓰이는 음악은 조금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 음악은 예배에 쓸 수 있는냐 없느냐로 판단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칙서는 새로운 음악이 대두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칙서는 새로운 음악이 교회선법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하여 음악의 축에 끼일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러한 판단은 옛 이론을 기준 삼아 새로운 기준을 가진 음악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다. 그 판단이 긍정적으로 나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새로운 음악은 기존의 음악을 거스리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교회는 이해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당시의 모테트들은 교회에서 사용하기에는 매우 부적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을 보고 모테트의 미래를 보지 못한 것은 그 당시 교회가 가진 한계였다. 새롭게 나타난 음악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이미 있는 것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미 있는 음악만이 교회음악이란 생각은 교회음악에서 전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도적 교회가 전통에서 벗어나는 음악을 자발적으로 장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교회는 종교개혁이라든지 또는 새로운 신앙운동에 의해서 자신의 음악을 바꾸는 것이 보통이었다. 기존의 교회는 새로운 음악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는 경우에야, 즉 나중에야 인정한다.

16세기의 트리덴트 공의회는 당시 유행되는 음악이 가진 '쾌락적이거나 불순한'요소를 교회음악에서 제거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감각적 즐거움'보다는 '기도'의 성격에 가까운 음악을 추구했다. 당시에 단선율 음악만 허락하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다음의 조건들을 붙여 다성 음악도 허용되었다. 1)가사가 이해되도록 할 것, 2) 표현에 위엄이 있을 것. 3) 미사에 세속적 고정선율 (cantus firmus)의 파로디(Parody)를 하지 말 것. 여기에서는 당시에 가장 많이 물의를 일으키던 것이었다. 가사를 라틴어로만 고정시킬 것은 당시에 결정되지 않았다. 하나 실제적으로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팔레스트리나의 합창 양식만을 교회적인 음악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니까 이 두 종류 외의 새로운 음악들은 기도의 성격도 없고 표현에 위엄도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공의회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의 교회음악 발전은 일반음악의 발전과 같이 보조를 맞추어 나간다. 그리고 트리덴트 공의회의 결과로 교회음악의 규범으로 인정되는 팔레스트리나의 미사곡조차 세속음악의 선율을 가져다가 교회음악으로 만든 것이 많았다. 파로디를 하지 말라는 것은 세속선율을 교회음악에 사용하여 다성 음악으로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팔레스트리나 뿐만 아니라 당시의 모든 작곡가들이 미사에 대단히 왕성한 파로디 작업을 보여주었다. 또한 트리덴트 공의회 이후 화려한 베니스의 이중합창음악이 더욱더 사용된다. 따라서 16세기의 카톨릭 교회음악은 교회 당국이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19세기의 법학자였던 티보는 교회음악 쇄신운동을 일으킨다. 그가 보기에 교회음악이 너무 잘못되어 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카톨릭이 아닌. 장로교인이었지만 16세기 트리덴트 공의회가 정한 교회음악을 "참된 음악"으로 받아드린다. 교회는 이 참된 음악만을 써야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가 주장하는 교회음악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참된 음악(그레고리오 성가와 팔레스트리나 양식의 합창곡) 2) 성악 3) 라틴어 4) 비감정적 성격.
티보는 오페라가 발생한 1700년대 이후에 나온 모든 음악을 세속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왜냐하면 그 음악들이 모두 오페라 음악과 관련되어 나온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모차르트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의 생각은 전 유럽으로 퍼졌고, 교회와 많은 음악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티보의 순수한 교회음악의 강조는 결과적으로 1820년경에 카톨릭 교회의 체칠리아 주의를 출발시켰고, 이 사상은 교황 피우스 10세의 모투 프로프리오(Motu Proprio, 1903년)에 의해 교회적 규범으로 확정된다. 체칠리아 주의의 전파를 위한 체칠리아협회는 1) 그레고리오 성가, 2) 팔레스트리나 양식, 3) 새로 작곡되는 경우 팔레스트리나 양식에 의존한 무반주 합창곡, 4) 모범적으로 교회음악을 연주, 보급할 기관의 설립, 주로 이 네 가지를 위해 일한다. 체칠리아 주의는 교회의 음악회장화를 염려한 상황에서 교회전례를 강조하여 예배를 두드러지게 하였고, 옛 음악을 되살리는 일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체칠리아 주의의 단점은 결코 작지 않았다. 즉 체칠리아 주의 입각한 작품들은 단순한 모방품에 지나지 않았고, 음악의 형식만 그대로 수용한 무개성한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과거의 것에만 매달림으로써 창조력은 사용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체칠리아 주의의 가장 큰 약점중 하나는 일반신도들과 접촉하지 못하고 단지 소수의 음악인들과 애호가들에게 머무르고 말아 스스로 고립되고 만 점이다. 당시의의 대표적 카톨릭 작곡가(브루크너, 리스트, 코르넬리우스, 라인베르거, 레거)의 작품에 대해서도 체칠리아 주의는 거부하는 입장을 취했다. 순수한 교회음악논의는 교회에 해로운 방향으로 사람들을 분리시켰다. 일정한 양식에서 벗어난 음악은 비교회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일정한 형식을 지키느냐 안지키느냐가 교회적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위와 같은 체칠리아 주의의 폐해에 대한 이의는 이미 체칠리아 주의 운동의 와중에서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는 체칠리아 주의의 근간을 지켜오다가 1965년 바티칸공의회 이후 이를 크게 완화시킨다. 이러한 과정은 정당해 보이는 것이 어떻게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개신교 경우에서 본다면

개신교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회중 찬송가이다. 이런 노래는 전례의 틀에 들어 있지 않지만, 그때그때 예배에서 부를 수 있는 회중 찬송가였다. 이는 교회 음악 사상 개신교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회중 찬송가는 예배 의식적인 면에서 새로운 것이었고, 이 새로움을 가능케 했던 것은 새로운 신학이었다. 즉 만인사제설이 회중찬송가의 신학적 배경이 된다. 이 회중 찬송가는 음악적으로 보아 전통적인 (또는 정통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밖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카톨릭의 관심 밖에 있었던 사항이었을 뿐만 아니라, 금기 사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교회 전례의 저편에 멀리 있었던 교회 음악이 생활 속에 있는 음악을 통해서 가까워진 것이다. 이렇게 종교개혁은 먼 것에 있었던 찬양을 가까운 것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 가까움은 신자들의 측면에서 보는 가까움이었다. 회중 찬송가의 도입으로 다음과 같은 면들이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예배에서의 회중의 참여 2) 회중찬송가의 민요적 성격으로 인한 폭넓은 층들의 사람을 포용할 수 있었던 점. 3) 자국어의 사용으로 회중의 "이해적" 예배참여가 가능해졌고 민족적인 면도 드러나게 된다.

루터에게서는 자국어와 자국의 민요적 노래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진 노래는 교회 안팎에서 획기적인 개혁을 불러 일으켰다. 이 부분에 관한 루터의 업적은 실로 지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생활 가운데 부르는 찬송가까지 예배에 도입함으로써 기존의 전통적인 음악만이 교회 음악이나 예배 음악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는 카톨릭이 보여주는 "예배"를 기준으로 하는 교회음악관을 허문 것이다. 카톨릭은 오늘날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예배"를 통해 보는 교회 음악관을 고수하고 있다. 많은 개신교 교파들도 그러한 견해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다. 루터는 "예배"를 통해 보는 교회 음악관을 허물겠다고 발설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종교개혁 와중에서 불리던 "신자들의 노래"를 회중 찬송가로 격상시켜 예배에까지 도입함으로써 카톨릭의 "예배"와만 관련시키는 교회음악관을 실제적으로 허문 모습을 보여준다.

루터가 전례의 틀을 완전히 거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더 단순화된 것이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전례 음악의 틀을 그대로 지켰다. 그래서 루터교는 오늘날까지도 전례적인 교회로 남아 있다. 그러나 루터는 카톨릭 교회의 예배를 단순화시킨 사람으로서보다는 회중 찬송가를 도입한 사람으로서 평가하는 것이 그의 공적에 더 합당한 해석이다. 루터는 개혁자 중에 음악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교회 음악에서 가장 음악을 중요시한 신학자로 남아 있다. 그는 교회 음악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였지만, 그 음악은 엄격한 의미에서 새로운 음악은 아니었다. 그는 교회에서 당시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음악을 교회음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 음악에 대해 반대한 것은 카톨릭뿐만 아니었다. 루터 당시의 다른 개혁자들은 루터의 찬송가를 포함한 모든 음악에 대해서 우호적이기보다는 비판적인 입장에 섰던 사람이 더 많았다.

개혁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음악과 부패한 로마 카톨릭을 묶어서 생각했다. 그들은 음악을 거부함으로써 카톨릭을 거부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교회에서의 모든 기악 연주를 금했다. 그들에게는 기악 음악이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1524년 쯔빙글리의 영향 하에 있었던 취리히 시에서는 시와 교회에서 오른간 연주를 금하는 법령이 포고되었고, 그보다 약간 후에 뮨스터 교회의 오르간이 해체된다. 1925년 취리히 시에서는 찬송가 부르기가 그친다. 많은 종교개혁자들이 오르간 연주와 다성부 교회음악에 대해 반대의견을 갖고 있었다. 특히 쯔빙글리는 가장 음악 자체를 교회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칼빈 역시 악기와 다성 음악이 교회에서 허락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오로지 단선율 음악과 성경에 실려 있는 것만을 교회에 합당한 가사로 보았다. 그는 가정에서만 다성부로 찬송하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그의 본뜻과는 다르게 가정용 4성부 시편가는 곧 교회에서 일반화되었고, 오늘날은 카톨릭까지 포함한 여러 교파에서 4성부가 거의 기준적인 찬송가 모습이 되었다. 칼빈의 전통을 잇는 개혁교회는 18세기 중엽까지 시편가를 부르다가 감리교의 "찬송가"(Hymn)와 19세기 복음성가(또는 CCM)에 의해 교회에서 밀려난다. 한국 개신교는 음악적으로 바로 이렇게 변한 교회음악 전통과 맞닿아 있다.

한국 개신교의 경우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어떤 특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특수한 회합에 사용하기 위하여 만든 소위 리바이벌 풍의 찬송가가 아닌 것이 좋다는 말이다."(구왕삼: 주일학교 음악연구3 基督新報 1937.4.14) 한국 교회는 자신들의 교회음악이 부흥성가(복음성가)라는 것을 처음에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해방 이전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복음성가에 대해 비판적인 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위의 인용문이 바로 그 예이다. 위의 글에 나타난 "리바이벌 풍의 찬송가"란 19세기 복음성가를 두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 복음성가들은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와 같은 노래들이다. 이런 노래들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책에서 어림잡아 3분의 2 정도를 차지한다. 이 노래들은 부흥 집회를 위해 주로 만들어졌고, 음악과 가사가 단순하다. 구왕삼은 이런 노래들이 열등하다고 생각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의 말뜻은 '열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특수한 회합"의 말뜻은 '부흥집회'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열등한 것들이 영국과 미국 교회의 부흥(리바이벌)에 도움을 주었고, 그 부흥의 여파로 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노래들은 선교적인 관점이 두드러지는 노래들이다. 이런 노래를 초기의 한국교회가 많이 불렀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구왕삼이 위의 글을 쓴 1937년은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 온지 50년이 갓 지난 시기다. 당시 한국교회는 아직도 선교사의 도움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선교사들의 목표는 한국에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교사들 고향의 리바이벌 찬송가는 한국에서도 다른 어떤 음악보다도 유용하게 쓰였다. 한국의 교회도 전도에 열심이어서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교회음악과 전도의 관련성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 교회는 "예배"나 "하나님 찬양" 못지않게 "전도"를 교회음악과 관련시켰다. 그러니까 한국교회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 모든 힘을 쏟고 있을 때에 구왕삼은 그러한 노래를 자제해서 사용하자는 주장을 편 것이다. 그는 유년주일학생에게 적합한 찬송가에 관해 논하면서 리바이벌 성가가 부적절한 찬송가라고 얘기한 것이다. 그의 의견이 경청되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실 당시에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구왕삼 이외에는 없었다. 구왕삼의 복음성가 비판론은 스스로의 생각에 의한 것이 아니고 리바이벌 성가와 마찬가지로 영미에서 유통되던 것을 들여온 것이다. 그는 "종교 교육가 에샹"의 견해라고 하면서, 리바이벌 성가가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만든 것이므로 아동의 천진난만한 마음에 도리어 해를 주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음악의 취미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리바이벌 성가 중에서도 불멸의 명작이나 신앙 상 무한한 영감을 북돋아 주는 노래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동의 찬송으로는 다소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구왕삼의 논지는 오늘날 흔히 보는 "예배"의 입장에서 복음성가를 비판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는 리바이벌 성가가 어린아이들에게 해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른들은 해도 괜찮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논지는 오로지 "종교 교육가 예샹"의 이론에 의한 불충분한 내용이다. 아마 "에샹"이라는 사람은 비판의 이유들을 다르게 말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구왕삼은 당시 한국 교회가 많이 부르던 리바이벌 성가를 어른들에게는 해당시키기 않고 오로지 아이들에게 부르지 말 것을 권했다.

오늘날 거론되는 복음성가 논의는 구왕삼의 경우와는 현격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구왕삼 에게서는 복음성가 논의가 우연하게, 아주 미미한 규모로 나타났었는데, 70년대 이후 오늘날의 복음성가 문제는 교회음악 논의의 가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80년대에는 논의의 양상도 사뭇 격렬하기까지 했다. 도처에서 복음성가는 사람들을 가르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다. 왜 이 문제가 이렇게 커졌는가 하고 생각해 보면 복음성가가 그만큼 많이 불리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의 복음성가는 19세기 복음성가와는 다르게 대중 음악적 방법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반대자들의 반대를 더 격렬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의 복음성가는 해방 이전처럼 전도노래에 관한 것이 아니다(아직도 이러한 사항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은 오늘날의 복음성가까지도 전도 노래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의 복음성가는 내용적으로 경배찬양이 가장 많고, 성경내용을 가사로 만든 것, 개인 신앙을 고백하는 것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전도 내용도 없지 않으나 그렇게 눈에 띄는 다수는 아니다. 그래서 오늘날 복음 성가문제는 대중 음악적 성격이 가장 큰 핵심 사항일 것이다.

대중음악의 문제는 교회음악에서 전례가 없는 새로운 문제였다. 대중음악은 타악기에 의한 강력한 리듬 현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악기도 기존의 일반적 악기가 아니라, 전자악기를 사용한다.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악기들은 전기 기타, HI HAT을(드럼의 심벌셋트) 가진 드럼, 신디사이저(전자건반)와 같은 것들이다. 노래하는 자는 흔히 마이크를 사용하고, 목소리도 맑게 울리는 소리만이 아니라, 때로는 거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따라서 복음성가는 음향적으로 기존의 교회음악과 크게 구분된다. 물론 기존의 교회노래들도 이런 악기로 연주되면 복음성가로 이해된다. 대중 음악은 상업적으로 활약하는 대중 스타들에 의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일순간에 광범위하게 널리 퍼진다. 교회가 이런 음악을 자신의 음악으로 받아들이기를 매우 어려워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강력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교회 노래들은 꾸준히 불리고 있으며, 요즈음에는 복음성가 반대 이론이 오히려 조금 잠잠해진 느낌을 받는다. 복음성가 반대자들은 이 음악의 세속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면서 반대자들은 "예배"를 교회 음악의 기준으로 삼는다. 예배에는 세속적인 것이 스며들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교회음악 논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 음악"을 ??"예베 음악"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문헌들이 다 그렇게 보고 있다. 거의 모든 신학 서적들은 "교회음악"을 "예배"에 귀속 시킨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음악은 신자들 삶 전체와 관련이 있다. "예배"를 중심으로 보는 교회 음악론 에서는 예배가 없으면 교회 음악이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교회 음악은 신자들의 전체적 삶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예배가 없어도 교회 음악은 있다. 교회는 무엇인가? 그것은 신자들이다. 신자에 대한 논의 없이 예배만을 논의하는 찬양론은 필연적으로 예배의 양식에 맞는 음악을 찾게 된다. 그래서 거기에 맞지 않는 음악이 성토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소위 "예배론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음악을 교회(신자)에 맞추게 되면 신자들이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효용성에 더 관심을 갖는다. 아마 20세기 복음성가 찬성론자들은 이 부류에 속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소위 "교회론자"라 부른다. 교회론 자들에게서는 <예배음악>과 <교회음악>이 각기 다른 개념이지만, 예배론 자 들에게서는 두 개념이 같은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배론 자들에게는 <예배음악>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예배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는 교회 음악은 옳지 못한 것으로 비판한다. 이웃에게 예수 믿으라고 한다든지, 서로 사랑하자는 노래는 예배 개념에 맞지 않기 때문에 찬송도 아니고 예배음악도 아니며 교회음악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가사와 관계되는 내용이다. 예배론 자들이 음악적 문제를 다룰 때에는 음악 양식을 기준으로 한다. 그 기준이란 전통적으로 해오던 교회음악을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예배론 자들이 생각하기에도 예배에 맞는 가사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새로운 음악을 교회에 도입시키려는 사람들은 예배론 자들의 저항을 받는다. 그래서 이 문제가 풀리려면 "교회음악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이 해답을 얻어야 한다. "교회 음악은 예배음악이다"라는 해답을 내놓으면 그러한 갈등은 계속되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교회음악을 좀 더 폭넓게 정의하면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전도하는 것도 교회의 일이다"라고 보게 되면 전도용 노래도 교회음악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교회음악 논의는 예배론 자에 의해 주도되는 일이 더 많았다. 이들은 세속적이라고 간주되는 교회음악을 비판한다. 14세기에 있었던 모테트, 16세기의 트리덴트 공의회의 교회음악 정리, 19세기 말에 있었던 체칠리아 운동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던 교회음악 정화작업이 그러한 것들이다. 논의의 결과는 항상 세속성을 염려하고 성토하는 그룹의 승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논쟁에서 이기고 실제에서 진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대로 교회음악이 세속성의 음악을 버리고, 옛 교회음악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16세기 트리덴트 공의회에서 "교회 양식"의 옛 음악을 수호하자는 결정이 있은 후에는 금지되자, 교회 음악 양식이 아닌 제3의 양식(이중 합창)으로 새로운 교회 음악에 대한 갈망을 채운다. 19세기의 체칠리아 운동은 20세기 초 카톨릭 교회 음악에서 옛 교회 음악 양식으로의 회귀를 재결정하지만 그 결정은 잘 지켜지지 않다가 1965년 이후에는 그 결정이 실제상에서 포기된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복음성가를 중심으로 한 교회 음악 논쟁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보인다. 복음 성가를 세속적인 것으로 몰아 붙이는 사람들은 논쟁에서 항상 승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논쟁자의 많은 수가, 그것도 발언의 비중이 큰 사람 중에서 복음성가 반대론자들이 많다. 개신교에서는 그런 결정을 내려 전 교회에 명령할 수 있는 기관이 없어서 그렇지, 만약에 그런 기관이 있다면 거의 틀림없이 복음성가 반대자들의 견해가 관철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결정은 실제상에서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마치 장로교 초기에 악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칼빈의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고 곧 폐기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또한 장로교는 초기에 '시편가'만을 교회의 회중노래로 고집했는데, 18세기 중엽에 감리교 찬송가(Hymn)가 발생하자 이를 허락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실제상에서 반대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슬그머니 시편가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은 교회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이는 마치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밀어 낸다'는 경제법칙에 흡사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교회음악에 대해서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따지게 한다는 말이다. 만약 '악화와 양화'의 관계로 본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새로 일어나는 세속적이라고 추측되는 음악에 대해 반대하고 싸우는 일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 반대의 일이 실제상에 관철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우직한 충성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결정적 결함을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양식의 교회 음악 역시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체로 죄 성이 있는 불완전한 것이라는 점을 잊고 있다. 즉 교회 음악은 완전하기 때문에 교회음악이 아니라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까지도 우리는 거기에서 세속 성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들은 팔레스트리나의 교회음악에서도 세속음악 파로디를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는 가사만 있는 시편에서 조차 세속성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바하나 헨델은 두말할 것조차 없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는 노래는 하나님의 완전함에서 보면 불완전한 것이다. 우리는 예배 의식에 잘 맞는다하여 그것을 완벽한 찬양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부족한 것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클래식 음악은 교회 음악에 맞고, 대중음악은 교회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교회"를 고려할 경우, 즉 신자를 고려할 경우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배만을 생각하면 필연적으로 "전통"과 "전례의식"를 기준 삼기 쉽다. 이 때에 하나님 찬양에 대한 새로운 표현을 찾는 교회는 답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물을 것이다. "왜 하나님 찬양은 전통과 전례의식과만 연결되어야 하는가?"라고.

시편 8편의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고치면 교회 음악을 위한 합당한 노래가 될 것이다: "교회 음악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교회 음악을 생각하시며 교회 음악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교회 음악을 권고 하시나이까". 이러한 자각 없이 교회 음악 논의에 뛰어들기 때문에 더 정당해 보이는 교회 음악론이 실제상에서 항상 실패하고 있다. 실제에서 승리하는 교회음악은 그 낮은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낸 것들이었다. 그래서 교회음악의 기준은 '어떠한 양식을 갖고 있느냐'는 것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도 이러한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볼 때 문화는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진리일 것이고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43장 21절에 말씀하신바와 같이 구원받은 백성에게서 영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늘 부족하지만 찬양 받으시길 원한다. 시대적으로 음악의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시대 문화적 차이일 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만약 성경적인 음악적인 요소를 고집한다면 모두가 인정하는 다윗 시대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현대적으로 음악적인 요소와 악기 사용이나 다양한 문화를 활용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응당 활용해야 함은 누구나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현대적인 악기 현대적인 음악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할지라도 가사내용이나 특히 음악을 통하여 찬양을 드리는 그 사람의 심적 상태 영적 상태가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정통적인 음악을 가지고 찬양을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심령과 영적 상태가 하나님을 향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진정한 찬양이며 신령한 노래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마음으로 찬양하고 영으로 찬양하며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요소가 아니겠는가. 교회 음악은 앞으로도 많은 발전을 가져오리라 믿는다. 시대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서 교회음악의 형태 구성과 적용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찬양(IN CHURCH MUSIC)과 교회 밖으로(OUT CHURCH MUSIC) 복음을 전하는 음악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 할것이 아니라 분명한 찬양신학의 정립과 아울러 신학도와 목회자들을 향한 새로운 교육이 절실하며 교회 음악의 다양성 확보와 예배와 삶의 적용으로 이 시대에 하나님이 기뻐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교회로 발전시킬 수 있기길 바란다.


우 병 만 목사

전 프레이즈신학교 기독음악신학교 등 교회실용음악 교수
전 한국찬양교역자협의회 회장
전 찬양신문사 사장
전 강남예수찬미교회 담임
현 뉴욕프레이즈센터 대표
현 베스트뮤직(실용음악전문 레슨기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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