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몬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 북쪽 가버나움 근처 벳새다 출신 어부로, ‘요한’(요나라고도 불림)의 아들이며 안드레의 형이다. ‘베드로’라는 이름은 시몬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이름으로 히브리말로 ‘바위, 반석’을 의미하며, 아람어로 ‘게바’라고도 불렀다. 본명 시몬은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으며, 바울은 그를 ‘초대 교회의 기둥’ 또는 ‘할례자(유대인)의 사도’라고 불렀다. 그는 기혼자로 전도 여행에 아내를 데리고 다녔다.
베드로는 신약시대 위대한 사도의 한 사람으로서 성경에 그 이름이 160회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다. 12사도의 명단에 네 번 나오는데 다른 사도들의 순서는 각각 다르게 기록되어 있으나 베드로가 수위를, 그리고 가룟 유다가 말석을 차지하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예수의 공생애 초기부터 로마 황제 네로 통치 시기인 A.D.27-68년까지 40년간 활약했다. 이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태동한 초대 교회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장되던 때였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유대교의 종교적 박해에 이어 로마 제국의 정치적 박해로 인하여 초대 교회가 갖가지 시련을 겪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때에 베드로는 실로 초대 교회의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한 시간에 베드로의 여러 면모를 다 살피기는 어려우므로 대략 정리하도록 하겠다.
● 지금까지 학자들은 베드로의 기질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표명해 왔다. 그는 그리 온건한 성품은 아니었으며 자기주장이 강하였다. 그는 초창기에 자주 사도들의 전면에 나서서 대변인 역할을 하였는데, 베드로보다 뛰어난 빛을 발한 이는 바울뿐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베드로는 언제나 위대한 사도들 가운데 수위를 점하였으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베드로는 충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행동이 생각보다 앞서는 경우가 많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재빨리 그물을 버리고 따라 나섰다. 예수께서 물위로 걸어오실 때 베드로는 뱃전에서 뛰어 내려 그를 향해 물 위로 걸어가기도 하였다. 예수께서 체포되려 하자 품었던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르기도 했다. 부활 후에 베드로는 배가 천천히 노 저어 가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해변을 향해 헤엄쳐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베드로의 성격은 처음에는 확고부동하지 못하였다. 그는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가장 큰 목소리로 주께 대한 충성을 공언하였다. 그러나 그 밤에 나머지 모든 제자들과 함께 그 역시 그리스도를 버렸으며 스승의 이름을 저주하였다. 그 후 예수께서 그를 바라보시자 그는 밖으로 나가 비통하게 울었는데,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충동적인 행동의 한 유형이라 할만하다.
베드로는 용기와 소심성, 커다란 힘과 불안정성이 조합된 보기 드문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리스도는 다른 사도들보다는 베드로에게 책망과 칭찬을 더 많이 하셨다. 그 어느 제자도 베드로처럼 날카롭게 주님의 책망을 들은 적은 없으며 또 베드로처럼 감히 남을 타이르고 간한 자도 없다. 그러나 주님의 가르침과 훈련을 받고 주님의 모범을 보면서, 지나치게 덤벙대던 베드로의 성품은 점차 고삐가 잡히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오순절 이후에는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신실한 인격으로 변화되었다.
베드로의 성격에는 다른 결점을 벌충하는 한 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죄에 대한 그의 예민한 감각이었다. 그의 영은 이 점에서 몹시 민감하였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한 자가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는 유다와 같이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였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고 양자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서 독특하고도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사도행전의 후반부가 바울 행전을 담고 있다면, 사도행전 전반부는 베드로 행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도행전은 원래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부터 세계적 신앙으로 변천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초대 교회에서 지도적 위치를 가진 베드로가 유대의 한계를 넘어 복음을 이방 세계로 점차 전달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어서 이야기는 바울에게로 옮겨가는데, 바울은 특별히 이방인들의 사도가 되었던 것이다.
유다를 대신할 열두 번 째 제자를 다시 선택하자고 제의한 이는 베드로와 요한이었다. 오순절에 모인 군중들에게 설교한 이도 베드로였다. 앉은뱅이에게 신유의 기적을 베푼 이도 그였다. 갈2:9에서 바울은 베드로를, 야고보 및 요한과 함께 교회의 ‘기둥’이라 칭한다. 유대의 방백들이 사도들을 심문할 때 복음의 대의를 변호한 이는 베드로와 요한이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대해 교회의 치리를 집행하였다. 그는 또한 돈으로 성령의 은사를 사려고 한 마술사 시몬을 저주하였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의 기적적 권능에 대한 일반 민중의 믿음을 강조한다. 일반 백성들은 그의 그림자도 병고침을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열두 사도의 대표자로 파견을 받고 사마리아에 가서, 빌립의 지도 하에 거기에서 일고 있었던 영적인 부흥을 시찰한다. 이일 후에 베드로는 여러 도시에서 선교활동을 벌인다. 특히 가이사랴에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이방인 고넬료의 가속들에게 세례를 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사도공의회에 나타나 이방인들도 기독교 성령운동 안에 포함시켜야 된다고 역설하였다. 이 시점부터 베드로는 사도행전의 이야기에서 사라진다. 행12:7에 보면, 베드로가 ‘다른 곳으로’ 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사도행전에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초대교회의 다양한 전승에 의해 베드로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이 그의 서신(갈2:11-13)에서 베드로를 언급한 부분은 베드로의 실수와 관련된 대목이다.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이방 그리스도인들과 음식을 먹다가 평소 그들과의 분리를 주장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현장에 이르자 그들이 두려워 그 자리를 물러 난 적이 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베드로가 마땅히 비난을 살만하였으므로 자신이 베드로를 정면으로 책망하였다고 진술한다. 베드로는 분명, 바울의 준엄한 책망 앞에서 잘못을 시인했을 것이다.
● 바울이 고린도에 교회를 설립한 후, 그리고 고린도에 서신을 보내기 전, 베드로가 고린도에 갔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린도교회가 분열되었을 때, 게바(베드로)파도 그곳에 존재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안디옥에 상당 기간 체류한 것으로 나타난다. 안디옥은 당시 동방의 수도였다. 교황 그레고리 1세는 사도들의 왕자(베드로)가 7년 동안 그 도시교회의 감독으로 있었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이후엔 복음전파의 권역을 동방으로 옮겨 바벨론 지역에서 선교한 것으로 전한다. 바벨론에서 얼마나 체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5:13).”라고 기록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은 로마의 상징어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베드로의 서신 또한 그렇게 해석하여, 베드로가 로마에 간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나, 요한은 계시록을 쓰면서 로마 검열관들의 눈을 피해야 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분명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동방교회들의 전승은 그가 확실히 바벨론으로 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당시 바벨론은 유대 이주민들의 커다란 중심지였으며, 베드로는 처음부터 기독교 내에서 유대인 선교자로, 바울은 이방인 선교자로 분류되었다. 물론 두 사람 다 그 선을 넘어 자유롭게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만일 베드로가 로마교회를 설립하였다면, 사도행전이나 나머지 바울의 서신 등에서 어찌 기록이 남아있지 않겠는가? 따라서 베드로가 로마교회를 설립했다는 주장은 일리가 없다.
바벨론에서 복음을 전한 베드로는 그 이후 어디로 향했을까? A.D.156년 영국 왕 루시우스는 윈체스터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영국의 국교로 선포하는데, 그는 또한 최초로 베드로 기념교회를 설립했다. 이 교회의 유적은 아직 남아 있으며, 최근에는 영국에서 고대의 낡아빠진 한 기념비가 발굴되었는데, 돌비 전면에 ‘성 베드로 사도의 처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같은 고고학적 증거와 함께 다양한 기록들이, 베드로가 마지막으로 로마에서 체포되기 직전까지 영국에서 복음을 전했음을 전한다. 지금의 영국 웨스트민스터 성 베드로 사원이 서 있는 자리는, 고대 영국의 람베드로(성베드로) 교회가 서있던 자리였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했고 매장되었다는 것은 기독교계에서는 이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때 개신교의 입장에서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하고 매장 당했다는 것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초기 기독교의 대부분 기록들은 베드로와 바울이 모두 로마에서 순교 당했고, 로마의 두 장소에 매장되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베드로가 네로 황제에 의해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다는 전승은, 요한복음의 내용이 간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이 구절이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예언이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 뒷 구절이 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19절). “네 팔을 벌리리니”(18절)라는 문구는 처형의 형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즉 십자가에 못 박는 형태이다.
비록 보다 확실한 순교 당시의 기록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2세기와 3세기, 어떤 교회들이 로마의 교회들과 경쟁하고 있을 무렵, 그 중 어느 한 교회도 로마가 베드로의 순교지라는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로마에서의 순교는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 베드로는 순교당하기 전에 유죄 선고를 받고 마메르틴의 악취나는 무시무시한 감옥에 수감되었다. 거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는 기둥에 묶인 채 끔찍한 고통을 받았다. 그처럼 공포스런 지하 감옥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고 한다. 이 감옥은 3천년이 넘게 존속해 온, 현존하는 최고의 고문실이자 고대 로마의 비인간적 야만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인데, 유일한 출입구는 천장의 뻐끔한 구멍뿐이다. 빛이 전혀 들지 않았으며 청소하는 법도 없었다. 무서운 악취와 오물이 수감자들에게 치명적인 독을 발생하였다. 이 감방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베드로는 그처럼 지독한 곳에서 무려 9개월의 무서운 세월을 어떻게 버텨냈는지는 가히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옥중 생활 기간 동안 내내 쇠사슬로 기둥에 묶여 진 채 누워서 쉴 수도 없는 세월을 보냈다. 그럼에도 그의 숭고한 영은 불요불굴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의 고귀한 영혼에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불멸의 불꽃이 타올랐다. 베드로가 그 온갖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지키는 두 간수 프로세수스와 마르티니아누스 및 기타 47명의 사람들을 회심시켰다는 놀라운 사실을 역사는 말해준다.
베드로는 로마인들의 손에 잔혹한 죽음을 당했다. 베드로는, 자기가 주님과 똑같은 자세로 죽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그의 나이 70세경인 AD67년 네로에 의해 순교 당한다. 그가 순교한 자리가 바로 지금의 바티칸 언덕이다.
● 베드로는 성격이 급하고 경솔한 탓에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급기야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모습에서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 자만심과 안이함으로 인해 매번 실수하고 때로 신앙을 감춰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허물 많은 베드로의 모습까지도 용납하시고, 친히 영적 상태를 회복시키사 위대한 사도로 만드셨다. 실로 허물 많은 자들까지도 받아들여 변화시키시고 주의 선한 일꾼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감사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이전에 한낱 계집종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던 비겁함과 대조적으로 담대하게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하였다. 또한 이전에는 충동적이었으나 이후에는 겸허해졌고, 이전에는 캐묻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자랑했으나 이후에는 복종하고 그리스도만을 자랑하였다. 이처럼 성령 충만함이 연약한 베드로를 위대한 사도 베드로로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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