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 / 박두진
소나무와 갈나무와
사시나무와 함께 나는 산다
억새와 칡덤불과
가시 사이에 서서
머언 떠나가는
구름을 손짓하며
뜻 없는 휘휘로운
바람에 불리우며
우로와 상설에도
그대로 헐벗고
창궁과 일월과 다만
머언 그 성신들을 우러르며
나는 자랐다
봄 가고
가을 가는 동안
뻐꾹새며 꾀꼬리며
접동새도 와서 울고
다람쥐며 산토끼며
사슴도 와 놀고 하나
아침에 뚜놀던 어린 사슴이
저녁에 이리에게 무찔림도 보곤 한다
때로 ---
초부의 날선 낫이
내 아끼는 가지를
찍어가고
푸른 도끼날이
내 옆에 나무에 와 번뜩인다
내가 이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날까지는
내 스스로 더욱
빛내야 할 나의 세기
푸른 가지는
위로 더욱 하늘을 받들어
올라가고
돌사닥 사이를 뿌리는
깊이 지심으로 지심으로
뻗으며
언제나 트여질
그 찬란한 크나큰 아침을 위하여
일월을 우러러
성신을 우러러
다만 여기 한
이름 없는 산기슭에
퍼지는 파문 처럼
작은 내 고운
연륜은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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