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큐티

시편 101편-102편

헤븐드림 2022. 8. 4. 03:34

제 101 편

 

〔다윗의 시〕

 

1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2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3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4 사악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5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

6 내 눈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7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8 아침마다 내가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101편: 완전한 길에 주목함

[1-2절] 내가 인자(仁慈)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

다윗의 시(詩). 다윗은 “내가 인자(仁慈)와 공의를 노래하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송의 노래를 부르리이다”(원문)라고 말한다. ‘인자’(仁慈)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공의’ 혹은 ‘의’는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이다. 인자(仁慈)와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이며 그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도덕성의 내용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며 회개하는 죄인들을 향하여 인자하시고 또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는 의인들에게는 기쁨과 위로가 되지만, 악인들에게는 두려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공의를 찬송하고 또 우리 안에 그 성품을 회복하고 소유하기를 사모하며 소원해야 한다.

다윗은 또한,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완전한’이라는 원어( ם)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앞절에서 말한 인자와 공의를 소유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다윗은 개인적으로 완전한 길에 주의하겠다고 말하며 또 가정적으로도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겠다고 말한다. 우리의 도덕적인 삶은 개인적 삶인 동시에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 실천하는 삶이어야 한다.

성경은 노아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증거한다. 창세기 6:9,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완전한’(탐밈 םימ)이라는 말은 같은 단어이다(복수형). 성경은 또한 욥이 순전하고 정직한 자라고 증거한다. 욥기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여기에 ‘순전하다’는 말( ם)도 같은 단어이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이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라는 말로 시작했는데, ‘책망할 것이 없다’는 말도 같은 개념이다. 도덕적 완전은 우리의 성화(聖化)의 목표 곧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우리는 노아처럼, 욥처럼 완전한 삶을 힘써야 한다.

다윗이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평안과 위로, 능력과 환경적 회복을 얻고자 함일 것이다. 의인들은 하나님께서 오시기를 사모하지만, 죄인들은 그를 만나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고 피한다. 하나님께서 오시면 의인들에게는 복을 주실 것이지만, 악인들에게는 벌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적 완전을 구하는 삶은 경건한 삶과 함께 간다. 도덕성은 경건과 함께 가고 실상 거기에서 나온다.

[3-5절] 나는 비루한 것(벨리야알)[무가치한 것, 악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 사특한(익케쉬)[비뚤어진]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은, “나는 무가치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背道者)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한다. 배도자(背道者), 배교자는 하나님의 진리와 바른 신앙을 저버린 자를 가리킨다. 성도는 도덕적으로 악하고 무가치한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진리와 바른 신앙을 저버린 자들의 행위를 책망하고 미워하며 멀리해야 한다.

다윗은 또, “비뚤어진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비뚤어진 마음은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마음이 아니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또 오해하기 잘 하는 마음이다. 또 이런 마음에서 악한 일이 나온다. 성도는 사특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고 또 악한 일을 멀리해야 한다.

다윗은 또,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그윽히 헌다’는 말은 ‘은밀히 비난한다’는 뜻이다.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것은 앞에서는 상대를 위하는 것처럼 처신하지만, 뒤에서는 그를 비난하는 것 같은 것을 말한다. 또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들’은 이웃을 멸시하고 욕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남의 명예와 신임성을 훼손시키고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은 악한 일이다. 성도는 남의 유익을 위하여 힘써야 하고 남을 그윽히 허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또 그런 자를 물리쳐야 한다.

[6-8절]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네에메네)[혹은 ‘신실한 자들’]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다윗은,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충성된 자’는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며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신실한 자를 가리킨다. 그는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나 쾌락을 구하지 않는 자이다. 성도는 그런 자와 함께 거해야 한다. 또 다윗은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고 말한다. ‘완전한 길’은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길이다.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는 신앙 사상이 바르고 성경말씀을 순종하여 의와 선을 행하는 자이다. 그런 자와 함께 일하는 것은 행복이다. 같은 생각과 뜻, 같은 목표와 가치관을 가진 자들은 함께 일할 만한 자들이다.

다윗은 또,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한다. 거짓말은 마귀의 속성이며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정죄하시는 악이다(잠 6:16-19). 요한계시록 21:8은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곧 지옥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성도는 거짓된 마음과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 곧 위선을 다 버려야 한다.

다윗은 또,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남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것이 악이다. 악은 하나님의 성품에 반대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마귀는 악하여 세상과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교회를 속화시켜 지옥에 떨어지게 하려 한다. 거짓되고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합당치 않다.

 

시편 101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임하심을 사모하며 그의 인자(仁慈)와 공의를 찬송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늘 경건하게 생활하면서 그의 평안과 위로, 그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진실히 찾는 모든 자들과 함께하실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완전한 길에 주목하고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고 완전한 길에 행하는 충성된, 신실한 자들과 함께 일하기를 소원해야 한다. 도덕적 완전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셨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도덕적 완전을 실천하는 충성된, 신실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악한 것들을 미워하고 멀리하고 멸해야 한다. 우리는 악하고 무가치한 것들, 비뚤어진 마음, 이웃을 은밀히 비난함, 교만한 마음, 거짓말 등을 다 미워하고 멀리하고 멸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그런 악들을 다 멀리해야 한다.

 

제 102 편

 

〔고난 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2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3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

4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으므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사오며

5 나의 탄식 소리로 말미암아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6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7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8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비방하며 내게 대항하여 미칠 듯이 날뛰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9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셨나이다

10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 주께서 나를 들어서 던지셨나이다

11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시들어짐 같으니이다

12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에 대한 기억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14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의 티끌도 은혜를 받나이다

15 이에 뭇 나라가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이 땅의 모든 왕들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16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의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아니하셨도다

18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19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20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21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2 그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함께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23 그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하게 하시며 내 날을 짧게 하셨도다

24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28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102편: 곤고한 자를 긍휼히 여기소서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하는 기도.

[1-3절]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대저 내 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모케드)[불타는 덩어리]같이 탔나이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특히 괴로운 날에 부르짖는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 한글에 ‘냉과리’는 덜 타서 연기와 냄새가 나는 숯을 가리킨다. 시편 저자는 그의 날들이 연기가 희미해지다가 사라짐 같고 그의 뼈들이 불타는 덩어리같이 고통스러웠지만, 낙망치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4-7절]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 나의 탄식 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당아새(pelican)[사다새--물고기 잡아먹는 부리 긴 새]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시편 저자는 고난 중에 낙심하였으며 식욕도 잃었고 또 탄식 중에 그의 살이 뼈에 붙을 정도로 야위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자신을 “광야의 사다새,” “황폐한 곳의 부엉이,” “밤을 새우는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에 비유한다. 그것은 아마 피신 중인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에게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8-11절] 내 원수들이 종일 나를 훼방하며 나를 대하여 미칠듯이 날치는 자들이 나를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이는] 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섞었사옴이며] 이는 주의 분과 노를 인함이라. 주께서 나를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원수들은 잠시 동안이 아니고 한두 번이 아니고 온종일 또 날마다 성도를 비방하고 욕하였다. 또 그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사리에 맞게 제시하는 인격자들이 아니고, 미친듯이 날뛰며 맹세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 논리와 사리를 중시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의 말을 들어보려 하지 않는 자들이다. 맹세하며 악을 행하는 것은 심히 악한 것이다.

9절은 원수들의 비방의 이유를 보인다. 시편 저자는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의 분노 때문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땅에 꿇어앉아 눈물로 회개하며 재를 먹고 눈물을 마셨다. 그러나 그것이 더 원수들의 비방의 이유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의 죄에 대해 무섭게 징책하셨다. 그는 그를 들어 던지셨다. 그의 날은 거의 끝나는 것 같았고, 그는 심히 쇠해졌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낙망치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12-13절]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정한 기한이 옴이니이다.

시편 저자는 사람의 쇠약하여 죽음과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대조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의 근거이시기 때문이다. 또 시편 저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시온 전체, 즉 예루살렘 성 전체가 고난 중에 있으나 하나님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시키실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14-15절] [이는]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하며 그 티끌도 연휼히 여기나이다(카난)[좋아함이니이다]. 이에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세계 열왕이 주의 영광을 경외하리니.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실 때가 된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즐거워했고 그 티끌도 좋아하며 또 이방 나라들이 여호와의 이름,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의 영광을 경외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을 무시하고 좋아하지 않았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았으나 그들이 변하기 시작하였고, 그러한 변화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심지어 이방인들까지도 긍휼히 여기시는 징조로 여겨진다는 뜻일 것이다.

[16-17절] 대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시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또 시편 저자는 그들의 이런 변화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셨고 그 영광 중에 나타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귀환과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성의 재건 등에서 나타났고, 보다 깊게는 신약교회의 건립에서 나타났다. 또 시편 저자는, 세상 사람들은 없는 자들을 무시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로우시다고 말한다.

[18절]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 일’은 앞절들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며 열방들이 그를 경외하게 되는 일을 가리키며, ‘장래 세대’는 특히 신약시대를 가리킬 것이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회복 예언은 신약교회의 설립을 암시한다. 이처럼 시편 저자의 증거는 그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를 내다보았다고 본다. 그러면 ‘창조함을 받을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어 새 피조물이 될 신약 성도들을 가리킬 것이다. 신약 성도된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한다.

[19-22절]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내려다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 때에 민족들과 나라들이 모여 여호와를 섬기리로다.

원문 19절은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시편 저자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내려다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지만, 땅의 모든 일들을 자세히 내려다보시고 그의 기쁘신 뜻을 행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시고 감찰하시는 목적은 갇힌 자들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들을 해방하셔서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며, 그 목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이다(엡 1:6, 12, 14). 구원 얻은 자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의 은혜를 증거할 것이다. 그때에, 즉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 곧 신약시대에 온 세상의 민족들이 모여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이 상당히 이루어졌음을 본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그의 섭리의 목표이다.

[23-24a절] 저가 내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시며 내 날을 단촉케 하셨도다. 나의 말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

시편 저자는 다시 자신에 관해 기도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힘을 중도에 쇠약케 하셨고 그의 날을 단촉(短促)[단축]케 하셨다고 말한다. 또 그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우리가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 영양 있는 음식물을 섭취하고 영양제를 먹고 규칙적 운동을 하고 의학적 치료도 받지만, 우리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해야 한다.

[24b-27절] 주의 연대는 대대에 무궁하니이다.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동일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시편 저자는 또다시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대해 말한다. 그가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대해 말한 것은 우리의 생명이 그의 영원하신 생명에 근거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조된 천지는 영원하지 않고 지금 옷같이 낡아지고 있고 어느 날 바꾸어야 할 상태에 있다. 그러나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고 언제나 변함이 없이 동일하시다.

[28절]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그 후손이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영생을 주셨다. 하나님의 뜻은 택하신 자들이 영생을 얻는 것이다(요 6:40; 딛 1:1-3).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에 근거한다. 사람은 범죄함으로 죽게 되었으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긍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얻게 되었다.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

 

시편 102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우리는 큰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1-3절). 1절,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우리는 큰 고난 중에, 몸이 쇠하고 고통이 심하고 심신이 연약하고 외롭고 쓸쓸하며 원수들의 비방이 있을 때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회개할 것이 있으면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성도의 특권이다.

둘째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긍휼만 바라고 의지해야 한다. 13절,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를 긍휼히 여기실 때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근거이시다. 우리는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은혜와 긍휼로 또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고 순종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복락을 믿고 사모하며 소망해야 한다. 26-28절,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 . .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주의 종들의 자손이 항상 있고.”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생의 약속을 붙들고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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