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큐티

시편 87-88편

헤븐드림 2022. 6. 15. 05:22

 

〔고라 자손의 시 곧 노래〕

 

1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2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3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 (셀라)

4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5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6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셀라)

7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87편 강해 : 하나님께서 시온을 사랑하심

고라 자손의 시 곧 노래.

[1-3절] 그 기지(基址)[기초]가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셀라).

시편 저자는 그것의 기초가 성산에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의 기초가 거룩한 산에 있다는 뜻이다. 시온산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산 위에 예루살렘 성을 세우게 하셨다. 예루살렘 성은 구약교회의 중심이었고 또 예루살렘 성 곧 시온산의 중심은 성전이다. 구약시대의 성전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교회의 기초는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는 견고한 기초이시다(고전 3:11).

시편 저자는 또한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라고 말한다.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문들이 많이 있었다. 느헤미야 3장에는 아홉 개의 문이 언급된다. 양문(羊門), 어문(魚門), 옛 문, 골짜기 문(대하 26:9), 분문(糞門), 샘문(느 2:14), 수문(水門), 마문(馬門), 함입갓문(검사문)(NASB, NIV) 등이다. 그 외에도 성경에는, 에브라임 문(왕하 14:13; 느 8:16; 12:39), 감옥문(느 12:39)[시위대 문](NASB, NIV)(왕하 11:6, 19; cf. 느 3:25), 성 모퉁이 문(왕하 14:13; 대하 25:23; 26:9; 렘 31:38), 하시드 문[질그릇조각 문](렘 19:2)(아마 분문과 같을 것), 베냐민 문(렘 37:13; 슥 14:10) 등이 언급된다. 모두 12개 이상이다.

야곱의 모든 거처가 다 하나님의 나라이었지만,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시온의 문들은 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에는 성전이 있었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가 있었고 또 사람들의 죄를 씻는 속죄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은 참 교회와 천국을 예표하였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은 새 예루살렘 성으로 증거되었다(계 21:2, 10).

시편 저자는 또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라고 말한다. 다시 번역하면, “하나님의 성이여, 너에 대해 영광스런 일들이 말해지는도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있는 하나님의 성이다. 거기에서는 죄인들의 속죄와 구원이 있고 인류와 세상의 완전한 회복에 대한 예언과 약속이 있다. 장차 하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고 의만 가득하고 평안이 넘친 새 예루살렘 성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4-5절]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나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

시편 저자는 “내가 라합과 바벨론을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고 말한다. 그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代言)한다. 이것은 성경의 영감성과 신적 권위성을 보인다. 라합은 ‘바다 괴물’을 가리키는 말로서 애굽에 대한 상징적 명칭이다(사 30:7). 애굽과 바벨론은 남쪽과 북쪽의 강대국들로서 이스라엘 나라의 원수들이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원 얻은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시편 저자는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고 말하며 또 “시온에 대해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고 말한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나라의 서쪽에 있는 나라요 두로는 북쪽에, 구스는 남쪽 먼 곳에 있는 나라이다. ‘거기서 났다’ 즉 시온에서 났다는 말은 하나님을 모르던 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자로 다시 태어났다, 즉 중생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주위의 여러 나라들, 심지어 먼 곳의 나라들에서도 구원 얻은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시편 저자는 또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리로다”고 말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다. 성전 건립은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 된다(슥 4:6). 주 예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친히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6:18). 교회의 건립은 하나님의 일이다. 신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며 죄인들은 오직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난다(요 3:5).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나 구원 얻은 자를 양육하는 목회자는 아무것도 아니고 사람을 중생시키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고전 3:7).

[6-7절]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셀라). 노래하는 자와 춤추는 자(콜렐림) [피리 부는 자들](BDB, KJV, NASB)는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하나님께서 구원 얻은 자들, 즉 시온에서 난 자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하실 때 그 수를 하나도 빠뜨림 없이 다 세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영생을 주실 자들을 택하셨다(엡 1:4).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들을 주셨고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시고 마지막 날에 부활시키고 영생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요 6:39).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은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를 믿고 그를 따를 것이다(요 10:27).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다(행 13:48). 택함 받은 자들은 다 구원을 얻을 것이다.

시편 저자는 또 “노래하는 자들과 피리 부는 자들은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구원 얻은 성도들의 기쁨의 간증을 묘사한다고 본다. 구원 얻은 성도들은 자신들의 근원, 즉 구원과 영생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고 고백할 것이다. 그들은 노래하며 피리를 불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구원 때문에 그들은 풍성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사실, 슬픔 많은 세상에서 우리의 기쁨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한다. 뿐만 아니라, 성도는 주의 은혜로 구원 얻은 형제들을 볼 때에 기쁨을 가진다. 바울은 성도들을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불렀다(빌 4:1). 또 그는 그가 복음을 전하고 양육했던 성도들을 그의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말했다(살전 2:19-20). 물론, 성도들은 장차 들어갈 영광스런 천국과 복된 영생을 소망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롬 5:2; 12:12).

 

시편 87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을 사랑하신다(2절).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은 장차 임할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을 상징한다. 신약교회는 그 시작이다.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요한계시록 1:6,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요 3:3, 5). 그들만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다(계 20:15). 중생의 표는 참된 회개와 믿음이다(요일 3:9-10; 5:1).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와 영광의 천국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신다.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주위의 여러 나라들, 심지어 먼 곳의 나라들에서도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이다(4-5절).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택자들을 남김 없이 다 구원하실 것이며 친히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우리는 그의 일에 쓰임 받기를 원한다.

셋째로, 구원 얻은 성도들은 그들이 얻은 구원을 기쁨으로 간증할 것이다(7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또 구원 얻은 성도들을 보고 기뻐하고 주의 구원의 일에 힘써야 한다.

 

 

 

제 88 편

〔고라 자손의 찬송 시 곧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르안놋에 맞춘 노래〕

 

1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2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3 무릇 나의 영혼에는 재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웠사오니

4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

5 죽은 자 중에 던져진 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6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와 어둡고 음침한 곳에 두셨사오며

7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가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 (셀라)

8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9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10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셀라)

11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12 흑암 중에서 주의 기적과 잊음의 땅에서 주의 공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13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15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

16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17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18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88편 강해: 곤란 중에 부르짖음

고라 자손의 찬송시 곧 에스라인 헤만의 마스길. 영장(伶長)으로 마할랏 르안놋 [슬프게 부른다는 뜻 같음]에 맞춘 노래.

[1-2절]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라고 부른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신 섭리자 하나님이시며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직면하는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분은 그 하나님뿐이시다.

시편 저자는 또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은 기도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밤낮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는 간절한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열심으로, 간절하게, 또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께 기도한 후 그의 응답을 기대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바른 태도이다.

[3-7절] 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쉐올) [무덤]에 가까왔사오니 나는 무덤(보르)[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사망자 중에 던지운[버려진](NASB) 바 되었으며 살륙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시니 저희는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보르)[구덩이] 어두운 곳 음침한 데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로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셀라).

시편 저자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까닭은 그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무덤에 가깝다고 말하며 자신을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같고 힘이 없는 자와 같다고 말한다. 그는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큰 고통 중에 있다. 그는 자신을 사망한 자들 중에 던지웠다고 말하며 살륙을 당해 무덤에 누운 자와 같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다시 기억지 않으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끊어진 자들인데, 그는 자신이 바로 그런 자와 같다고 말한다. 지금 시편 저자가 이러한 슬픔과 절망의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노하셔서 심히 누르시고 그의 모든 고통의 파도로 그를 괴롭게 하셨다.

[8-9절] 주께서 나의 아는 자로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로 저희에게 가증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곤란으로 인하여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의 친구들로 그를 멀리 떠나게 하셨고 그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게 하셨고 또 갇힌 자같이 친구들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하셨다. 또 그는 곤란으로 인해 그의 눈이 쇠하게 하셨다. 사람이 심신으로 피곤하고 고통스러울 때 눈이 쇠한다. 그것이 지나치면 눈의 핏줄이 터져 시력에 손상을 입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심각한 곤란 중에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그는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루 이틀 기도하다가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날마다, 여러 날 계속해서 기도하였다. 그는 하늘을 향해,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아마 복종을 결심하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10-12절] 주께서 사망한 자에게 기사(奇事)를 보이시겠나이까? 유혼(幽魂)(레파임)[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셀라).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신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흑암 중에서 주의 기사와 잊음의 땅에서 주의 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

시편 저자는 자신을 사망한 자나 무덤에 있는 자 또는 흑암 중에, 잊음의 땅에 있는 자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죽고 말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주께서 사망한 자에게 기사(奇事)를 보이시겠나이까?”라는 말은 그가 죽기 전에 하나님의 기사 즉 그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기 원함을 나타낸다. 또한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신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라는 말은 그가 살아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선포하기를 원함을 나타내며, 또한 “흑암 중에서 주의 기사와 잊음의 땅에서 주의 의를 알 수 있으리이까?”라는 말도 그가 살아서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과 그의 의를 알고 체험하고 증거하기를 원함을 나타낸다.

[13절]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도달]하리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편 저자는 아침에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다. 그는 새벽기도를 한 것 같다. 혹은 밤새도록 한 기도가 아침에 하나님께 상달할 것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새벽기도는 세상일을 하기 전, 가장 좋은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친히 본을 보이신 일이었다(막 1:35). 하나님께서는 고난받는 성도가 밤새도록 올리는 기도나 새벽이나 아침에 부르짖는 기도를 잘 들어주실 것이다.

[14-17절]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시나이까? 내가 소시(少時)부터 곤란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할 때에 황망[당황, 절망]하였나이다.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렵게 하심이 나를 끊었나이다. 이런 일이 물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렀나이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시나이까?”라고 말하며 자신이 처한 고통의 현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시고 그를 향해 은혜의 얼굴을 숨기신 듯하였다. 시편 저자는 또 “내가 소시부터 곤란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의 두렵게 하심을 당할 때에 황망하였나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고난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고난을 주셨고 그를 두렵게 하셨으며 시편 저자는 그때에 당황하였고 죽을 지경이었다. 성도의 삶에는 고난이 많은 것 같다.

시편 저자는 또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렵게 하심이 나를 끊었나이다. 이런 일이 물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렀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다. 홍수가 그를 덮치듯이, 두려움이 온종일 그를 에워쌌었다.

[18절] 주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나의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멀리 떠나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 외로움은 사람의 큰 고통들 중의 하나이다. 그를 사랑하던 자들이나 친구들이 다시 그에게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었다.

 

시편 88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성도들에게는 때때로 정신적, 육체적 큰 고난이 있다. 우리의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들 조차도 우리를 버릴 때가 있다. 아마 가장 큰 고난은 죽음의 문 앞에 버려지는 것일 것이다. 죽음을 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둘째로, 그런 고난은 주로 하나님의 노하심 때문에 오며 하나님께서 노하시는 까닭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사람은 고난이 없을 때 죄 가운데 살기 쉽지만,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셋째로, 성도는 그때 회개하며 복종하며 구주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믿는 자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곤란 중에 구원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믿는 자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아침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묵상

하나님께서 나를 심히 고통 중에 두셨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인생이 겪어야할 과정 중의 하나다. 다만 나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나에게 닥친 피할 수 없는 환난을 감히 예상하지도 못하였지만 그런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은 나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절망의 늪에 오래 두시지 않고 건져 주셨다.

결국 나의 믿음은 이로 인해 견고해졌고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동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했다.

아직도 엄습하는 지난 날의 아픈 기억때문에 가슴이 먹먹하지만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음이 감사하다.

나는 오늘 말씀의 시편 기자의 간곡한 기도의 심정을 너무도 잘안다.

왜 나를 이렇게 어려움 중에 두시나이까? 하나님께 고통을 호소하며 애원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 주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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