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소식

동행과 임마누엘/몽골의 선교사

헤븐드림 2022. 2. 4. 02:07

 



사전에서는 동행과 임마누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동행하다(同行) : 일정한 곳으로 같은 길을 함께 가거나 오거나 하다. * 임마누엘(Immanuel) : 신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으로, 구약 성서에서 예언된 메시아의 이름.

동행과 임마누엘은 같은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동행은 사람의 의지가 강조된 단어인 것 같고, 임마누엘은 사람의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의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모스 선지자는 두 사람의 뜻이 같지 않으면 동행할 수 없다고 했다(암 3:3). 사람들은 주도권 싸움을 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위인이기에 동행이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같지 않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주도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손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나를 죽이는, 즉 나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밖에 없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 18:3)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어린 아이는 자기 주장이 없기에 아버지와 100% 동행하고 아버지가 없으면 불안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중딩(중학생)만 되어도 자기 주장이 뚜렷해서 부모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고 돈이 필요할 때 외에는 부모 앞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기도가 중딩 수준은 아닌지?

자기의 뜻을 굽히길 거절한 가인과 그의 후손을 구원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으로(창 3:15) 오셔서, 뜻이 같지 않아도 함께(동행)하시는 임마누엘이 되셔서, 뜻이 같지 않은 자들을 품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아버지, 아버지와 뜻이 같지 않은 자(선악과 따먹은 자)를 위해 제가 대속의 제물로 죽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선행이나 예배나 기도의 횟수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동의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신다. 이것이 입술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뜻이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율법 준수로 되는 것이 아니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요 3:3).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죄인일 때, 원수일 때(롬 5:6,8,10)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해서(요 1:12), 예수님의 생명으로(요 1:4, 요 6:48, 요 14:6)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동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롬 6:1-3).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기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임마누엘), 우리는 결코 죄에 거할 수 없고 더욱 더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롬 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