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편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마할랏에 맞춘 노래〕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
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53편 강해 : 어리석은 자
[1절]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본 시편은 시편 14편과 내용이 거의 같다. ‘어리석은 자’는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래서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자신에게 불행하고 해로운 결과를 피하지 못하고 당하는 자이다.
우선, 어리석은 자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어리석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며 그가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주 만물과 인간의 역사를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는 행위가 부패하게 되어 있다. 인류 역사가 그것을 증거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는 악을 떠나지 못한다(잠 16:6). 하나님 없이 사는 자는 죄악될 수밖에 없고 때때로 가증한 악을 행한다. 그들 속에서는 참된 선을 찾아볼 수 없다. 예수님을 안 믿는 자들 중에도 착한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착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부터가 착하지 못한 것이며 또 하나님 경외함이 없는 선은 환경 여건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고 불리함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선이다. 그것은 결함이 있는 선이다.
[2-3절]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다고 계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도 비구름 너머에 빛나는 태양이 있듯이, 세상에 무신론자들과 부도덕한 자들이 가득해도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셔서 세상을 살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신즉 모든 사람이 다 물러가 더러워졌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물러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으로부터, 즉 인생의 정로(正路)로부터 물러갔다는 뜻이다.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고 인생의 정로에서 탈선하였다. 그것이 죄이다. 죄는 사람의 인격을 더럽히는 요소들이다. 그것은 다 자신의 마음을 더럽히고 타인들의 마음에 고통을 주고 인간 관계를 병들고 황폐하게 만들고 온 세상을 어지럽힌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더러워졌고 온 세상이 더러워졌다. 사람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깨끗해야 하지만, 세상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인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죄인은 선을 행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답지 못하고 사나운 짐승과 같다. 이 세상에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 세상의 종교나 도덕적 교훈은 죄인을 변화시켜 의롭고 선한 자가 되게 하지 못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아니고서는 새 삶을 살 수 없다.
[4-5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저희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하여 진 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 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였도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무지한가? 그렇다. 무지하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고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죄악을 행치 않았을 것이다. 또 죄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떡 먹듯이 먹는다. 떡 먹듯이 먹는다는 말은 너무 쉽게, 양심의 가책 없이 해치고 죽인다는 뜻이다. 인간의 죄악은 경건하고 순진한 사람들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해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핍박하는 것이며, 그것은 큰 죄악이다(마 25:42-45; 행 9:4).
또 죄를 짓는 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죄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것이 곧 불경건이다. 실상,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므로 악을 행한다.
그러나 죄악을 행하는 그들, 곧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던 곳에서 크게 두려워할 것이다. 그것은 성도를 대적하는 그들의 뼈를 하나님께서 흩으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뼈가 부서져 흩어지면 회복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두려운 징벌일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에 성도들은 원수들을 이기고 그들로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원수들은 한때 교만하고 자랑하고 당당하게 보였으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징벌로 패망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결국 원수들을 이길 것이다.
[6절]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고? 하나님이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본문의 첫 문장은 원문에서 시편 14:7과 같이 “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노라”이다. 이것은 경건한 자들의 소원인 동시에 또한 예언적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온 곧 예루살렘에 보내주셨다. 다윗의 예언적 기도는 성취되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것이다. 육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장차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온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죄와 사망과 불행과 사탄의 포로된 상태에서 구원받아 새로운 삶을 살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마 1:21).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될 복음이 온 세상 모든 족속들에게 전파될 것이다(사 2:2; 눅 24:4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 중에 속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의 이유이다. 사실,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와 지옥 형벌로부터의 구원보다 더 큰 복은 없다.
시편 53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무신론은 어리석은 사상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 그는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천지만물은 그에 의해 창조되었다. 무신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서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니 어리석고 악한 사상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부모가 낳아 양육하여 자란 자녀가 자기를 낳은 부모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어리석고 악한 사상이며 허무한 사상이다.
둘째로, 무신론은 부도덕하다. 사람의 도덕성, 즉 바르고 선하게 살려는 마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도덕성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창주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는 도덕의 근거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기회주의적이게 된다. 더욱이, 무신론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핍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며 무신론과 부도덕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무신론자들로 수치를 당케 하실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세상에서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그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생활을 죄로 간주하시고 징벌하시며, 그 결과 그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모든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징벌로 수치를 당할 것이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를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무신론자들에게 핍박을 받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고 지키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와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다. 세상에 구원보다 더 큰 복은 없다. 그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기쁨과 감사의 이유이다.
제 54 편
〔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십 사람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가 있는 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던 때에〕
1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2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3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셀라)
4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5 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6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7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54편 강해 : 하나님께서는 나를 돕는 자이심
[1-3절]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판단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외인이 일어나 나를 치며 강포한 자가 내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셀라).
다윗은 지금 고난 중에 있다. 그는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였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낯선 자들이 일어나 그를 쳤다. 강포한 그들은 그의 생명을 찾았다.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던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죽이려 했고 사울에게 충성을 바친다고 생각한 자들은 다윗을 잡는 일에 앞장섰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 앞에 모시지 않는 자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은 악을 행한다. 경건한 다윗에게 고난의 현실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단련을 위해 주신 현실이었다.
다윗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그를 인정하시고 사랑하시고 왕으로 작정하시고 기름 부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그의 구원을 간구했다. 그는 도망 다니며 피곤하고 지쳤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힘으로 그를 판단하시고 변호해주시기를 구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지만,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4-5절]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저희를 멸하소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돕는 자시라고 고백한다. 돈이나 세상 권력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도움은 되겠지만, 결정적 도움, 완전한 도움은 되지 못한다. 돈이 질병을 막아내지 못하고 돈이 사고나 천재지변을 막아내지 못한다. 성도에게는 재력과 세상 권력의 도움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항상 그의 도움이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어려울 때 완전한 도움이 되신다.
다윗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붙드는 자들과 함께하신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다윗의 생명을 붙드는 자이시며 또 그런 자들을 그에게 주셨다. 사무엘상 23:14에 보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매일 찾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다. 원수들이 성도의 생명을 해치려 하고 죽이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면 그들은 그를 해치지 못한다.
다윗은 하나님께 원수들을 멸하시기를 간구한다. 성도의 원수는 궁극적으로 사탄이다. 가까이는 사탄의 하수인 노릇하는 사람들, 악하고 거짓되고 무지한 자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미워하고 핍박하고 해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원수들을 재앙으로 갚으실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의 성실하심으로 저희를 멸하소서”라고 말한다. ‘성실하심으로’라는 원어는 하나님의 진리대로, 율법대로, 공의롭고 일관되게라는 뜻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대로, 공의롭게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 로마서 13:19,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6-7절]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대저 주께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셨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낙헌제로 제사드리며 그의 이름에 감사하겠다고 말한다. ‘낙헌제로’라는 원어(비네다바)는 ‘자원함으로, 혹은 자원제물로’라는 뜻이다. 구약의 제사는 일차적 의미인 속죄의 의미 외에 예배와 헌금의 의미도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의무적인 제사나 형식적인 제사, 즉 오늘날 말로 하면 의무적인 예배나 형식적인 헌금이 아니고 기쁨과 즐거움의 예배와 헌금, 자원함의 예배와 헌금을 드리겠다고 고백한 것이다. 또 그는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하겠다고 말한다. 감사는 의무와 형식에서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참된 감사는 기쁨과 즐거움에서 나오며 자원함으로만 할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이 자원함으로 제사를 드리고 감사를 올리는 이유가 하나님의 이름이 선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윗의 자원적 제사와 감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했을 때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체험함이 아니면 어떻게 사람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헌금하며 감사할 수 있겠는가.
다윗이 체험한 하나님의 선하심은 7절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환난에서 그를 건지셨고 그의 원수가 보응받는 것을 그로 보게 하신 것이었다. 다윗은 많은 환난을 겪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환난에서 그를 건져주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미워하고 핍박했던 원수들에게 보응하셨고 다윗으로 하여금 그것을 눈으로 보게 하셨다. 그것이 다윗이 체험한 하나님의 선하심이었다.
신약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씻음의 구원을 체험한 자들이다. 우리는 전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었다(엡 2:1). 우리는 죄와 마귀에게 종노릇하였던 자들이었고(롬 6:6; 엡 2:2),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다(엡 2:3).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고 하나님도 없었던 자들이었고(엡 2:12), 하나님과 원수이었다(롬 5:10).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십자가에 대속 제물로 내어주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었다(요 3:16; 롬 5:8; 요일 4:9-1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전 6:11; 롬 3:21-2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그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골 1:13). 이것이 우리가 체험한 구원이며 이 구원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고 기뻐하며 사랑하고 그를 위해 산다.
시편 54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의 삶에는 때때로 악한 자들의 핍박이 있다. 세상에서 성도에게는 고난이 많다(시 34:19). 특히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고난이 많다. 주께서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셨다(마 5:11-12). 사도 바울도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하였다(딤후 3:12).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자이다. 다윗은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하시나이다,” “대저 주께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셨나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의 현실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지키시고 구원하시고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자이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판단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기도하였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시기를 구하였고 주의 응답하심에 대해 감사하며 자원함의 제사를 드리기를 결심하였다.
넷째로, 우리는 평소에 바르게 살아야 한다. 다윗이 평소에 바르게 살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공의의 판단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성경 읽고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하고 또 그의 계명과 성경의 교훈대로 바르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담대히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할 수 있다.
제 55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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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노래〕
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2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
3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6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8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9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10 그들이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 중에는 죄악과 재난이 있으며
11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
12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14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15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9 옛부터 계시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낮추시리이다 (셀라) 그들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이다
20 그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의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21 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23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55편 강해 : 핍박하는 악인들을 멸하심
[1-3절]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아잔)[들으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하크쉬바)[귀를 기울이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시아크)[불평]으로 편치 못하여(아리드) [안정이 없어](BDB)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다윗은 지금 매우 불편한 마음 상태에 있다. 그는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한다. 다윗은 지금 마음에 안정이 없고 탄식하고 있다. 그가 그런 마음 상태에 있는 까닭은 원수들 때문이었다. 그의 원수들은 목소리로 그를 위협하며 핍박하고 압제하며 그에게 고통을 주었다. 다윗은 원수들의 이런 위협과 핍박과 고통과 분노로 인해 지금 마음의 안정을 잃고 탄식하고 있다. 그는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아뢸 때 자리를 피하지 마시고 그에게 귀를 기울이시기를 간구한다.
[4-8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에이모스)[공포들]이 내게 미쳤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다윗의 마음은 원수들의 핍박으로 인해 심히 아프다. 마음의 고통은 육신의 고통보다 더 심하다. 그는 마음의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고, 사망의 공포와 두려움이 그를 덮치고 있었다. 그는 고통과 두려움 가운데서 비둘기같이 멀리 날아가 광야에 거하여 편히 쉬기를 원한다. 성안에서의 생활이 산이나 광야보다 편리한 점은 있겠지만, 인간 관계 속에서 마음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는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 같은 사람들의 핍박과 압제를 피하기를 원한다.
[9-11절]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저희를 멸하소서. 저희 혀를 나누소서. 저희가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중에는 죄악과 잔해함이 있으며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
다윗은 성안에서 악한 일들을 보았다. 악인들은 성안에서 강포와 압박, 악독과 잔해, 분쟁과 속임을 행했다. 그들은 세력이 있어 활보하며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녔고 악한 일들이 성중에 또 거리에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사람의 덕성들과는 정반대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온유하고 선하고 사랑하며 진실하기를 원하시지만, 그들은 정반대로 악하고 강포하고 남을 해치며 압제하고 서로 싸우고 속였다. 악인들이 세력을 얻으면, 백성들은 탄식할 것이다. 의인들은 이런 악인들 가운데서 하루라도 편하게 지낼 수 없다. 다윗은 이런 현실에서 “주여, 저희를 멸하소서. 저희 혀를 나누소서”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의인들은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하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의로운 처분에 맡긴다.
[12-15절]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 채로 음부[지옥]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다윗을 책망하고 자기를 높이는 자는 본래 다윗의 원수이거나 그를 미워했던 자가 아니었다. 만일 그러했더라면 다윗은 오히려 참고 그를 피하여 숨었을 것이다. 다윗의 원수는 이전에 친했던 친구이었다. 그는 전에 그와 함께 의논하던 상대이었고 함께 하나님의 집에 올라갔던 친구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를 비난하고 대적하는 자가 되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미워한 것같이, 형들이 동생 요셉을 미워한 것같이,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신하여 원수들의 앞잡이가 된 것같이, 다윗의 친구는 이제 다윗을 대적하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적자들의 결말은 비참하다. 황폐함이 그들에게 임하며 그들은 산 채로 지옥에 내려갈 것이다. 악인은 평안하고 형통한 것 같다가 갑자기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행에 보응하실 것이다.
[16-19절]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救贖)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태고부터 계신 하나님이 들으시고(셀라) 변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리로다.
다윗은 큰 고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는 불평 중에 마음에 안정이 없으며 마음이 몹시 아팠을 때(2, 4절), 죽음의 공포들과 두려움들이 그를 사로잡았을 때(4-5절),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그는 하루 세 번씩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기도하였다.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은 경건한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었다(단 6:10).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실 것을 믿었다(16, 17, 19절). 태고부터 계신 하나님,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기도를 잘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영혼을 평안 가운데 건져내셨도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미래의 확실한 일을 표현한다. 성도에게 대적자들이 많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도우시고 건지신다. 그러나 심령의 변화가 없는 자, 자신의 지은 죄들을 뉘우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공의의 보응을 받을 것이다.
[20-21절] 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다윗을 대적하는 악인은 화목을 깨뜨리는 자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했다. 그는 화평을 미워하는 자이다. 그들의 말들은 우유 기름보다 부드러워도 그 마음에는 미움과 시기와 분노와 살기가 있다. 다툼과 불화는 지옥에 들어갈 자들의 죄악이며, 화목은 천국의 덕이다. 화평과 온유는 성령의 열매이다(갈 5:22-23). 천국은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이다(롬 14:17).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과 거짓과 외식과 시기를 버리라고 교훈한다(엡 4:31; 벧전 2:1).
[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모든 사람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다(마 11:28). 인생의 짐은 죄의 짐이며, 또 죄의 결과로 가지는 근심과 걱정, 슬픔과 고통, 가난과 질병의 짐이다. 구원받은 성도도 사람이므로 세상의 일로 인한 염려와 두려움, 낙심, 고통이 있고 때때로 핍박과 고난도 있다.
그러나 성도는 자신의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자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하신 자이시다. 그는 우리를 죄와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셨다. 그는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자이시다. 그에게 무엇을 맡긴다는 것은 그를 믿고 의지하고 그에게 기도하며 의탁하는 것을 말한다. 시편 68:19는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적당히 그를 붙들어 주실 것이다. 그는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실 것이다. 요동한다는 말은 낙심하거나 범죄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요동치 않도록 굳게 붙드시며 낙심치 않고 평안케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 125:1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가 시온 산이 요동치 않고 영원히 있음 같다고 말하였다.
[23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악인은 돈이나 명예나 권세 등 자기 유익을 위해서라면 이웃을 해하거나 죽이기도 하며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면 언제든지 속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일생의 절반도 살지 못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그들은 지옥에 던지울 것이다. 다윗을 끈질기게 죽이려 하였던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했고, 다윗을 대적해 반란을 일으켰던 아들 압살롬은 에브라임 수풀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성도는 그런 자들과 달라야 할 것이다. 다윗은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바라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였다.
시편 55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세상 사는 동안 고난을 각오하며 살아야 하고, 때때로 친구의 배신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아는 바이며 다윗이 경험한 바이며 신약시대에 주 예수께서 친히 경험하신 바이다. 그것은 심히 마음 아픈 일이지만, 우리는 그런 고난까지도 각오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악하게 살지 말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악한 자들은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노하며 악하고 강포하며 싸우고 속인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온유와 선함과 진실함으로 살아야 한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성도의 삶은 선한 삶이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에게 우리의 모든 짐을 맡기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외적인 조건들을 자랑하거나 의지하지 말고 돈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성경말씀만 믿고 행해야 한다. 그것이 경건하고 선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