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역사 간증

코리 텐 붐 - 주는 나의 피난처

헤븐드림 2021. 12. 17. 06:22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1892~1983)은 네덜란드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유대인들을 안전한 곳에 숨겨 주다가 독일군에 체포되었고, 그녀는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혹독한 고난과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그녀는 함께 갇힌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수용소에서 석방된 뒤에는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자들을 돌보았으며, 전 세계를 다니며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감옥에 갔을 때 저의 나이는 53세였어요. 1944년 세계 2차 대전당시, 아마도 많은 분들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괜찮아요. 역사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히틀러 군대가 네덜란드로 쳐들어왔고, 전쟁이 시작된지 5일 만에 우리를 강제로 항복하게 만들었죠. 독일군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너희들 또한 우리의 소유이다.” 독일은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네덜란드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캠페인을 벌였었죠. 나치는 증오라는 독을 내뿜었습니다.
 
예전에 우리는 네덜란드 왕국 시민이었는데 이제는 그저 네덜란드인이었고, 그리고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이웃과 친구들이 잡혀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2년 동안 우리 집에서 나치에게 쫓기는 유대인들을 숨겨주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유대인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죠. 1944 2 28일 어떤 이가 우리를 고발해 비밀 경찰들이 우리를 끌고 가기 전까지는요.
 
첫 번째 주에는 그들은 나와 다른 세 네 명의 사람들을 감옥에 수감시켰어요. 저의 생명이 철저히 원수들의 손에 있다는 것을 저는 그 때 알았어요. 그들은 나를 고문할 수 있고 죽일 수 있었어요. 나는 모두에게 잊혀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밤에는 벽을 뚫고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비밀경찰에게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그 곳은 마치 작은 지옥 같았어요. 저는 찬양을 하려고 했지만 경비병이 감옥 문을 두드리며 찬양을 하면 암흑의 방으로 보내겠다고 저를 위협했어요. 그 감옥은 물속에 서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어요.
 
그들은 밤낮 상관없이 어느 때든지 저를 고문실로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철장 밖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면 저는 제 자신에게 이야기했죠. 그들이 나를 고문하고 죽이려고 오는 소리 일거야! 그러다 저는 하나님께 말했어요. ‘하나님, 저는 이러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없어요. 제 믿음은 강하지 않아요.’
 
그러다 저는 방바닥에 있는 개미들을 지켜보게 되었어요. 제가 젖은 바닥을 닦고 있는데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개미를 덮치자 개미는 그 폭풍을 이겨내기 위해 물에 젖은 다리에 신경 쓰지 않고 달려서 도망갔습니다. 개미는 자신의 피난처로 똑바로 걸어갔습니다. “코리, 너의 믿음을 보지 마라. 그것은 아주 작고 약한 개미의 다리에 불과하다. 그 잔인한 사람들이 너에게 무엇을 할지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유일한 피난처이다.” 그 때 처음으로 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분은 제 언니 베티입니다. 그녀는 저와는 다른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언니를 볼 수 없습니다. 한 달이 지난 후 우리는 홀란드에 있는 더 큰 수용소로 끌려갔어요.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시 부르스칼의 게토로 그리고 독일로 보내졌죠. 저와 제 언니는 1000명의 여자들과 함께 옮겨졌었죠. 우리는 라훈스부르크로 옮겨졌어요. 그것은 노동 수용소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처음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어요. 하지만 성경책은 빼앗기지 않는 믿기 힘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성경책을 제 등 뒤에 숨기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주님께 기도 드렸죠. ‘주님, 저를 둘러싸주는 천사를 보내주세요.’ 그리고는 저는 생각했어요. 천사들은 영이니 투명해서 성경을 숨겨줄 수 없다고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지 않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저는 두려움 속에서 기도를 했지요. ‘하나님, 당신의 천사들이 불투명해져서 저를 숨겨주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해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제 앞에서 수색하고 있을 때, 저는 제 언니 바로 뒤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제가 그곳에 있었음을 알아채지 못했죠.
 
제가 있던 수용소는 200명의 여자 포로를 수용할 수 있는 수용소였어요. 하지만, 그들은 700명을 수용했어요. 우리는 콩나물시루 같은 곳에서 잠을 자야만 했어요.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적발된 사람은 아주 끔찍하게 죽였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누구도 우리가 매일 2번씩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을 몰랐죠. 그 방은 아주 더러웠고, 엄청나게 많은 이와 빈대들이 기어 다녔어요. 그렇기 때문에 경비병이 문에 서있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성경공부 할 수 있도록 빈대와 이를 사용해서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순간들이 마냥 즐거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좌절의 순간들도 있었어요. 저는 어느 날 밤을 기억해요. 제가 그 수용소의 밖에 있을 때 하늘에 떠 있는 아름다운 별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저는 주님께 말했어요. ‘주님, 주님께서는 이 모든 별들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그 모든 별들을 잊지 않고 계시죠. 하지만, 저와 베티는 잊고 계신가요?’ 그러자 베티는 말했어요. “그렇지 않아, 우리 주님은 우리를 잊지 않고 계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이 성경에 써 있잖아!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코리,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 너의 느낌이나 감정을 믿지 말고, 주님을 믿어야해.” 저는 서서히 내 감정이나 느낌, 생각이 아닌 주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느낌은 왔다가 사라지는 미혹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처한 환경이라는 지옥에서 우리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라훈스부르크 수용소는 노동 수용소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우리의 원수들은 우리를 강제 노동으로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전에 언니는 제 눈앞에서 노파처럼 변했고, 서서히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화장터의 굴뚝으로 검은 연기가 쏟아져 수용소에 검은 안개처럼 드리웠습니다. 매일 7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고 학살당했어요. 포로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을 택한 거죠. 저는 죽음을 자주 경험했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 한 번 느꼈죠.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시라는 것을.
 
라훈스부르크 수용소에 참혹한 겨울이 왔을 때, 나치는 제 나이에 속한 사람들을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그 계획이 실행되기 1주일 전에 그곳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류를 작성할 때 오류가 있어 죽지 않고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알았어요. 제가 감옥에서 배운 모든 것을 이 세상에 남은 생애 동안 전하라고 부르셨음을 깨닫게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들과 제 삶을 나누길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85세입니다. 저는 제가 이제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제 남은 인생은 주님 손에 맡겨 드렸으니까요. 영생에 대해 아시나요? 영생은 천국에 갈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향하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그럴 때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그분께서는 한 번도 우리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