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산책

봄의 첫 장/권여원

헤븐드림 2021. 10. 9. 05:26

 

 

 

봄의 첫 장/권여원

 

 

 

매화나무 아래 서면

허공에 불이 켜진다



겨우내 하늘을 마시며 자란 꽃잎들

가볍고 여린 실핏줄로 터지고 있다



살점을 떼어내듯 분홍빛 지문들이 떨어지는

언덕 위의 붉은 잔



나무는 피를 흘려도 아프다 소리치지 않는다

산자의 어깨에 내리는 저 핏방울



창공에 붉은 물결 넘치는 동안

바람은 꽃망울을 넘어가기 위해 가벼워진다



차디찬 땅끝,

언약을 바라본 이들에게 온기가 돈다



꽃잎의 살점은 우리의 허물을 갚아주신

은총의 무게



내 몸 어딘가 당신을 향한

연분홍 촉수가 켜진다

 

 

권여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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