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꼭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의 나이가 된 마임배우 유진규. 인생의 3/5를 마임배우로 살아오며 변질된 세상과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가 몸짓 언어를 통해 배운 침묵을 깨고 말 대신 글을 통한 세상과의 접합을 시도했다.
사실상 마임의 불모지라는 한국에서 마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는 마임을 하면서 몸을 배우고, 몸짓 훈련을 거듭하며 주변에 늘 있지만 그 존재를 잊고 살았던 꽃과 바람, 하늘을 깨달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사랑과 열정이 모자라는 자신의 모습을 바로 세우고 세상의 로봇 역할을 뿌리쳐 스스로의 모습을 찾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다. 30년 동안 말없음의 세상에 머물며 삶의 지혜와 깊은 통찰력을 얻은 그는 잘 나가는 사람이기를 마다하고 있는 그대로의 마임배우 유진규로 남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세상의 이론을 교묘히 숨기고 있는 동화에 딴죽을 걸어, 백설공주가 성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와 흥부의 정신착란 증세를 다루는 그의 새로운 동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성공하려면 말을 잘 해야 한다는 요즘, 아무 말 없이 몸짓 하나로만 세상과 만나는 유진규. 그는 알아 주는 이 없는 마임의 불모지, 한국에서 삼십년 동안 마임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어느덧 나이 오십, 그는 사진이 마임에서 배운 삶의 진짜배기 지혜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두렵지만 난생 처음 몸짓이 아닌 책으로 세상과 만나려 한다.
이 책에는 그가 말하지 않기에 더 깊게 느낄 수 있었던 사랑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내 생에 가장 특별한 하루는 오늘'이라고 말하는 그의 바람은 오직 하나. 몸으로 빚어낸 이 책이 사람과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수 있었음 좋겠단다.
머리말
내가 아는 유진규
- 첫 새벽에 만나는 사과나무 같은 이 / 김병종(한국화가, 서울대 미대 교수)
- 그대, 꽃처럼 존재를 이야기하고 / 이철수(판화가)
1. 마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내가 마임을 선택한 이유
그대 자유를 꿈꾸는가
몸은 거짓말을 모른다
참으로 소중한 만남
'착한' 동화들에 딴죽 걸기
2. 내 친구, 침묵 이야기
침묵의 독백
사랑을 꼭 말로 해야 아나요
말을 위한 기도
3. 내 삶의 속도는 내가 정한다
'뇌종양'과 싸우며 얻은 생각
부부가 침묵을 만났을 때
내 삶의 속도는 내가 정한다
나는 지금 유쾌한 이별을 준비한다
내 생애 가장 특별한 하루
4. 생활의 발견
화장실 예찬
내가 만난 인도 사람들
아내와 나의 각방 인생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내게 말해준 것
개가 사람을 가리는 이유
어느 식당 할아버지의 '간판 내리기'
내 몸의 이유있는 주장
버린 만큼만 얻을 수 있다
...
5. 마임배우가 바라본 사람살이
사랑이 뭐길래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다
누군가를 간절히 원할 때의 감정. 우리가 느끼는 감정 중 그것처럼 명료하고 분명한 게 또 있을까. 사랑 자체는 비록 환상일지라도, 그것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감정만큼은 너무나 확실하다. 때문에 어쩌면 삶에서 우리의 존재감을 가장 확실히 일깨워주는 건 바로 사랑일지 모른다. 누군가는 '나는 생각해. 그러니까 나는 존재하는 거야'라는 말로 인간의 존재 의미를 규정지었다. 그러나 나는 이 명제를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p.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