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산책

고드름 /고성만

헤븐드림 2021. 2. 21. 06:19

신춘문예-시조 당선 소감] “일상에 지친 독자 달래는 작품 쓰고파”

 우물물 맛보러 가는 길 안내하듯 옹골찬 서사 담아내고 싶어

고성만씨


내 그리움의 영토엔 자주 눈이 내린다.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마당이 있고, 고드름 주렁주렁 매달린 낡은 집 뒤 우물이 있었으며 우물 속엔 하늘과 바람과 별이 흘러갔다. 나는 우물을 들여다보며 꿈을 꾸었다. 시인 되는 꿈을.

칠백살 먹어도 건재한 생명체. 어떤 말을 담아도 찰랑찰랑 엎질러지지 않는 그릇.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고유한 정형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 우리는 왜 시조를 말하는가?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을 가장 짧은 시형으로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것을 명쾌하게 짚어내는 촌철살인!

시조의 멋을 사랑한다. 맺고 풀리며 휘어져 넘고 넝쿨지는 가락을 사랑하고 조운·정완영 이런 분들의 시조를 사랑하고, 대한민국 훌륭한 시인들의 시조를 사랑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독자들에게 우물물 맛보러 가는 길을 안내하듯 산뜻한 이미지와 옹골찬 서사를 담아내고 싶다.

시조를 삼십여년 귀동냥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지 이제 삼년여, 이 나이에 신춘문예라니 아, 나도 참! 삭풍의 시절에도 올곧게 시조의 자리를 지켜준 <농민신문>에, 염창권 시인을 비롯한 시조로 함께 놀아준 광주문학아카데미 시인들께, 밝은 눈으로 어두운 시 뽑아준 이정환·이달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린다.



고성만 ▲1963년 전북 부안 출생 ▲1998년 <동서문학> 신인상 시 당선 ▲광주광역시 국제고등학교 교사 명예퇴직 ▲문예지도사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