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절망의 이름으로 새겨진
까마득한 첫 번째 심판의 날에
슬픔을 딛고 찬란하게 떠오른 무지개를
온몸으로 품어 안고
담담하게 비춰주던
오색 빛깔 무지개의 집입니다.
저기 한 나그네가 앉아 있네요.
눈앞에 다가오는 환란이 두려워
선뜻 강을 건너지 못하고
쪼그라든 가슴만 후벼 파고 있네요.
나는 그에게로 다가갑니다.
그의 끊어진 환도뼈를 어루만지며
잔잔하게 흐르고 또 흘러내립니다.
어디에서 왔을까요.
지치고 곤한 인생길에서
눈물마저 말라붙은 사람이 있네요.
큰 짐을 지고 먼 길을 향해 걸어가다가
광야 끝 막다른 길에 다다른 사람입니다.
나는 그의 얼룩진 발을 품에 안고
먼지 한 올까지 씻고 또 씻겨주었습니다.
세월의 강을 따라 흐르고 또 흘러가다가
굴곡진 삶에 정수리까지 딱지가 앉아
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울어울어 서러운 눈물이 강을 이루고
바다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상처를 치료할 눈물 한 방울이
절실해 보였습니다.
이제 나는
온 세상으로 흐르는 물이 되려 합니다.
언덕을 흘러 골짝을 덮고
메마른 산천에 새 움을 틔우며
가난한 마음에 꽃을 피우게 하는
갈보리 산꼭대기의 눈물 한 방울을
이 한 몸에 가득 품어 안고
갈급한 영혼들을 향해
흐르고 또 흐르는 물이 되려 합니다.
■수상소감 “시로 선한 영향력 끼치고파”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40여년을 시를 쓰고 있다. 작품성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습관적으로 썼다. 최소한의 시적 요건이 갖춰지면 SNS를 통해 지인들과 나눴다. 모두 좋아해줬다. 그래서 가볍고 쉽게 시를 썼다. 그러다 더 좋은 시를 써보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고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지만 탈락했다. 그래도 계속 두드리니 이렇게 좋은 상을 받게 됐다. 앞으로도 좋은 시로 소통하고 시를 통해 선한 영향력도 끼치고 싶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11328&code=23111311&cp=tw
'삶과 영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하는 사람/김장환 (0) | 2021.02.25 |
---|---|
여름의 돌/이근석(2021년 신춘문예 동아일보) (0) | 2021.02.21 |
새해의 기도/이해인 (0) | 2021.02.09 |
들깨 추수/김춘기 (0) | 2021.02.02 |
까마귀/이순분 (0) | 2021.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