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필肉筆로 새기다 / 제인자
넝쿨장미가 웃자라는 담장 아래 구두병원 꼼지락꼼지락 진종일 꿰매고 있다 바깥으로 무너진 뒤축은 뜯어내고 벼룻돌 같은 말씀 한 판 내리친다 헤벌어졌다 오므렸다 촘촘히 재는 입 모양 걸어온 길은 찬찬히 읽어야 보인다 우주를 필사하고 돌아온 햇살 알갱이도 다글다글 읽는다 생의 맨바닥 다독이듯 앞뒤 둘레 쓸어주는 저 손 어떤 말보다 안심이 되는 온기로 온 정신 손끝에 실어 손끝이 중심되어 한 땀 한 땀 흩어진 획 불러 모아 기워 보낸 어머니 편지 곧추세워 살라고 여태 꾸짖으신다 사람을 휘저어 놓는 고지식함 꾹꾹 눌러쓴 글발을 보면 부르르 가슴부터 떨린다 공중에 말아둔 짙푸른 세필 하늘 화선지 닿으면 헐렁헐렁해지는 넝쿨장미의 젖꽃판 선홍색 육필이 배달되면 부활한 예수가 찾아온다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철철 피를 흘리며 쓰시러 오신다 흙으로 빚은 몸에 새기는 영혼의 문장 * 요한복음 8장 6절~11절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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