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광고廣告 / 김길전/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헤븐드림 2019. 9. 18. 02:18




    

     광고
廣告 / 김길전


     파라킨사스 너는 뼛속까지 시린 밤에도 쇄골을       드러낸 가난한 여인의 입술에 걸린 광고

     가진 것이 그저 빨강 밖에 없네요


     추운 것들은 늘 번지려는 색 뿐이에요


     낡은 예식장이 생각과 모자를 바꿔 장례식장이       되자 눈이 이 내리고 대기하던 사람들이 

     죽었어요

     간밤
     그 신장개업의 담벼락에 어지럽게 나붙은 광고
     생고무 신발 재고 정리 새 신발 신고 가세요


     추운 것들은 늘 발이 젖어요


     몸 전체로 광고인 갈치는
     나무 상자 위 값이 치워진 나부처럼 누웠어요
     그 은빛 몸을 쓸어 간을 보는 시선에도 

     동그랗게 뜬 눈


     추운 것들은 늘 눈이 커져요


     광고는 붉은 과장
     광고는 춥고 따스함의 의도적 대비
     광고는 움츠리는 불빛의 촉수


     추운 것들은 언제나 끝에 있어요


     오늘 파라킨사스는 눈 속에서도 

     드러낸 가슴이 너무 붉고
     몇 낱알 쌀을 물고 누운 자는 신발이 없어요


     단지 겨울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모두 돌아섰네요


     타인의 추위를 수긍하지 않는 이들의 등 뒤로
     드러냄이 참 스산한데요



       당선작 ‘광고’는 현대시가 갖추어야 할 언어의 긴장과 냉담, 유머와 생략과 그로테스크까지 갖추었으며 무엇보다         강렬한 붉은색 꽃인 파라킨사스를 통해 광고로 대변되는 현대의 으스스한 풍경을 매력적인 언어 서술로 이끈 솜씨       가 돋보인 작품이다. 이 시인의 언어 감각과 정동(affect)은 ‘추운 것들은 늘 번지려는 색뿐이에요’라는 구절이나 붉       은 과장/…/광고는 움츠리는 불빛의 촉수’라는 날카로운 대비 속에 한껏 빛을 발하고 있다. 뛰어난 신인을 새해 

   새 아침에 선보이는 선자의 기쁨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