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커밍아웃 /황병승

헤븐드림 2019. 8. 3. 06:01



커밍아웃 /황병승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봐요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 
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 

부끄러운 게 싫어서 부끄러울 때마다 
당신은 엽서를 썼다 지웠다 
손목을 끊었다 붙였다 
백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도 됐다가 

고모 할머니도 됐다가...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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