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흰 그림자/윤동주

헤븐드림 2018. 5. 20. 02:59




흰 그림자/윤동주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검의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 '흰 그림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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