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우리 동네 목사님/기형도

헤븐드림 2017. 12. 1. 00:35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정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이 詩를 감상하면서,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라는
결구(結句)는 우리 동네 목사님의 깊은 좌절을 쓸쓸한 허무로 달래는듯 하다

번쩍이는 교회빌딩의 휘황한 목사님보다 우리 동네 (바보 같은) 목사님이
진정, 이 病든 시대에 필요한 목사님이란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이 詩를 쓰며 시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문득 묻고 싶어진다
하지만, 시인은 오래 전에 하늘나라로 표표히 떠나간 사람이어서

왠지 처량하게 보이는 목사님.. 이 시를 대하며 마음이 착잡해 지는 것은

시대가 말해 주는 상하고 메마른 마음들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