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책갈피의 풍문 / 서문기 (낭송,영상:셀레)

헤븐드림 2014. 1. 9. 23:23





책갈피의 풍문
        서문기
        낭송 by 셀레김정선







은행나무 위에는 새가 앉아 울고 있다 
세기에 세기 전부터 짝을 찾아왔다고 들었다 
허공 속, 울음의 지층을 만드는 동안 
나뭇잎은 숨 트기를 하였던 것인데 
그때의 은행잎은 파랗다고 하였다 
비가 멎은 다음, 무지개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것은 
그들만의 비밀장소로 들어가는 門이었다는 풍문만 떠돌았다

그게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바 없었으나, 
천 년, 꼬박 천년이 지나 
새의 짝은 나타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날이 오늘이었던 것인데 
자정이 막 넘어서자 
지금껏 콩깍지처럼 쌓인 지층은 
바람의 신전에서 보내온 여신의 화살촉으로 
금이 가면서 
북극의 오로라도 그때 껍질을 깨고 나왔다는 것이다 

눈부신 사랑의 만남인 것인데 
아무도 그다음은 말하지 못하였다 
바야흐로 
천 년을 극복한 그들은 
은행잎으로 가려 누구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 새가 짝과 만난 이후부터 은행잎은 노랗게 변했다는 것인데 
풍문과 전설은 믿을 게 못 되었으나, 
은행잎을 책갈피로 쓰는 것은 
새가 아닌, 龍이 
여의주를 만나 승천하다 남겨놓은 
비늘이었다는 풍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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