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출렁거리는 시/박완호

헤븐드림 2013. 5. 21. 02:44

 

 

 

출렁거리는 시/박완호

 그 방의 유리창은, 소리를 가득 채운 병의 

투명한 마개마냥 단단하게 잠겨 있다

  손이라도 잘못 갖다 대면 순식간에 

쏟아져버릴 것 같은 액체의 말들,
출렁거리는 유리병 속 포도주처럼 발효하는 

소리의 입자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귓구멍을 꽁꽁 틀어막은 벽들이 사방을 에워싼, 

창 밖에서는 물기 빠져나간 가지와 결별한 천만 이파리들 

늦가을 바람에 휩쓸리는 소문, 

엎어진 화투판처럼 술렁거리는 게 보인다

  유리마개를 살짝 연 다음,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는 

날랜 말들을 끄집어내고 싶은,
  시가 태어나기 참 좋을 무렵의




충북 진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1년 《동서문학 》등단
시집 『 내 안의 흔들림』『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등
동인시집 『유월 가운데 폭설이』  『아내의 문신』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