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빛의 화가 모네전과 채호기의 시 수련

헤븐드림 2009. 11. 9. 04:08

빛의 화가, 모네전에서 채호기의 <수련>을 읽다. 




 

끌로드 모네전은 6월부터 열렸으므로 우리는 늦깍이 관람객이었다. 덕분에 한가로웠고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60여점에 달하는 모네의 작품이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다. 가장 돋보이는 작품은 모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수련> 연작이다. 특히 길이 3미터의 초대형 작품 두 점을 비롯해서 수련의 오묘한 빛과 색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비디오를 통헤 보여주는 모네의 일대기를 통해서 모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읽는 재미도 있다. 말년 작품으로, 모네의 시력이 역해진 상태에서 그렸다는 수련의 선이 뭉개진 대작에서 나는 묘한 감상에 젖었다. 오히려 미묘한 빛의 흐름과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여지는 색의 조화로움과 회화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위의 풍경에서 모네의 연못과 일본 수련을 가꾼 모네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빛의 각도에 시간에 따라 변하는 수련을 보고 오직 수련에 빠져서 빛을 그린 모네를 이해할 듯했다.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보면서 문득 <수련>시집을 낸 채호기의 연못과 수련도 생각났다. 시인은 한 편의 시를 위해 얼마나 오래 연못을 서성거렸으며, 시시각각으로 다르게 보이는 수련을 관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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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1914-1917/캔버스에 유화 200*200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저 연못은 
  눈까풀이 없는 눈동자. 
  눈을 깜박거려 망막을 닦을 때 
  나는 저 연못일까? 

  잔잔한 수면에 노을이 비칠 때 
  연못의 시선은 저녁 하늘을 쏘아 올릴까? 

  내가 연못에 비치면 
  저 연못도 내 눈에 잠겨 들겠지. 

  연못의 시선이 하늘에 가 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눈은 
  연못에 비칠까? 

  연못 위에 파란 실핏줄 
  그건 연잎 
  수련꽃은 나를 보는 눈동자 

  밤에 봉오리를 닫는 수련 
  그건 연못이 잠들었다는 것. 


-채호기시집, <수련> 중, "연못1" 


모네는 인상파 화가의 선구자라고 한다. 인상주의 회화기법에 있어서 모네는 특히 빛을 오브제에 투영하여 작가의 감각과 만난 순간을 재창조한다.  화가,  모네는 끈기 있게 빛을 기다렸고, 어느 순간 색에 머문 시선을 끌어당겨서 화폭에 담으려고 했음이 분명했다. 일찌기 모네의 동료화가, 세잔느는 모네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네가 가진 것은 눈 밖에 없다. 그러나 얼마나 위대한 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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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1914-1917, 캔버스에 유화 150*200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안개 낀 새벽에 수련의 저 흰 빛은 
수련이 아니다. 누가 공기의 흰 빛과 
수련의 흰 빛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부풀어오르며 대기를 가득 채우는 수련, 
공기처럼 형태도 없이 구석구석 
끝도 없이 희게 빛나는 수련이여! 
  
안개 낀 새벽에 공기는 수련처럼 
희게 빛나다가 물처럼 푸른 두께로 
출렁인다. 수련은 창틀 없는 유리처럼 
푸른 깊이의 메아리. 물이 저 밑바닥의 
내면으로부터 물풀을 흔드는 물고기 
헤엄치는 혀로 푸드덕 말을 할 때 
솟아오르는 커다란 공기 구릉―수면을 깨뜨리는 
  
흰 포말 흰 파편은 수련, 
물-말이 깨어져 날카롭게 빛나는 흰 수련! 
  
수련 주위의 보이지 않는 저 공기는 
수련의 생각들이다. 
우리가 글자를 읽어나갈 때 
우리 주위에서 태어나는 생각의 파동들처럼.   

영원히 만나지 않을 듯 
물과 빛은 서로 섞이지 않는데, 
푸른 물 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 

-채호기시집, <수련> 중, "수련" 


시인이 한 편의 시를 낳는 순간, 순간이 영원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면 화가가 화폭에 담은 빛의 순간도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예술의 신조일 것이다. 포착된 순간은 모든 에술가에게 어떤 형식이나 구성 요소를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독창적인 표형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에술가가 포착한 순간이 영원히 기억하게 될 뿐이다. 비록 예술가는 가지만 예술은 남고, 작품과 함께 예술가도 기억될 것이다. 내가 모네의 수련을 보고 모네의 감성을 읽듯이, 예술은 그것이 어떤 감각으로 표현되었든 세상으로 열린 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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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튤립 밭 1886, 캔버스에 유화 65*81 오르세 미술관, 파리 

후반기에 수련만을 그리게 된 모네에게는 지베르니의 정원이 있다. 그는 방랑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고 1893년에 자신의 저택 남쪽 땅을 구입해서 정원을 꾸미고 산책로를 만들고 물 웅덩이를 파서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 그것이 지베르니 정원이다. 재미삼아 수련을 가꾸었지만 말년을 전부 사로잡은 수련을 그림 소재가 되었다. 서서히 원근법이 사라지고 수련만을 그리게 된 모네, 시간의 변화에 따라 물 위에 비친 빛과 빛에 따라 변하는 수련의 모양과 색과 느낌들을 풍경화로 만들어냈다. 물 위의 풍경 연작으로 성공한 수련은 그렇게 태어났다. 새로운 빛위 시대를 연 모네는 인상주의의 시스티나 성당벽화로 불리는 <수련>으로 예술의 결정판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전시회는 모네 그림의 핵심이라 불리는 <수련> 시리즈를 비롯해서  가족을 그린 풍경들로 모은 <가족의 초상>, 정원의 풍경 속 식물에 천착한 <지베르니의 정원>, 물에 관한 모네의 다양한 관심을 읽을 수 있는 <세느강과 바다>, 유럽의 다양한 풍경 속의 빛으로 그려낸 <유럽의 빛>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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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1914-1917, 캔버스에 유화 150*140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사실 모네는 일생을 통해서 센느강 유역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어린 시절은 르아부르에서, 청년기에는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지역도 부지발, 아르장테이유, 베테이유, 푸아시 등에서 했다. 그런 모네에게 센느강은 마음의 고향일 수 밖에 없다. 여행을 자주 떠났지만, 일정이 길지는 않았다. 모네의 수련 연작 외에도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네덜란드의 튤립 밭>과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의 <원추리 꽃>의 빛도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