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회개

비를 맞는 저녁/이승희

헤븐드림 2010. 9. 21. 01:50


 






비를 맞는 저녁/이승희


당신의 살냄새 같은 앵두꽃을 데려가는 바람의 뒤에 서서 

나는 비가 오길 기다린다. 

한 때 그것은 내 몸을 살다간 구름의 입자들. 

불의 이마를 닮은 짐승처럼 바람이 불어 간 방향으로 떠나갈 것들. 

빗방울이 맨 살에 떨어진다. 

스미듯 집의 불빛이 꺼졌다. 

앵두꽃이 진 자리마다 물고기들이 꼬리를 감추며 나무 속으로 사라졌다. 

허기가 들끓는 지상에서 상처난 짐승들이 

제 눈을 파내려는 듯 자주 울었고, 

핏물이 배어나오는 그리움으로 버텼다는 기별.  다시 앵두꽃은 피겠지. 

바람이 솜털을 부드럽게 누이며 말했다. 

몸 속에 새겨 넣은 지도 한 장이 낡아가는 저녁  

당신은 피 묻은 바닥을 닦아내며 물처럼 그렁거렸지. 

항상 구석의 풍경이었던 시간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며 구석을 지워낼 때 

바람의 지워진 문장을 읽어주던 당신.  

그문장 속에서 꽃들의 한 생이 다시 시작되고 

내 몸이 기억하는 빗방울의 무늬 속으로 걸어가는 저녁이었다.

그리움도 비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