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2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3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6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
7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8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9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10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
11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3장 강해: 신부의 사모함
1-5절, 교제의 회복
[1절]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에[내 영혼이] 사랑하는 자를 찾았구나.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구나.
신부는 밤에 침상에서 그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보통, 남편이 낮에는 일하러 나가고 밤에는 집에 있는데, 남편이 있어야 할 시간에 그가 없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신 것이 정상인데 그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음을 나타낼 것이다. 혹은 고난과 환난의 때에 주께서 함께 계시지 않음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주께서 우리 곁에 계시지 않은 까닭은 여러 가지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불경건과 죄, 세상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에 빠질 때 그가 우리를 떠나신다. 또는 때때로 단순히 우리의 신앙 인격을 훈련시키기 위해 그가 우리를 잠시 떠나신 듯한 때도 있다.
[2절]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중으로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구나.
신부는 일어나 성중에 돌아다니며 그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길에서 찾으려 하였다. 성은 예루살렘 성, 곧 교회를 가리킬 것이다. 또 거리나 큰길은 교회 안에서의 생활 즉 교제나 활동들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부가 거기에서 신랑을 만날 수 없었듯이, 성도는 때때로 교회 안에서의 교제나 활동들을 통해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 그것은 다른 성도들이나 교회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으나 또한 성도 자신의 부족이나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3-4절] 성중의 행순하는 자들(쇼메림)[지키는 자들, 경비하는 자들, 파수꾼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그들을 떠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미 집으로, 나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성중에 순행하는 자들 혹은 파수꾼들은 교회의 목사들이나 장로들을 가리킬 것이다. 신부는 그들에게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보았느냐고 물었으나 그들에게서 시원한 대답을 들은 것 같지 않다. 때때로 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도 주님에 대해 잘 알려주지 못한다. 아마 그들의 불경건과 불충성과 부족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신부는 그들을 떠나자마자 그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났다. 성도가 주를 사모하며 그를 애타게 찾았고 금방 만나지 못했지만, 주께서는 멀리 떠나 계신 것이 아니었고 그를 버리신 것이 아니었다. 주께서는 그를 사모하며 그의 뜻대로 순종하며 죄악된 것을 버리고 그만 의지하는 자들에게 만나주신다. 성도는 주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다(렘 29:12-13). 이것은 약속과도 같은 말씀이다. 또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마 7:7).
신부는 신랑을 꼭 붙들고 그의 어머니 집, 그를 잉태한 자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집’은 교회를 가리킬 것이다. 성도는 주께서 함께하지 않으신 때의 슬픔과 고통을 알고 또 주님을 찾고 그를 만난 것이 때때로 힘든 과정임을 체험하였으므로 이제는 그를 꼭 붙들고 그를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5절]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체비)[영양(羚羊)]와 들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하아하바)가 원하기 전에는(아드 쉐테크파츠)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2:7의 말씀과 같다. 본문을 신부의 말로 볼 수도 있지만(KJV, NIV), ‘사랑하는 자’라는 말이 여성명사이며 “원하기 전에는”이라는 원문이 “그 여자가 기뻐하기까지”라는 뜻이기 때문에 신랑의 말로 볼 수도 있다(NASB). ‘노루와 들사슴으로’라는 표현은 그 짐승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가리킬 것이다. 신부가 잠든 모습은 사랑스럽다. 사람이 노루와 들사슴의 그런 모습을 보면 놀라게 하지 않고 조용히 관망하는 것이 좋듯이, 신랑은 잠든 신부를 흔들거나 깨우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신부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유지되도록, 그가 혹시 깨어 싫어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안식과 평안을 주신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하실지어다.”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기쁨을 늘 유지하기를 원한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성도는 때때로 주님을 잃어버린 것 같은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죄 때문이거나 신앙 인격의 훈련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를 굳게 믿고 의지할 때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둘째로, 오늘날도 전심으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성도는 그를 만날 것이다. 실상 주께서는 결코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고 늘 우리 곁에 계신다. 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자마다 이제는 그를 믿고 순종하며 그를 꼭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 안에는 참 평안이 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교제하며 동행하고 주께서 주시는 평안 안에 늘 거해야 한다.
6-11절, 왕의 영광을 사모함
[6절]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도 하고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고.
본문은 친구들의 말로 생각된다(NASB). 이 친구들은 예루살렘의 딸들이든지 신랑의 친구들일 것이다. 원문은 “이 여자가 누구인가?”라는 말로 시작된다. 본문에 거친 들에서 오는 자로 묘사된 사람은 신부로 생각된다. 거친 들은 고난의 세상을 상징할 것이다. 세상에는 악한 자들이 많고 어려운 일들과 혼란한 일들이 많다. 그러나 성도는 이런 세상에서 구원 얻은 자이다. 사도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했고(행 2:40),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말했다(갈 1:4). 성도는 거친 들에서 나오는 자들과 같다.
본문은 신부를 ‘연기 기둥’ 같다고 묘사한다. 광야에서의 구름 기둥같이 그것은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도 요한은 천사가 든 금향로의 연기가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려지는 것을 보았다(계 8:3-4).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은 날마다 성소에서 올려지는 분향같이 하나님께 상달되며, 그가 은혜로 구원하신 성도들도 날마다 찬송과 기도를 하나님께 올린다.
또 본문은 신부를 몰약과 유향과 여러 가지 향품으로 단장된 자로 묘사한다.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향기로운 제물로 자신을 드리심으로(엡 5:2) 거듭나고 성화되어 아름다운 인격이 되고 성령의 선한 열매를 맺는 자이다(호 14:5-7; 갈 5:22-23). 그들이 참 성도이다.
[7-8절] [보라](힌네) 이는 솔로몬의 연(輦)이라. 이스라엘 용사 중 60인이 옹위하였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을 인하여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본문은 신부의 말이라고 생각된다(NKJV, NIV). 신부는 친구들의 말을 가로막으며 신랑의 가마를 바라보라고 말한다고 본다. ‘연’(輦)은 왕이 타는 가마를 가리키는 말이다. 공주나 옹주(첩의 딸)의 가마는 ‘덩’이라고 하고, 왕의 가마는 ‘연’이라고 하였다. ‘연’이라고 번역된 말(밋타)은 ‘침상, 소파’라는 뜻이다. 가마는 왕이 편안히 이동할 수 있는 침상이다. 본절은 왕이 가마에 신부를 태우고 혼인식장으로 가는 것을 묘사한 것 같다. 솔로몬의 가마는 이스라엘 용사 60인이 옹위하고 있다. 그들은 왕의 가마를 들고 그것을 경호하는 자들일 것이다. 그들은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자들이며 밤의 두려움 때문에 각기 허리에 칼을 찼다고 묘사되어 있다.
솔로몬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의 가마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태우시고 밤 같은 세상을 통과하여 천국에 이르려 하신다. 그 수행원들은 능력의 천사들과 그의 충성된 종들이다. 세상은 악하며 악령들의 활동이 많은 두려운 밤이지만, 주의 천사들과 종들은 유능한 용사들이다. 교회는 능력의 천사들이 옹위하고 있고 또 주께 헌신한 충성된 종들이 있기 때문에 밤 같은 세상에서도 안전하다. 주의 충성된 종들은 주 안에서 강건하여 마귀와 악령들의 세력과 싸워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들이다(엡 6:10-13; 딤후 2:3; 몬 2).
[9-10절]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연(輦)을 만들었는데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담(毯)이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이 입혔구나.
본문은 신부의 말(NIV)이든지 친구들의 말(NASB)일 것이다. 본문은 솔로몬 왕의 연(輦)을 묘사한다. 여기에 ‘연’이라는 번역된 원어(압피레욘)는 ‘가마 혹은 마차’라는 뜻이다. 솔로몬 왕은 자기의 연을 레바논 나무 곧 백향목으로 만들었다. 백향목은 고급 목재이다. 그 연의 기둥은 은이었고, 그것의 바닥 혹은 밑받침 또는 등받이는 금이었고 그것의 자리 곧 좌석은 자색 담(毯) 즉 자색 천이었다. 또 그 가마 안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사랑, 아마 그들을 위한 장식품들이 입혀져 있다고 묘사된다.
왕이나 왕의 신부가 탄 연은 교회를 상징한다고 본다. 교회는 레바논 백향목 같은 향기 나는 성도들로 구성된다. 교회의 기둥은 순은(純銀) 같은 순수한 진리의 말씀(딤전 3:15)과 그 말씀을 전하며 그 말씀대로 사는 기둥같이 충성된 종들이다(갈 2:9). 교회의 기초는 금 같은 보배롭고 불변적인 언약의 말씀이다(마 16:18). 또 교회의 좌석은 자색 천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만들어진 좌석이다. 그 안에는 성도들의 풍성한 사랑이 입혀져 있다.
[11절]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신랑은 혼인날, 곧 모두들의 마음이 기쁜 날에 머리에 면류관을 쓸 것이다. 성경은 ‘어린양의 혼인 기약’에 대해 말한다(계 19:7). 그 날에 교회는 천국에서 주와 함께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성도는 거친 들 같은 세상, 슬픔과 고난이 많은 세상에서 구원 얻은 자들로서 항상 찬송과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야 하며, 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으로 구원을 얻었으므로 이제 자신을 아름답게 단장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
둘째로,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구원 얻은 성도들을 위해 양육자와 같은 교회를 주시고 천사들의 옹위와 충성된 종들의 호위로 그 교회를 마귀와 악령들의 시험과 죄와 세상의 악의 풍조로부터 지키시고 구원 얻은 성도들이 무사히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
셋째로, 우리는 주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의 거룩한 영광(엡 5:26-27)과 마지막 날의 주의 영광을 보고 그 날의 영광을 사모하며 기뻐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교훈하였다(롬 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