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76세에 시작해 100세에 화가로 명성…모지스 할머니가 그림에 담은 삶과 도전

헤븐드림 2023. 10. 24. 04:25

 

분명 책은 책인데,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두세 장마다 계속해서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림책이라기에는 재질이나 판형이 일반적인 단행본과 같고, 유명 미술관이 펴내는 도록이라기에는 소박하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는 미국의 ‘국민 화가’로 알려진 모지스 할머니(1860~1961)의 그림 에세이다. 그림 에세이를 표방하는 책은 많다. 2009년 작고한 화가 김점선은 영문학자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나 법륜 스님과 여러 권의 책을 같이 작업했지만, 직접 자신의 글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영국의 비평가 존 버거의 책은 펜이나 연필로 그린 드로잉 작품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미국의 전원 풍경을 주로 담은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들은 사실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지는 않는다. 모지스 할머니의 독특한 이력을 몰랐다면 그저 정겹고 따스한 ‘풍속화’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76세에 그림을 시작해 5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100세에 화가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는 스토리를 알게 되면 괜스레 그림들에 한 번 더 시선이 머문다. 작가의 ‘후광’이라고 해도 좋겠다.

목가적인 기운을 물씬 풍기는 67점의 그림은 거의 대부분 할머니의 집과 마을의 자연, 동네 사람들을 소재로 한다. 봄에는 예쁜 꽃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고, 겨울에는 흰 눈이 소복이 쌓인다. 그렇다. 흠잡을 데 없이 평화로운 마을, 이상화된 고향의 모습이다. 할머니의 그림 속 주민들은 고된 노동이었을 ‘시럽 만들기’나 ‘사과 버터 만들기’, ‘농장에서의 이삿날’도 줄곧 미소를 머금고 수행한다. 폭풍우가 다가오는 그림에서도 사람들은 차분해보인다.

책은 1952년도에 출간된 <Grandma Moses: My Life’s History>를 번역했다. 이때 모지스 할머니의 나이가 아흔두 살. 생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회고했다. 어린 시절부터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만난 최근의 일화를 그림들과 함께 담았다.

할머니는 책을 낸 후로부터 9년을 더 살았고, 그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20세기 중반에 이미 ‘100세 시대’의 모범을 보여줬다고 해야 할까. 평소 “그림을 안 그렸다면 아마 닭을 키웠을 것”이라고 했던 할머니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신이 기뻐하시며 성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나이가 이미 80이라 하더라도요.”

숱한 자기계발 서적들이 나이는 상관하지 말고 꿈을 찾으라고, 그리고 도전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꿈꾸기에는 당장 맞닥뜨린 현실이 버거운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이런 도전의 메시지는 ‘미션 임파서블’처럼 여겨진다. 시골 아낙 모지스 할머니는 반세기 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물론 하루하루 일상에 충실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삶도 꿈을 이루는 것 못지않게 가치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