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kakaocdn.net/dn/b9BIDY/btrMWdRL2oS/8jEqrN28kELZQpJ0XxUfJ0/img.jpg)
작사 : 레지날드 히버(1783-1826). 영국의 목사. 위트터치의 문법학교에서 시작을 배운 그는 42세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을 때까지 인도 캘커타 지역의 국교회 감독을 역임하는 등 여러 곳에서 사역을 담당하였다. 그는 추앙받는 인물이었으나 교만하지 않고 ‘면류관을 주께 빗어드리는’ (2절) 삶을 살았다.
작곡 : 존 바커스 다이크스(1823-1876). 영국의 목사. 작곡가
/이 곡은 부활절 후 여덟 번째 주일인 성삼위 주일을 위해서 지었다. 이 찬송 중에는 1절과 4절의 끝부분에 삼위일체 교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니케아회의(325년)의 명칭을 따서 곡명으로 붙였다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미국에 유학을 가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매일 예배를 드리며 찬송을 부르는데 자기가 아는 찬송을 한 장도 안 부르더라는 거예요. 그가 아는 찬송도 거의 미국 곡인데 말이죠. 하도 궁금해서 룸메이트에게 물어 보았답니다. “이 학교에선 내가 아는 찬송을 왜 한 장도 안 부르지?”라고요. 그랬더니 친구가 되물었답니다. “너희 한국에선 무슨 찬송을 부르는데?”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죠.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울어도 못 하네’ ...” 그랬더니 그는 껄껄대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 사람아, 그 건 찬송(hymn)이 아니고 복음가(gospel song)야.”라고요. 갑자기 헷갈리죠? 우리가 잘 아는 찬송들이 찬송가에 다 들어있는 데 찬송이 아니라니요?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인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이 말한 찬송의 정의를 소개할까합니다. 그는 찬송이란 찬미하는 노래로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인데 그 중 한 가지만 빠져도 찬송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찬미’, ‘노래’, ‘하나님께 드려짐’을 가리켜 흔히 ‘찬송의 3요소’라 일컫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거스틴의 찬송의 3요소 중 첫 번째 요소인 ‘찬미’를 중심으로 예배찬송인 이 찬송과 복음가인 ‘울어도 못 하네’(343장)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울어도 못 하네’의 가사에선 찬미의 내용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혹 나타날까하여 끝까지 불러 봐도, 후렴에 “나를 구원 하실 이 예수 밖에 없네”라든지, “4절에서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로 끝났지, 감사하다든지, 영광을 돌린다든지 하는 찬미의 내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노래는 ‘찬송’(hymn)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찬송을 보세요. 처음부터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 이른 아침 우리 주를 찬송 합니다”하지 않습니까? 찬송, 경배, 감사, 찬미, 영광, 존귀 같은, 드리는 내용이 있어야죠. 즉 찬송가는 예배 적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가는 예배의 내용보다 복음적인 데 비하여) 우선 이 정도 해 놓고 이 찬송에 대하여 살펴보죠.
곡명 NICAEA는 소아시아 비누니아 지방애 있는 지금의 이즈닉의 옛 도시이름인데, 그 곳에서 열렸던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 1차는 325년, 2차는 787년)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니케아신조’(Nicaea Credo)를 채택한 이 공의회에선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는 아리우스주의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동일본질성)란 단어로 표현하고 삼위일체론을 확고히 하였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목만 보고서도 이 찬송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리는 귀한 찬송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찬송은 멜로디를 보나 시로 보나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노래를 시작하면서 음이 계단처럼 한 층, 한 층 올라가죠? ‘도도 미미 솔솔’하면서... 이는 하나님의 존전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올라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데요, 이 역시 음화(音畵, word painting, 115장 참조)로서 음의 상징(tone symbol)이라 볼 수 있습니다. ‘도 미 솔’하며 계속해서 오르면 제일 높은 정점은 어디이겠습니까? 네 째단 첫 소절을 보면 우리 가사에서 ‘성삼위 일체’의 ‘성’자가 제일 높은 음인데, 영어 원문 가사의 ‘God in three Persons’에서 ‘God’에 이르는 것입니다. 위 음 ‘도’의 그 높은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오른 것이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거룩 거룩 거룩’ 하는 처음 시작 부분도 요한 계시록 4장 8절 말씀인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의 영어 성경 본문을 “Lord God Almighty"라고 찬송 시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어 더욱 성경적이어서 은혜롭고요, 이 찬송이 지닌 문학적인 아름다움도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영어찬송을 불러보면 금방 느낄 수 있는데요, 영어찬송 가사에서 4째, 8째, 10째, 12째, 16째 마디 모든 끝 음의 발음이 ‘이’(i)모음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주 단어인 ‘Holy’는 물론이고, ‘Almighty’ ‘Thee’ ‘see’ ‘sea’ ‘seraphim’ ‘Mighty’ ‘Trinity’ ‘be’ ‘purity’등 모두 ‘이’모음으로 끝나죠? 운(韻, rhyme)이 착착 맞아 들어가 시를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각 행의 처음 시작하는 패시지도 마찬가지인데, ‘Holy’ ‘Lord’ ‘All’ ‘Tho''''’ ‘Early’ ‘Only’ ‘God’ ‘Perfect’ 같은 단어로 거의 ‘어’모음으로 되어 있지요. 이런 시적 감흥을 우리말로 옮기기는 절대 불가능하지요.
3절에서 “모든 죄인 눈 어두워 보지 못 하네” 하는 대목은 하나님의 숨결을 쉬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의 이 귀한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쓰신 보좌 위의 주님과 천군천사들과 수많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아름다운 찬송소리도 들리지 않겠죠.
이 찬송 시를 쓴 히버(Reginald Heber, 1783-1826)의 찬송은 273장, 298장, 398장, 그리고 작곡자인 다익스(John Bacchus Dykes,1823-1876)의 찬송은 59장, 81장, 85장, 129장, 140장, 429장, 477장, 508장이 우리 찬송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찬송가 전곡,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장 전능왕 오셔서 (0) | 2022.10.02 |
---|---|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0) | 2022.09.27 |
7장 성부 성자 성령 (0) | 2022.09.04 |
6장 목소리 높여서 (0) | 2022.09.01 |
새찬송가 5장 이 천지간 만물들아 (0) | 2022.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