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설
수난곡(Passion)이란 신약의 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수난에 관한 이야기에 음악을 붙인 것을 말한다. 바흐는 그의 생애중 5곡의 수난곡을 작곡하였다고 하나, 오늘날 마태, 요한수난곡만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1729년 성 토마스교회의 성 금요일 예배에서 처음으로 연주된 [마태 수난곡]은 전체가 78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까지(마태 26:1~56)가 1부, 그 이후(마태 2 6:57~27:66)가 2부로 구성되어진다. 바흐는 위의 성경 말씀과 피칸더(Picander)가 쓴 대본을 사용하여 여기에 레시타티브(Recitative), 아리아(Aria), 코랄(Chorale), 합창(Chorus)의 형식으로 곡을 붙였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복음사가(Evangelist)역은 테너가, 예수역은 베이스가 노래부르고 그외 4명의 독창자와 아동합창등이 고용되며 연주 시간은 약 3시간이다. 바흐는 특히 이 수난곡을 듣는 회중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수난을 몸소 체험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종사하도록 훈계하려는 목적으로 하슬러(Hassler)의 유명한 코랄 [오 상하신 머리]를 사용하였다. 이후로 하슬러의 [오 상하신 머리]는 수난 코랄(Passion Chorale)로 불리운다. 마태 수난곡은 바하의 사후 점차 잊혀지다가 초연 1백년 후인 1829년 멘델스존이 발견하여 연주하므로 이 작품의 위대함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바흐의 사후 4년이 지난 1754년에 공간(公刊)된 바흐의 추도기, 소위 사자 약전(略傳)에 의하면 바하는 수난곡을 5곡 남긴 셈인데, 오늘날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바하의 수난곡은 두 곡밖에 없다. <요한수난곡>과 <마태수난곡>이 그것이다.
바흐는 1723년 5월 말에 라이프찌히의 토마스 칸토르에 취임함으로써 교회 역년의 거의 모든 축일과 주일의 오전 예배를 위해 교회 칸타타를 연주할 의무를 지게 되었는데, 상당히 장기간 칸타타의 연주가 쉬는 일이 1년에 꼭 2회 있었다. 즉, 교회력의 시작인 대림(待臨)절 제1주일부터 크리스마스까지의 소위 대림절 사이와 사순절(四旬節)이라고 일컬어지는 부활절 전의 40일간인데, 바흐는 그것에 더하여 부활제의 2일전인 성금요일에는 니콜라이 교회와 토마스 교회의 어느 쪽의 오후 예배 때 오케스트라 반주가 있는 오라토리오풍 수난곡을 연주하는 직무를 가지게 되었다.
바흐의 현존하는 2곡도 이 직책 때문에 작곡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바하가 어째서 이렇게 대규모의 수난곡을 썼으며, 또한 쓸 수 있었는가도 앞서 말한 것에 의해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는 그럴 만한 생각만 가지면 사순절은 물론 대림절까지도 수난곡의 작곡이나 연주 연습에 돌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수난곡 이외의 예술 음악이 일체 허락되지 않았던 성 금요일이었으므로 보통은 몇 개의 교회에 분산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던 예하의 연주 스텝을 수난곡 연주를 위해 총동원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칸타타가 연주된 오전 예배의 경우와는 달리 오후 예배 때의 음악에는 연주 시간의 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흐가 이들 호조건을 충분히 이용하지 않고서는 생각될 수 없는 것이 현존하는 두 개의 수난곡이다.
수난곡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바흐의 두 개의 수난곡을 볼 때 그 가사가 복음서 구(句)(요한복음 제18-19장, 마태복음 제26-27장), 코랄 가사, 자유 가사라는 3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커다란 특징이다. 이를테면 하인리히 쉬프가 1664-1666년에 쓴 3개의 수난곡은 모두 최초와 최후의 합창을 제외하고 복음 장구만으로 되어 있다. 코랄 가사나 자유 가사가 수난곡의 작곡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말부터 18세기 초엽에 걸쳐서의 일이다. 한편, 헨델이 1716년에 작곡했다고 알려지고 있는 소위 브록케스 수난곡 <세상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여 죽는 예수>는 자유 가사만으로 되어 있다.
복음 장구의 작곡에 대해서 살펴보면 바흐는 의외로 전통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설자 역할의 복음사가의 말을 테너, 예수의 말을 베이스, 예수 이외의 독화자(베드로, 유다 등)의 말을 저마다 알맞은 성역의 독창으로 작곡한 것도 수난곡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볼 수 있었던 전통이다. 복수 인물의 동시적인 발음을 합창으로 작곡하는 것도 이미 15세기 중엽 무렵부터 이루어졌던 일이다. 그래서 바흐의 수난곡에서 복음서 장구에 의거한 부분만을 떼어 내어 보면 쉬츠의 수난곡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음악이 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 싶다.
앞서 말한 것처럼 코랄 가사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말이 된 후의 일이지만, 수난의 이야기의 결정적인 순간에 수난곡의 연주를 중단하고, 회중이 기도를 한다든지 기도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코랄을 노래 부른다는 것은 일찍부터 행해지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바흐의 수난곡에 사용되고 있는 코랄도 대개는 일찍부터 그와 같은 기회에 즐겨 노래 불리고 있던 코랄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코랄 가사가 꼭 바흐에서 볼 수 있는 단순히 코랄로 작곡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코랄 선율도 얼굴을 내놓지 않는 자유로운 독창곡이나 중창곡으로 작곡된 것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유 가사에 의한 아리아가 생겨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러면 코랄 가사나 자유 가사는 수난 이야기의 어느 장면에 삽입되는 것일까. 바흐(와 작사자 두 명)는 이 점에서도 당시의 습관에 따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예를 들면 <요한수난곡>의 제14곡, 카바야의 앞에서 예수가 자기를 때린 부하에 대하여 '만일 내가 무슨 나쁜 말을 했다면 그 이유를 말하시오. 그러나 옳은 말을 했다면 어째서 나를 때리는가'라고 말한 데 대하여 '당신을 때리고 괴롭힌 것은 바로 나이며, 나의 죄입니다' 라고 노래하는 부분이 이 코랄이다. 그리스도가 죽음에 직면하여, 신도가 다가올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마태수난곡>의 제62곡도 코랄의 이용법으로서는 전형적인 것이다.
자유 가사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도 대체로 이런 형태로 삽입되는데, 여기서는 코랄과의 차이를 잘 나타내고 있는 <마태수난곡>의 베드로의 부인(否認) 장면(제38-40곡)을 살펴보자. 전에는 '죽어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라고 큰소리 친 베드로이지만 사람들의 추궁을 받자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말한 뒤 닭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복음사가는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라고 자기가 해설자인 것을 잊어버린 듯이 스스로가 눈물에 젖으면서 이야기한다. 성서에는 베드로가 어떻게 울었는가에 대해서는 쓰여 있지 않으나 브룩케스의 작사로 된 수난사에는 베드로가 자신이 범한 죄가 두려워 떠는 아리아가 포함된다.
그런데 바흐의 경우, 이 뒤에 이어지는 것은 베드로의 죄를 자신의 죄로 하는 신앙 두터운 신도의 아리아'아,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눈물로 보아 불쌍히 여기소서!' 인 것이다. 당연히 연민을 애원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절망적인 회오에 하나의 구원을 주기 위해 등장하는 것이 '당신의 은총과 자비는 끊임없는 나의 죄보다 크다'는 다음의 코랄 제40곡이다. 아리아에서 저마다 눈물에 젖어 있던 신도들은 이제 시원스런 기분으로 예수의 수난에 의해 얻은 하나님과의 화해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바흐의 <요한수난곡>과 <마태수난곡>을 비교하여 전자가 더 극적이라면 후자는 더욱 서정적이라고 하는 일이 많은데, 이유의 하나는 마태복음에 서정적인 요소로서의 코랄, 자유 가사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쓰는데 알맞은 사건이나 기사가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요한은 대뜸 예수의 체포부터 시작하는데, 마태복음은 그전에 책략, 베다니의 도유(塗油), 유다, 최후의 만찬, 올리브 산, 겟세마네에 있어서의 고민 등, 바흐가 실제로 자유 가사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코랄을 충분히 넣어서 작곡한 많은 사건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태수난곡>이 바흐의 교회 음악을 대표하는 명작의 하나임은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다. 1829년 3월 11일에 베를린의 징아카데미가 젊은 멘델스존의 지휘 아래, 바흐가 죽은 뒤 처음으로 이 대작을 연주한 것이 바흐의 부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일반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다.
2. 마태수난곡을 이루는 세가지 층
대지휘자이자 이 수난곡을 여러 차례 지휘한 바 있는 브루노 발터는 이 곡 속에는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구조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 중의 첫번째는 역사적으로 수난사건이 전개되는 현실공간이다. 이는 2천년전의 에루살렘과 그 근교, 또 그때 그 사건에 연루되었던 당사자들이다. 예수와 베드로, 유다, 대제사장, 빌라도와 그 백부장, 병사, 민중 등이 아에 속한다.
이 부분의 텍스트는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제 26~27장의 예수 수난기사로 각자 그 부분을 맡은 배역의 레치타티보나 합창으로 노래된다. 집단의 말은 합창으로 노래되고, 그 외 각 개인의 말은 레치타티보 세모에 의해 노래되며, 예수의 말은 그 뒤를 현악기들이 후광처럼 감싸며 반주된다.
그러나 수난곡의 다른 오라토리오와 마찬가리로 배역들이 무대 위에서의 연기를 안하기 때문에 그들의 언동은 복음사가의 레치타티보 세코에 의해 설명된다. 이 부분의 텍스트 역시 '마태 복음'의 예수 수난기사이다. 하지만 복음사가는 객관적으로 주어진 배역에 충실하기보다는 예수의 수난사건을 설명하면서 슬픔과 분노, 고통 등의 자기 심정을 충분히 담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첫번째 층에 넣기는 곤란하다. 이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첫번째와 두번째 층 사이에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두번째는 이 수난사건에 대한 심리적, 심정적 층이다. 이를 대표하는 것은 피칸더의 자유신앙시 텍스트에 의한 레치타티보 아콤파탸토와 아리아이다. 이는 매 수난사건이 단락지어질 때마다 그 부분의 성구에 대한 회중 개개인의 심정적인 반응으로 예수의 거룩한 말씀이나 고난의 운명에 대한 동정. 또 이사건에 참가한 역사적 인문들의 심정을 음악적으로 주석하는 부분이다. 이 층이 삽입됨으로써 이곡을 듣는 청중들의 성경구절에 대한 이해가 한층 심화된다.
마지막 층은 루터교의 전통적 신앙 해석의 층으로 특이하게도 교회에 모인 회중 전체가 부르도록 설계된 코랄이다. 이 코랄은 바흐가 직접 작곡한 것이 아니라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새롭게 조정(그 내용은 가톨릭의 찬미가나 세속가곡에서 전개된 것도 있고 루터나 그 동료들에 의해 새롭게 작곡된 것도 있다)되어 한 세기 이상이나 게속해서 불려온 역사를 지닌 루터교의 찬미가이다. 이 코랄의 삽입은 표면적으로 보면 아리아와 마찬가지로 수난사건의 중단이지만 현실적 시간을 떠나서 종교적이념을 확고히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른바 수난사건이나 그에 대한 감정의 일렁거림을 모두 속에 묻고 흐르는, 무의식적으로 작품을 구축하는 기둥이요 축인 것이다.
3. 작곡연대
1729년의 성(聖) 금요일에, 라히프찌히의 토마스 교회의 오후 예배에서 연주된 것은 확실하지만,그것이 초연 이었다는 확증은 없다.최근의 연구에 의하면,이미 1727년의 성금요일에 초연되어 있었을 공산이 크다.그렇다고는 하나 그 무렵에는 아직 오늘날의 제 29(35)곡 대신에 단순 코랄이 사용 되고 있었다. 바흐가 오늘날 애호되고 있는 최종고에 도달한 것은 1736년경의 일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4. 마태 수난곡의 레코딩
연주사에서 20세기 전반은 낭만주의 시대이다. 이 시대의 어법이나 특질은 현대와도 맞지 않지만 바흐의 시대에는 더욱 부합되지 않는다. '마태 수난곡' 전곡 녹음은 그 방대한 악곡의 길이나 내용의 난해함에 비하면 의외로 많은 편이다. 그리고 다소 생략이 있기는 했지만 놀라운 만큼 이른시기에 전체가 녹음되지 시작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 이미 4종류의 전집 녹음이 나왔을 정도이다. 이 중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실황녹음인 멩겔베르크의 것을 제외한 3종은 일찌감치 SP로 출판됐다
<1> 빌렘 멩겔베르크 - 일본에서의 인기가 우리나라까지 그대로 전해진 멩겔베르크의 '마태수난곡' 녹음은 제 2차 세계대전에 발발하기 직전이 1399년 종려주일(4월2일)의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연주회 실황 녹음이다. 그러나 이 연주의 낭만적 도착증세는 바이스 바흐의 녹음과는 비교되 되지 않을 특급중의 특급이다.
거창하게 벌여좋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시간의 트랙을 마음대로 왔다갔다하며 엄청난 신파악극을 벌여놓는다. 전전최고의 복음사가라는 칼 에르프를 위시한 독창자 전원이 자의적인 리타르단도와 페르마타의 무제한 사용 권리를 하느님께 부여받은 듯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남용하고 있다. 이 연주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고, 그들 중 몇몇은 진실로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의심치 않지만, 그들이 받음 감동의 배후에는 바흐보다는 멩겔베르크가 있는 듯 싶다.
빌렘 멩겔베르크(cond)/에르프(Evang), 라벨리(Jesus), 빈센트(S),두리고(a), 반 툴더(t), 샤이(b)/ 암스테르담 톤쿤스트 합창단, 창글루스트 소년합창단/암스테르담 콘스트 헤보 오케스트라(1939) Phlilps 416206-2(3)
<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 그의 생애 마지막 해인 1954년 성주간에 빈에서 연주한 '마태 수난곡'실황녹음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모든 낭만주의 지휘자들 가운데 가장 주정적이고 도취적이라는 푸르트벵글러의 연주가 당대 거장들의 연주 중에서는 가장 자의성이 적고 주관과 객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연주 속에 깃든 깊은 슬픔과 고통의 표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푸르트뱅글러가 이 수난곡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생의 막바지에 이른 대 지휘자의 마지막 음악적 열정을 간직한 귀중한 녹음으로 반드시 한번 들어볼만 한다. 왜냐하면 적어도 전체를 일관하는 통일된 시각이나 음악적 깊이가 이 정도에 이르면 시대적 양식의 문제는 어느 정도 제쳐놓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빌헴름 푸르트벵글러(cond)/데르모타(Evang & t),피셔 디스카우(Jesus), 그륌며(s), 회프겐(a), 에델만(b),/ 빈 소년합창단. 빈 징페라인/빈 필하모닉(1945) Movimento Musica 051-005(3)
<3> 칼 리히터 - 리히터의 첫 녹음인 1958년의 녹음은 원전악기에 의한 원전연주만을 들어온 새로운 애호가들에게는 편성이 너무 크고 어둡고 무거운 정서를 지닌. 지나치게 준엄하고 강직한 연주로 인식될지도 모르겠으나 완벽한 구성미와 섬세하고 치밀한 표현력 또 이상적인 배역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마태수난곡'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연주의 가장 뛰어난 점은 형식미와 균형감을 극도로 추구하는 최상급의 원전연주들이 흔히 놓쳐버리기 쉬운 인간적인 정열과 깊은 슬픔, 어두운 고뇌가 잘 이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리히터의 텍스트를 읽는 명철한 지혜와 깊은 인간적 의지, 풍부한 감성이 최상급의 연주력과 어우려져 감동적인 수난사를 만들어낸 걸작 중의 걸작이다.
칼 리히터(cond)/해플리거(Evang & t),엥엔(Jesus), 제프리트(s),퇴퍼(a),피셔 디스카우(b)/뮌헨 바흐합창단/뮌헨 바흐 오케스트라(1958) Archiv 439338-2(3)
<4> 헬무트 릴링 - 1994년 녹음한 것으로 현재까지 발매된 현대 악기에 의한 전통적 바흐 해석 녹음으로는 가장 최근의 것이다. 릴링의 해석은 선배들의 연주에 비해 지극히 현대적이면서도 현대 연주의 약점인 기계적 형식적인 무취미함을 극복하고 풍부한 인간미와 색채감, 또 확고한 균형미를 지니고 있다. 장대한 합창에서 템포를 약간 빨리 가져가고 명확한 프레이징으로 리듬을 강조한 반면, 솔로 아리아나 그 앞의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에서는 템포를 자유롭게 유동시켜 깊은 감정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길고 난해한 이곡에 명료하면서도 독특한 음악적 흐름을 이식했다.
헬무트 릴링[2]cond)/샤데(Evang & t),괴르네(Jesus),욀체(s),단츠(a), 콰스토프(b)/슈투트가르트게칭어칸토라이/슈투트가르트바흐콜레기움 (1994) Hanssler CD 98.925(3)
<5> 필립 헤르베게 - 아르농쿠르가 새 시대로 들어가는 길만을 제시 했다면 그로부터 14년 후에 헤레베게 녹음은 새로운 연주상을 확고하게 제시한 대단히 성공적인 연주이다. 그는 아마추어 수준에 머무른 아르농쿠르의 합창과 기악 수준을 비웃듯이 대번에 최고의 수준을 보여줬다. 분명한 프레이징과 명확한 리듬감으로 명료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수난사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식적으로는 아르농쿠르보다 일보 후퇴하여 독창 그룹을 두 개로 나누지 않았으며, 독창자로 보이 소프라노 대신 여성 소프라노를 사용했고, 소프라노 합차우도 소년대신 여성 합창단은 기용했다. 이런 편성은 바흐 시대 스타일로부터는 다소 멀어진다 하더라도 풍부하고 자연스런 음향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유리하다.
필립 헤레베게(cond)/크룩(Evang),콜트(Jesus),슐리크(s),아콥스(a), 블로흐비츠(t), 코이(b)/샤펠 루아얄보컬앙상블, 콜레기움보컬레 헌트/샤펠 루아얄 오케스트라 (1984) HMF HMC 901155/57
<6> 귄터 라민, Leipzig gewandhaus orchastra, 1941
CALIG, CAL 50859/60
감정표현을 엄격하게 배제했음.
<7> 오토 클렘페러, Philharmonia orchestra, 1962
EMI, CMS 7-63058 2
<8>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Wien Concentus Musicus, 1970
Teldec, 2292-42059-2
<9> 카라얀, Berliner philharmoniker, 1973
DG 419 789-2
<10> 스퍼링, Das neue orchestra, 1992
OPUS 111, OPS 30-72/73
멘델스존의 편곡을 따르고 있음.
<11> 존 엘리엇 가디너, English Baroque soloist, 1989
Archiv, 427.648-2
특유의 빠른 템포와 현대의 스피디함이 느껴짐.
<12>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1990
빠르게 일관되면서 경건하고 숭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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