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큐티

시편 49편

헤븐드림 2022. 1. 7. 02:54

제 49 편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뭇 백성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모두 귀를 기울이라

2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3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

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5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는

7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8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9 그가 영원히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인가

10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11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13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들의 길이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는 자들의 종말이로다 (셀라)

14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15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 (셀라)

16 사람이 치부하여 그의 집의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7 그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18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19 그들은 그들의 역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49편 강해 :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음

[1-4절]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피부색과 국적과 언어의 구별 없이, 사회적 신분, 지식 수준, 경제적 여유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곧 지혜와 명철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와 ‘오묘한 말’이라고도 표현한다. 성경말씀은 심오하며 때때로 금방 잘 깨달아지지 않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때 깨달아진다. 그러나 그 말씀은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말씀이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을 수 있고(롬 10:17), 그래야 온전한 자가 되며(딤후 3:16-17)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시 1:2-3; 계 1:3).

[5-9절]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救贖)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贖錢)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救贖)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이라는 원어는 “나를 속이는 자들의 악이 나를 둘러싸는”이라는 뜻이다. 원수들은 그를 속이고 해치고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는 그들의 핍박과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구속(救贖) 즉 구원은 재물을 가지고 되지 않는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救贖)하지 못하며 그를 위해 하나님께 속전(贖錢)도 바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여 영영히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돈으로 다른 이를 죽지 않게 하지 못한다.

사람의 육체의 생명도 고귀하여 천하를 얻어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지만(마 16:26), 영생은 더욱 그러하다. 주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1만 달란트 빚 탕감으로 비유하셨다(마 18:24). 그것은 우리가 결코 갚을 수 없는 금액이다. 구원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만 가능하다(벧전 1:18-19).

[10-12절] 저가 보리로다.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田地)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사람은 지혜 있는 자나 우준하고 무지한 자나 모두다 죽으며 그의 재물이 다른 이에게 가는 것을 볼 것이다. 사람은 실로 죽는 존재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 하는 자도 그렇지 못한 자도 결국 죽으며, 그가 죽으면 그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자식이나 가족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속으로 자기 집이 영원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고 생각하며 그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불러 ‘아무개의 땅’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그러나 이것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은 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이다.

사람이 존귀한 자이지만 죽고만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이 죽는 자일 뿐이라면 참 허무하다(전 12:7-8).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참된 가치와 소망은 이 땅의 것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영원한 생명 곧 영생에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죽을병에 걸렸을 때 시편 39:7에서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였다.

[13-15절]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후세 사람은 오히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셀라). 양같이 저희를 음부[무덤]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저희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 저희 아름다움이 음부[무덤]에서 소멸하여 그 거처조차 없어지려니와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무덤]의 권세에서 구속(救贖)하시리로다(셀라).

‘저희의 이 행위’는 그들의 집과 땅을 영원히 자기 소유로 생각하며 사는 자들의 행위를 가리킨다. 그들의 이 행위는 그들의 우매함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죽으면 그들의 소유가 그들의 것이 되지 못하고 남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오히려 그들의 말을 칭찬할 것이다. ‘후세 사람’이라는 원어(아카레헴)는 ‘그들의 후손들’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후손들도 우매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마치 양들이 양우리에 모이듯이, 모든 사람은 양같이 무덤에 두기로 작정되었다. ‘음부’(쉐올 לוֹ는 무덤을 가리킨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다(히 9:27). 목자가 양을 치듯이, 사망은 모든 사람을 지배한다.

시편 저자는 돌연히 “정직한 자가 아침에 저희를 다스리리니”라고 말한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새 세계에서 악인들을 통치할 것이라고 말한다. 성도들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을 것이며(계 2:26)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계 20:4). 그러나 악인들은 죽을 때 세상에서 누리던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그 거처들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참된 구원자이시며 자기 백성을 영접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무덤과 지옥 권세에서 구속(救贖)하실 것이다. 성도는 죽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의 나라인 천국으로 인도될 것이다.

[16-20절] 사람이 치부(致富)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이는]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세상 사람이 부자가 되고 집이 크고 아름답고 사치할 때에 성도는 마음이 위축되고 두려운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성도는 악인들의 세상적, 물질적 부귀영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부자는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덤에 묻히는 시체는 수의 한 벌과 관 한 개면 족하다. 그는 그의 땅과 집, 금은보석과 돈을 가져갈 수 없다. 그것을 무덤 속에 넣어준다 할지라도, 그는 그것을 사용하거나 누리지 못한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스스로를 축하하며 남들의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는 결국 열조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죽은 영혼은 천국이나 지옥에서 모일 것이다. 무덤에 묻힌 몸이 햇빛을 보지 못하듯이, 영광의 부활에 참여치 못하는 자들은 다시는 밝은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지으셨지만, 사람이 하나님과 그의 계명과 자신의 죄악됨과 세상의 헛됨을 깨닫지 못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참된 지식과 깨달음이 중요하다.

시편 49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사람의 생명의 구속(救贖)은 심히 값진 것이다. 그것은 은이나 금으로 살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핏값으로만 가능하다.

둘째로, 사람은 존귀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12, 20절). 깨달음 없는 사람은 헛된 우상을 섬기며 돈을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며 또 남들에게 짐승보다 더 악한 일을 행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실 자들을 무덤과 지옥에서 구원하여 천국으로 영접하신다.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화이다. 그것을 주실 자는 하나님뿐이시다.

 

묵상

 

오늘의 시편 말씀은 내용이 인생의 허무함과 구원받은 사람들이 누릴 영화이기에 자못 진지한 마음이 든다.

그 까닭은 자칫하면 현재의 삶에 안착하여 믿음을 갖지 못하여 사단의 계략에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현재 내가 고난을 받는다해도, 또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해도 그것은 구원과는 별개의 삶이다.

단지 그것으로 시험에 들거나 비탄에 빠져 절망하거나 교만하거나 자긍하거나 더러 미련한 생각으로 삶의 시간들을 낭비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고라 자손의 시편 기자의 시를 묵상함이 귀하다.  어찌 영원에 이르는 것이 이 땅에 존재하겠는가 말이다.

오직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나의 주님이시니 그 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 받은 삶의 가치를 깨달아 영광의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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