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대의 예언자 미가는 썩어져가는 조국을 바라보며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라고 사회정의를 부르짖었다. 우리교회 젊은이들이 7월 1일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떠났다.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간데마다 박해를 받고 순교의 피를 흘렸다. 지금 이 땅에는 도처에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그중 가장 악랄한 데가 북한 땅이다.
100여 년 전 토마스 선교사의 피로 세운 북한 교회가 제 구실을 못하고 타락해 갈 때 길선주 목사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버리실까 두렵다’고 예언했다고 그의 아들 길진경 목사는 증언했다. 우리가 사는 오늘 대한민국은 미가가 예언하던 시대와 다를 게 없다. 불벼락이 내리기 전에 교회마다 이기주의를 회개하고 복음을 선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자료는 한국선교연구원의 기관지【파발마】(2009.10월호)에 실린 “알려지지 않은 현대 그리스도교 순교자 이야기”와 그 밖의 다른 인터넷 자료들을 첨삭 수정하여 꾸민 것이다.
1. 순교에 침묵하는 서방교회
서구 언론은 현대 그리스도교 순교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침묵을 지킨다. 세속적인 서구세계는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을 외면해 왔다. 서구의 일반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상 그리스도를 위해 죽은 7천만 명 중 4,550만 명이 20세기에 순교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이렇게 큰 희생을 치렀다. 성공회 신자였던 16세의 만체 마세몰라(Manche Masemola)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1928년 그의 부모에 의해 살해되었다. 장로교 전도사 에스더 존(Esther John)은 1960년 파키스탄에서 무슬림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되었다. 중국 교회 지도자 왕지밍(王志明, 1907-1973)은 1972년 문화혁명 와중에 중국에서 살해되었다. 우간다의 자나니 루움(Janani Luwum)은 성공회 대주교라는 이유만으로 지난 1977년 이디 아민(Idi Amin)의 철권통치 시절 순교하였다. 이 이야기들은 순교 상황이 알려진 경우들이며, 지난 100년간 일어난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교 박해의 실제 경우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신앙과이성연구소의 로열 소장은 21 세기에 발생한 순교 사건 중 수백만 건이 공산주의 치하에서 자행되었다고 말한다. 중국에서는 약 5천만 명 정도 그리고 소련에서는 약 2천 5백만 명의 목숨이 희생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열 소장은 희생자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사망자 모두가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지만, 두 나라에서 20세기 그리스도교 희생자의 대다수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소련의 반체제 인사 블라디미르 부코프스키의 표현대로 공산주의 정권은 중세 종교재판소들이 몇 세기에 걸쳐 죽인 규모의 사람들을 단 하루 만에 죽이는 일을 자행했다.
핍박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원하는 국제단체 오픈도어즈(Open Doors) 선교회의 설립자인 앤드류 형제는 그의 저서 “소명(The Calling)”에서, 많은 무슬림 단체들이 보이고 있는 헌신과 결단 그리고 능력에 비해, 서구 교회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에 있으며, 서구 교회가 이러한 상황에 있는 동안 이슬람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의 위치를 계속 유지할 것인데 그 주된 이유는 그들의 강함이 아니라 우리(서구교회)의 약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구 교회는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더 많이 지원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경제적 지원과 기도 후원뿐만 아니라,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와 상황에 대한 인식의 확산과 그들의 인권을 위한 싸움에 동참하는 것이 동반되어야 한다.
2. 북한의 그리스도인
북한이 세계에서 그리스도교를 가장 박해하는 국가로 9년 연속 선정됐다. 27개국 지부에서 박해받는 지역에 조사관을 파견, 자료를 수집하여 매년 그리스도교 박해국가 순위를 발표하는 국제 오픈도어선교회는 1월 1일에 ‘2011년도 그리스도교 박해국가 순위’를 발표했다. 또 “북한 그리스도인은 4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조사한 바로는 이중 5만∼7만 명이 강제수용소에서 고통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론 보이드 맥밀란 오픈도어 리서치 전략 담당 대표는 “북한 그리스도들은 그들의 믿음을 감춰야 하고 부모조차 자녀들에게 신앙을 숨겨야 하는 처지다. 작년만 해도 수백 명의 그리스도인이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처형당했다”고 말했다.
북한에 이어 2위부터 9위까지는 이란을 비롯하여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소말리아, 몰디브, 예멘, 이라크, 우즈베키스탄 등 모두 이슬람 국가이다. 10위인 라오스는 공산주의 정부에 의한 그리스도인 박해가 심하다는 평가다.
국제오픈도어선교회에 따르면, 현재 약 1억 명의 그리스도인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 50년간 북한에서는 30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난 세기 후반에 일어난 인종 학살과 인종 갈등도 그리스도인들의 피해를 가중시켰다.
수단 다르푸(Darfur)의 상황에 대한 많은 보고서에는 카르툼(Khartoum, 수단의 수도, 역주)에 있는 정부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에 가해진 폭력이 누락되었다. 많은 구호 기관들은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강간, 고문을 당하였고 노예가 되거나 산채로 불태워지는 등의 일들이 만연했다고 보고했다. 국제 그리스도인 연대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약 2만 5천 명의 그리스도인 어린이들이 노예로 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이슬람 지역의 기독교 핍박
이란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이란의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취임 후 6개월 동안 ‘이란에서 그리스도교 성장을 종식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국제 종교자유위원회의 보고서는 이란의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학대, 체포, 감시와 감금 등의 상황에 처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란 혁명수호위원회의 지도자인 아야톨라 아흐마드 잔나티(A. A. Jannati)는 무슬림이 아닌 사람을 ‘사악한 동물’이라고 공개적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난 2003년 이후 이라크의 앗시리안그리스도교와 칼데니안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으로 88명의 신자들을 잃었다. 이라크의 수십 개의 교회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폭탄 테러 공격을 당하였고, 얼마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수니파 무슬림, 시아파 무슬림 그리고 쿠르드(Kurd)인들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미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라크를 떠나 원치 않는 피난을 떠났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을 미워하는 것이 무슬림의 종교적인 의무’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슬람으로부터의 변절은 곧 사형선고를 의미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교육부에서 만든 초등학생과 중등학생을 위한 교과서에는 그리스도인, 유대교인, 그리고 와하비주의(Wahhabism)를 믿지 않는 무슬림들을「악마」로 취급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학대, 감시, 체포, 그리고 고문들은 이 글에 포함시킬 수 없을 만큼 많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마을 공동우물을 사용할 수 없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신체적 폭력의 대상이 되며, 그들의 소유물도 파괴의 목표물이 되고 있다.
터키의 그리스도인들은 공무원이 될 수 없으며, 군인이 될 수도 없다. 터키에서 교회를 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도의 상황은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의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한 폭력사건이 2008년에만 200건 이상 발생했다고 한다. 이들 사건 중에는 그리스도인 여성을 상대로 한 집단강간, 선교사와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 수녀들을 상대로 한 성폭행, 교회와 수도원 약탈, 묘지의 훼손과 성경책을 태우는 사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했던 무시무시한 살인사건 중 하나로 지난 1999년 두 아들과 함께 차 안에서 자고 있던 58세의 그래함 스타인스 호주 선교사를 극단주의자 무리들이 차에 기름을 붓고 방화하여 몰살했다. 스타인스 선교사와 그의 10살 난 아들 필립과 7살 난 아들 티모시는 차 뒷좌석에 웅크린 채 몸의 형체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타버린 상태로 발견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장에서 폭탄이 터지는 사건이 있었으며, 국제단체들은 2000년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일으킨 134건의 교회 폭파, 교회 모독, 그리스도인들 불법 감금과 같은 폭력 사건 사례들의 목록을 갖고 있다.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는 국제단체 ‘순교자의 소리’는 1996년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8,000명이 죽고 600여 개의 교회가 파괴된 사건들에 대한 책임이 극단주의자들에게 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 중에 하나이다. 지난 2004년 한 탈북자가 미국 국제 종교 자유 위원회에 나와서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 세대 2~3대까지 숙청을 당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북한에 있는 여성 교도소에 7년 동안 수감되었던 이순옥씨는 교도소의 간수들이 그리스도교를 포기하기를 거부한 이들에게 뜨거운 쇳물을 부어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4. 중국교회의 형편
중국 정부는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소수 종교인들을 감금하고 억압해왔다. 중국에서 국가가 인정한 교회 외에 다른 곳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적발되면 체포를 당한다.
조셉 쿵은 2002년 3월 미국의회 실행 위원회에 나와 지난 1999년 이래 중국 정부가 동부의 한 성(省)에서만 약 1,200개의 교회를 파괴했다고 발언했다. 쿵은, 중국에는 교회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공공 교회가 없다고 주장했다. 예배, 기도회, 그리고 임종을 맞이한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고 이를 어길 때에는 당국에 반항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개별 집회들을 허가 받지 않은 불법 집회로 규정하여 터무니없이 높은 벌금과 인도자의 구류, 자택 감금, 구치, 강제 노동, 심하게는 사형으로 다스리고 있다고 쿵은 덧붙였다.
중국에서는 이와 같은 사건에 관련한 증거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명의 성직자, 신학생, 평신도들이 신앙 때문에 감금되거나 죽임을 당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전세계에 있는 독재 정권하의 수백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정권의 골칫거리라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으며, 이러한 수많은 죽음들이 단지 신앙의 이름으로 정권에 저항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종종 선교사들, 평신도들이 정권에 불편한 존재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데, 이러한 죽음의 많은 경우가 강도와 같은 범죄 사건들로 처리되기도 한다.
5. 아프리카의 상황
이집트에는 단지 종교를 바꾼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이 빈번하게 체포, 고문, 감금을 당해 왔다.
그 예로 지난 2005년 초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가세르 모함메드 마흐무드는 예수를 부인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발톱이 뽑히고, 물속에 넣어지고, 폭행을 당하고, 채찍에 맞았고 또 정신 병동에 수용되었다. 다행히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마흐무드는 석방되어 현재 은신 중에 있다. 지난 2004년 이후 나이지리아 북쪽 12개의 주에서 이슬람법이 도입된 이후, 그리스도인과 무슬림간의 충돌로 인하여 양측에서 약 만2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의 적도(赤道)기니에서는 자원 봉사 선교 활동을 하던 남미 출신의 22세 안나 토랄바는 2003년 7월 버스에 타고 가던 중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세계의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벌이는 국제단체 프리덤 하우스에서 종교자유 문제를 담당하는 니나 쉐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핍박을 당하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재고 있는 종교 단체는 그리스도교라고 밝혔다.
니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신앙 활동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가고, 강간을 당하고, 감옥에 수감되고, 살해를 당하며 심지어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는 등, 가장 잔혹한 인권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음주의자들이 이러한 핍박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고 니나는 덧붙였다.
니나는 그리스도교 박해가 전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주요 이유로 공산주의의 부활, 이슬람의 종교적 편협성, 그리고 민족주의의 재(再)부상과 함께 국제 사회의 지속적인 무관심이라고 밝혔다.
프리덤하우스의 국제 관계 위원회 회의에서 니나는, 종교의 자유는 자유 사회의 핵심적 가치이며, 사상과 양심과 종교의 자유는 다른 모든 인간의 권리들이 실행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종교의 자유가 부인되는 곳에는 기본적인 인권도 존재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순교자의 이야기는 그리스도교 복음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초대교회 시대 신앙을 지키고자 죽음을 불사한 증인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옛로마인들을 감동시켜 개종에 이르도록 했다. 오늘날에도 순교자의 이야기는 밝혀지고 널리 전해야 한다.
서구 그리스도인들의 기나긴 무관심의 잠에서 깨어나게 할 유일한 방법은 아마도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그리스도를 위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현대 순교자들의 이야기들을 세계 언론들이 사상 유래 없이 크게 보도하는 일일 것이다.
6. 동남아의 그리스도인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메트로장막교회의 관리인 케빈 앙은 요즘 행동이 조심스럽다. 그는 왼편에 늘어선 상점들을 살펴본 후 오른편의 광장 쪽을 보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를 확인한 후에야 열쇠를 꺼내 교회 문을 열고 교회로 들어선다.
교회 안의 벽에는 아직도 화재가 남긴 그을음이 여기저기 묻어있고 탄 냄새가 가득하다. 메트로 장막교회는 지난 2010년 1월 말레이시아의 성난 무슬림들에 의해 불탄 11개의 교회 중에 첫 번째로 피해를 받은 교회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교회들이 공격당한 것은 ‘알라(Allah)’라는 한 단어로부터 시작됐다.
말레이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슬림들처럼 그들의 신을 ‘알라’라고 불러 왔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의 이름을 대체할 특정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슬림들은 ‘알라’라는 이름은 자신들만 쓸 수 있다고 주장했고,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신을 부를 때 똑같은 단어를 계속 사용하면 경건한 무슬림들이 미혹될 것이라며 못 쓰게 했다.
그리하여 ‘알라’라는 단어는 3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금지되었고, ‘알라’라는 단어를 사용한 그리스도교 성경들은 정부에 의해 몰수되었다. 그러나 2009년 12월 31일, 말레이시아의 고등법원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도 ‘알라’라고 부를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무슬림 종교 지도자들은 강력히 저항했고, 불만을 품은 무슬림들은 교회에 화염병을 던졌다. 설상가상으로 말레이시아의 나집 라자크 총리는 특정 사항에 대해 저항하는 시민들을 막을 수 없다는 무슬림들의 폭력적 시위를 방관 또는 조장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실제로 일부 무슬림들은 나집 총리의 발언을 폭력적인 행동을 해도 좋다는 의미로 받아 들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불탔고,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두 곳의 이슬람 사원에 무슬림들이 혐오하는 돼지의 목이 던져졌다.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 중에 60%는 무슬림이며 그리스도인은 9%, 힌두교와 불교, 시크교와 같은 기타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말레이시아의 종교인들은 지금까지 이런 상황에서 그럭저럭 평화와 공존을 유지해왔다.
‘알라’라는 하나의 단어에 의해 혼란과 갈등은 시작되었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이 관련되어 있었다. 말레이시아에 존재하는 소수 그리스도인들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한 것이다. 집권 세력인 전국말레이연합은 강경파 무슬림들의 지지를 잃자 친(親)무슬림 정책들로 잃어버린 민심을 되찾으려 했다. 이러한 정책은 무슬림들의 환영을 받았다. 말레이시아의 일부 주에서는 이슬람 종교법「샤리아」가 아주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한때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던 말레이시아는 다시 종교의 자유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사회의 질서도 이전보다 더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맥주를 마신 무슬림 여성에게 6대의 태형이 선고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이 적용되어 밝은 색깔의 립스틱을 바르고 짙은 화장을 하거나 하이힐을 신는 것이 금지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다른 무슬림 국가들에서도 종교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영향을 받았다. 이슬람 과격단체인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통제하고 있으며, 나이지리아와 필리핀에서는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정부군과 대립하고 있다.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예멘의 넓은 지역은 무슬림 단체의 통제 아래 넘어갔다.
그리고 무슬림들이 세력을 잡지 아니한 지역에서는 세속 집권 정당들이 무슬림 정당들을 이겨내기 위해 힘든 싸움을 펼치고 있다. 이집트, 알제리, 수단이 이러한 형편이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비슷한 실정이다.
전세계적으로 그리스도인은 22억 명에 달한다. 그리스도교 단체인 오픈도어스선교회는 전세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1 억 명이 종교적 이유로 위협을 받거나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1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설립하거나 성경을 구입하고, 직업을 얻는 것 등이 금지되어 있다. 이것 말고도 다른 형태의 차별도 더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1억 명의 그리스도인의 대다수가 이러한 여러 가지 차별을 받고 있다. 협박, 갈취, 추방, 유괴, 그리고 살해와 같은 더 잔인한 형태의 박해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해지고 있다.
독일 루터교의 수장이었던 마고트 카스만 주교는, 그리스도인들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박해당하는 종교집단이라고 말했다. 독일 22개의 지역 교회들은 2010년 2월 28일을「박해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주일」로 선포했다. 카스만 주교는 이러한 행사를 통해 종교의 자유가 없는 인도네시아, 인도, 이라크, 터키와 같은 국가에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독일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연대감을 보여주기 원한다고 밝혔다.
7. 터키의 그리스도인들
터키 국민들 대부분은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그리스인, 천주교인, 개신교인들이 국가에 대해 어떤 음모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이슬람교에서 그렇게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인들은 이들을 배신자, 이교도, 스파이 그리고 터키를 모독하는 사람들로 여기고 박해한다.
미국의 한 연구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46%의 터키인들이 그리스도교를 폭력적인 종교로 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의 다른 조사에 의하면, 42%의 터키인들이 그리스도인을 자신들의 이웃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과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2007년에는 3명의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동부 도시 말라트야에서 살해당했다. 가해자들은 과도한 애국주의와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이슬람주의를 가지고 있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었다. 일반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에서 개종한 이들이다. 이들은 배교 혹은 이슬람 신앙을 부인한 자들로 낙인 찍혀, 이슬람법에 의해 죽음의 형벌을 받을 위험이 있다. 실제로 이란, 예멘,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모리타니아 파키스탄,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종자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있다.
세속적인 국가인 이집트 정부도 개종자들을 증오하고 있다. 이집트의 종교장관은 개종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법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신앙을 부인하는 것은 심각한 반역에 해당하므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개종자에 대한 사형 처벌의 법적 정당성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이슬람에서 콥트정교회로 개종한 27세의 이집트인 모함메드 헤가지는 2년간 숨어 지냈야 했다. 그는 정부가 발급하는 신분증 상의 종교를 공식적으로 변경하려 시도한 최초의 개종자였다. 그의 이러한 청원이 거절당하자 그는 이를 공론화시켰는데, 이로 인해 많은 이슬람 성직자들이 그의 죽음을 촉구하였다.
콥트정교회 신도들은 아랍 지역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교 공동체이며, 약 8백만 명의 이집트인들이 콥트교회에 속해있다. 콥트 그리스도인들은 정부의 고위직, 외교직, 그리고 군대에 종사할 수 없고, 국가의 여러 혜택도 받지 못한다. 이집트의 대학들은 콥트 그리스도인이 이집트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실제 비율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입학 할당으로 콥트 그리스도인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집트에서 콥트교회들은 새 교회 건물을 지을 수 없으며, 오래된 건물을 보수할 수도 없다. 콥트교회 소녀들은 납치되어 강제로 개종을 당하고 있지만 경찰은 개입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돼지 독감을 통제한다는 핑계로 콥트 그리스도인들이 기르는 수천 마리의 돼지들을 강제로 살처분 했다.
콥트 그리스도교의 성탄절 이브인 지난 2010년 1월 6일 ‘왕의 계곡’으로 유명한 지역에서 80킬로 떨어진 작은 도시 나그 함마디에서 6명의 콥트 그리스도인들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집트 하원 의회의 의장은 이 사건이 무슬림 소녀를 강간한 콥트 그리스도인에 대한 보복성의 개인적인 범죄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이집트 정부도 이 사건을 단순한 범죄 사건이며, 종교적 문제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종교간에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이집트 정부는 항상 토지를 둘러싼 다툼이나 개인적인 원한 관계와 같은 비(非)종교적인 범죄 동기들을 찾으려 했다.
사건이 발생한 나그 함마디는 나일강변에 위치한 약 3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사막의 작은 무역도시다. 이번 살인 사건이 있기 전에도 이곳의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 두 종교 공동체의 신도들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인근에 거주하지만, 서로 섞이지 않고 따로따로 살고, 따로 결혼하고, 따로 장례식을 치른다. 이 지역 무슬림들 사이에는 콥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그리스도교 바이러스에 걸린다는 믿음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도시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살인 사건 후에 심각한 종교적 폭동이 일어났던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폭동으로 나그 함마디에 있는 그리스도인 소유의 상점들과 무슬림들의 주택들이 불에 탔고 28명의 그리스도인들과 14명의 무슬림들이 체포되었다.
나그 함마디는 지금 총으로 무장한 검은 군복의 군인들이 거리와 도시 안팎을 지키고 있고, 외부로부터 봉쇄되어 있다. 군인들은 어느 누구도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기자들의 도시 유입도 막고 있다.
그리스도인을 살해한 3명의 유력한 용의자들이 체포되었는데, 이들 모두는 범죄 경력이 있는 이들이었고, 이 중 한 명은 정보부의 강요에 의해 범죄를 자백했다고 주장하며 범죄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다. 이집트 정부는 이 사건이 최대한 빨리 잊혀지기를 원하는 것 같다. 이 사건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면 용의자들도 아마 풀려날 것이다.
8. 제암리교회 순교자들
1880년대 후반에 이 땅에 들어온 개신교는 한국민족주의의 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개항 이후였기 때문에 1백년 먼저 들어온 천주교처럼 격렬한 탄압에 직면하지는 않았지만 토착민족주의 세력은 개신교에 여전히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전파한 서구식 제도와 민주주의 사상은 근대 민족주의가 싹트고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선교사들이 설립한 교회와 학교를 통해 많은 민족지도자들이 배출되었으며, 자유와 평등, 자주 사상이 대중에게 널리 전파돼 갔다.
1919년의 3·1운동은 개신교가 한국민족주의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개신교는 천도교-불교와 함께 3·1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독립만세시위중 상당부분이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그만큼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한 피해도 많았는데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경기도 화성군의 제암리교회다.
일제 경찰은 1919년 4월 15일 오후 제암리교회에 신자들을 모이게 한 후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고 교회에 불을 지른 후 빠져 나오려는 사람을 무차별 총격하여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3월 31일과 4월 5일 발안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제암리교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었다.
1905년 8월 제암리 이장이었던 안종후의 주도로 설립된 제암리교회는 동족(同族)부락이라는 특성 때문에 유난히 강한 단결력을 지녔는데 3·1운동 때도 이 같은 성격은 그대로 나타났다. 일제 경찰은 제암리의 가옥 30여 채를 모두 불태우고 5백 미터 떨어져 있는 고주리에서 천도교 신자 6명을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워버렸다. 이 같은 만행으로 이 날 제암리 일대에서는 사람과 가옥, 가축, 의류, 곡식 등이 타는 냄새와 연기가 10여㎞ 밖까지 퍼져나갔다고 전한다.
제암리교회 학살사건이 일어난 후 신자나 일반인들은 일제의 감시 때문에 사건 현장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희생자들의 시신은 사건을 전해들은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박사가 이틀 뒤 불탄 교회에서 유골을 수습하여 인근 공동묘지 입구에 묻을 때까지 방치됐다.
제암리교회는 그 해 7월 자리를 옮겨 다시 건립됐고, 1938년 현재의 위치에 기와집 예배당을 세웠지만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은 광복 후까지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 사건현장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된「3·1운동 순국기념탑」이 세워졌고, 1970년 9월에는 일본의 그리스도인과 사회단체들이 속죄의 뜻을 담아 보내온 1천만 엔(1억 3천만원)의 성금으로 새 교회와 유족회관이 건립됐다. 또 1982년 9월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실시돼 교회 옆에 마련된 묘소에 안장됐으며, 다음 해 7월 기념관과 새 기념탑이 세워졌다.
현재 제암리교회는 국내의 개신교 성도들은 물론, 일본인 3천여 명을 비롯해 매년 약 4만 여명이 찾는 손꼽히는 순례 장소가 됐다.
9. 정읍 두암교회 23인 순교자
전북정읍시 소성면애당리 두암마을에 위치한 두암교회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빚어낸 참혹한 순교 현장으로서 23명의 순교자 합장묘와 기념탑이 순례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있다.
이곳은 해방과 함께 정읍 천원교회의 지원으로 김용은 전도사가 1949년 1월 7일 자기 집에서 모친 윤임례 집사와 온 식구가 중심으로 개척한 교회다. 단출한 기와집 가정에서 이웃사람들끼리 모여서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된 두암교회는 김용은 전도사 가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두암마을 전체가 예수 믿는 마을로 변하고 있었다.
1950년 6․25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 김용은 전도사는 임동선 목사를 초청해 부흥집회를 열었는데 인민군이 진주하면서 조용하던 두암마을에 공산당이 몰려들어 비극의 피로 물들이게 된 것이다. 이때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윤임례 집사의 가족을 반동분자로 몰리고 성도들은 위협을 당하고 예배중지령까지 내렸지만, 성도들은 그런 탄압에 결코 굴하지 않았으며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켰다.
1950년 9월 하순 경 공산주의자들의 핍박은 더욱 거세져 김용은 전도사의 동생 김용채 집사는 인민군의 총을 맞고 고부로 옮겨 치료하던 중 우익인사들과 함께 몰살을 당했다.
교회를 지키려는 성도들과 악랄한 공산당 사이의 접전은 그 해 10월 19일 그 막을 내리고 말았다. 몽둥이와 식칼을 들고 몰려온 공산당들은 성도들과 아이들까지 모아놓고 ‘예수쟁이는 미제(美帝)의 앞잡이’라고 미친개처럼 날뛰며 몽둥이를 휘둘러대며 살생을 일삼아 결국 윤임례 집사와 그의 가족들 모두가 참혹하게 살해되었으며 공산당은 교회와 성도들의 집 4채에 모두 짚을 넣고 불을 질렀다. 불태운 재 때문에 며칠 동안 우물물을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날 윤임례 집사와 둘째 아들 김용채, 며느리 조선환 집사 등 일가족이 모두 학살되었으며 정읍농업고등학교 학생회장이던 김용술과 김용은 전도사의 친구 박호준 씨 등 23명이 순교를 당했다. 시신수습 과정에서 본 윤임례 집사는 무릎을 꿇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음 앞에서도 기도하다 칼에 찔려 무참하게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신 주님 말씀 같이 순교자의 피는 두암교회와 한국교회선교역사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윤임례 집사의 아들인 김용은 목사와 동생 김용칠 목사 형제는 성결교단 총회장을 역임하는 등 교단발전에 크게 헌신하였으며 서명선 목사를 비롯해 20여 명이 넘는 목회자가 이 교회에서 배출되기도 하였다.
두암교회는 불에 타고 성도들은 대부분 죽었기 때문에 쉽게 복구되지 못하다가 1964년 두암마을 출신인 김태곤 전도사의 집에서 주일학교를 열면서 재건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불타버린 교회는 1966년에 비로소 재건을 시작하여 가매장했던 순교자들의 무덤을 교회 동산으로 이장하고 23인순교자 합장묘를 만들게 되었으며, 1977년에는 그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며 “23인의 순교자기념탑”이 세워졌다. (2009.4.13.연합기독뉴스/박경진 장로)
10. 오늘도 살아있는 순교자들
순교자는 하나님이 특별히 내리시는 최고의 영예다. 똑같이 순교의 각오로 살아 왔지만 죽지를 못하고 살아있는 순교자도 허다하다. 왜정 35년간, 6․25 전쟁 때, 순교한 이도 많지만, 순교하려 해도 못한 이도 많다. 엘리야 때 엘리야는 바알에게 절을 안 한 사람은 자기 하나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18)
이 땅 위에는 오늘도 순교할 각오로 모든 악과 싸우며 복음을 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평강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살아있는 순교자의 각오로 맡은 일에 끝까지 충성하자. 글쓴이/오소운 목사
오소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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