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퀴즈

베드로후서 1장

헤븐드림 2021. 5. 22. 03:51

 

부르심과 택하심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그리스도의 영광과 성경의 예언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후서의 저자사도 베드로이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3:1,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유다서 17-18절은 본 서신을 인용한 가장 오래된 증거이다. 베드로전서와의 문체의 차이는 그가 베드로전서에서 실루아노를 대서자로 사용한 것과 달리 본서에서 그 자신이 썼거나 다른 대서자를 사용한 것에 기인할 것이다. 베드로후서가 사도 베드로가 쓰지 않은 가짜 서신(僞書)일 수 없음에 대하여, 룸비(Lumby)는 말하기를, “거짓 교사들을 경고하고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 위조자가 고의적으로 그런 사도의 이름을 가지며 또 자기가 주장할 수도 없는 체험을 내세운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문제이다”라고 하였다.

본서의 저작 연대는 베드로전서가 기록된 후 즉 주후 66년 내지 67년경일 것이다. 베드로후서의 특징적 주제이단에 대한 경고이다. 본서는 거짓 교사들과 거짓 교훈을 조심할 것을 경고한다. 베드로후서는 장차 나타날 거짓 교사들에 대해 말하는데 비해, 유다서는 당시에 나타나 활동하고 있었던 거짓 교사들에 대해 말한다.

베드로후서의 각 장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 신앙의 성숙

2장, 거짓 교사들

3장, 주의 날

 

1장: 신앙의 성숙

1-4절, 구원의 내용과 목적

[1-2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절대 복종하는 자임을 고백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종이다. ‘사도’라는 말은 예수께서 사명을 주셔서 보내신 자를 가리킨다. 그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돌아보는 것이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원어는 ‘우리의 하나님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이라고 본다(NASB). 예수님의 신성(神性)은 그에게 돌려지는 신적 명칭들과 속성들, 그가 행하신 신적 사역들, 그가 받으시는 신적 영광 등에서 증거된다. 예수께서는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요 1:1; 20:28), ‘크신 하나님’(딛 2:13), ‘참 하나님’(요일 5:20)으로 불리셨다. 그는 신성(神性)을 가진 구주이시다.

‘우리의 하나님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신 대속(代贖)의 의(義)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의를 이루셨다.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또 그는 우리의 의가 되셨다(고전 1:30). ‘의를 힘입어’라는 말은 ‘의로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 때문에 시작되었고 또 견고케 된다(롬 3:24; 고전 6:1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의 의를 믿는 것이다. 여기에 구원과 영생이 있다.

베드로는 서신을 받는 성도들을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성도들의 믿음은 ‘보배로운’ 믿음이다. 세상의 금은 보화로는 천국과 영생을 얻을 수 없으나 예수님을 믿는 참된 믿음으로는 그것을 얻을 수 있다(막 16:16; 요 3:16).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매우 값진 것이다.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말은 참 믿음이 모든 성도들에게, 남녀노소, 빈부귀천, 또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보배로움을 증거한다. 성도의 보배로운 믿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공통적인 믿음이다. 디도서 1:4, “같은[공통적] 믿음(common faith)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고 말한다. 그는 지식을 강조한다(벧후 1:6; 3:16). 우리가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은혜이며 구원이다.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깨닫고 믿음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구원을 얻었고 마음의 참 평안을 얻었다. 우리는 육신의 건강이나 물질적 여유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누린다(잠 3:7-10; 마 6:33). 이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지식이 더할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3절] 그의 신기한(데이오스)[신적인]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신적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의 일이다. 죄로 인해 죽었던 영혼들을 다시 살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의 신적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에게 참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또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경건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과 그의 이름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또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셨다. 그의 구원의 사역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이루어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또 ‘덕으로써’라는 말은 구원이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 곧 그의 긍휼과 사랑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우리는 이런 구주 하나님을 앎으로써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영생에 이르는 구원을 얻었다.

[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다. ‘이로써’라는 말은 앞절에 말한 ‘영광과 덕으로써’라는 말을 가리킨다.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은 우리가 받은 구원의 내용, 즉 영생과 천국과 부활의 소망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스런 구원을 약속하셨다. 디도서 1:1-2,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신(神)의 성품’이라는 원어(데이아 퓌시스)는 ‘신적인 성품’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그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은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에게 전가된 죄책(罪責) 즉 죄인이라는 신분과 법적 책임을 회복하는 것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전달된 죄성(罪性)을 극복하는 것을 포함한다. 죄책은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음으로 즉시 회복되지만, 죄성은 성화의 과정을 통해 비록 매우 더디지만 점진적으로 극복된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거룩하고 의롭게 창조되었으나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구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구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본성을 새롭게 하셔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의(義)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보배로운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셨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은혜와 평안을 더 많이 누리기를 기도하자. 성도의 성화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동반하며 그때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이 더 풍성할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은 영원한 생명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다. 그것은 영광스런 몸의 부활과 영광스런 천국에서의 영원하고 복된 삶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 세상의 금은 보화와 비교할 수 없고 그런 것들로 살 수 없고 얻을 수 없는 보배이다.

넷째로,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정욕을 인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함을 가리킨다. 예수님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

 

5-11절, 더욱 힘쓰라

[5-7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더욱 힘써’라는 원어는 ‘모든 부지런함과 열심을 보여’라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다음 일곱 가지를 더하는 일에 모든 부지런함과 열심을 보여야 한다.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4:1에서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고 말했다.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더욱 힘쓰라고 교훈한 그 일곱 가지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는 덕이다. 덕은 선한 성품을 가리킨다. 믿음에는 선한 성품이 필요하다. 믿음이 선한 성품을 수반하지 않는다면 죽은 믿음이든지 아니면 심히 부족하고 결함 있는 믿음일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선한 성품, 즉 덕스러운 성품을 갖추도록 힘써야 한다.

둘째는 지식이다. 우리의 믿음은 덕뿐 아니라, 지식도 필요하다. 그 지식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지식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은 자는 성경책을 시시때때로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기를 힘써야 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이 풍성해져야 한다.

셋째는 절제이다. 절제는 지식에 있어서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 지극히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또 그 지식은 전적으로 성경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밝히 계시된 것만큼만 하나님을 알도록 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성경에 계시해주시지 않은 것을 지나치게 상상하거나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 고린도전서 4:6,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또 절제는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에 있어서도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는 즐거움, 결혼의 즐거움 등 삶의 즐거움을 주셨다. 성경은 사람이 먹고 마시며 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며(전 2:24; 3:13; 5:18; 8:15) 또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을 복이라고 말한다(전 9:9). 그러나 우리는 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육신적 즐거움에 빠지지 않는 절제가 필요하다. 고린도전서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넷째는 인내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겪는 여러 가지 고난 중에서 오래 참고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말세에 대 환난의 시대에 믿음과 인내를 가져야 한다(계 13:10). 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도 인내가 필요하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성경은 말한다(고전 13:4, 7). 우리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기다릴 때에도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한다. 신앙생활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다섯째는 경건이다. 경건은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을 알고 항상 그를 의식하며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태도이며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그것은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하기를 힘쓰며 하나님과 항상 교제하고 그와 동행하는 삶으로 나타난다. 모든 신자는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

여섯째는 형제 우애 혹은 친절이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8에서 우리가 서로 같은 생각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형제를 사랑하고 상대에 대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친절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 사도 바울도 로마서 12:19에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라”고 가르쳤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친절하게 대하기를 원하신다.

일곱째는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말(아가페)은 ‘형제 우애’라는 말(필라델피아)보다 더 강한 뜻을 가진다. 이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 즉 ‘무조건적, 희생적 사랑’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사랑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고 우리에게 용서를 비는 형제의 죄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명하셨다(마 5:44; 18:22).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 13:10).

[8-9절]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遠視)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만일 우리에게 위와 같은 내용들이 있으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 지식에 있어서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겠지만,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내세와 천국을 바라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고 하나님께서 그의 옛 죄들을 깨끗케 해주셨음을 잊어버린 자와 같다.

[1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이는]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아니할 것임이니라].

사도 베드로는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다시 강조한다. ‘부르심과 택하심’은 우리의 구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얻은 증거는 우리의 참된 믿음과 회개의 열매이다. 우리는 믿음에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을 공급함으로써 우리의 구원을 굳게 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우리가 이것을 행하면 언제든지 실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종은 참된 믿음의 증표이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순종의 행위를 통해 자라고 강해진다. 성도의 승리의 비결은 계속 순종하기를 힘쓰는 데 있다.

[11절] [이는]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주실 것임이니라].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소유하면 우리 주와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 즉 영광의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한 행실의 열매가 없는 사람은 천국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선한 행실의 열매가 있는 사람은 그 확신을 간직할 것이다. 성도의 구원은 순종 생활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성도가 범죄하면 구원의 기쁨과 확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처럼, 그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며(시 51:12) 구원의 확신을 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님 믿는 자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기를 더욱 힘써야 한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하는 이런 덕목을 갖추도록 힘써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한다. 선한 행위가 없는 자는 소경과 같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과거의 모든 죄들을 다 용서하셨음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선한 행위는 우리의 구원을 더욱 확실하게 한다. 주께서는 행함이 없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다고 말씀하셨다(마 7:24-27).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심을 안다고 말했다(살전 1:2-4).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과 택하심을 선한 행위로 확증해야 한다.

셋째로,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 우애와 사랑의 선한 행실들을 가진 성도들은 비록 그들 속에 죄성이 남아 있고 마귀의 시험이 많은 세상에 살지만 실족하지 않고 천국에 넉넉히 들어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의 교훈대로 순종하는 자는 승리할 것이다.

 

12-21절, 예수님의 영광에 대한 두 가지 증거

[12-15]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사도 베드로는 서신을 받는 자들이 이미 복음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위에 섰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믿어 보려고 하는 자들 외에는 많은 신자들이 그러할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이 복음 진리를 알고 있어도 그것들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하며 그것을 위해 이 서신을 쓴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주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요 21:18-19) 자신이 장막을 벗어날 시간 곧 자신의 죽음의 시간이 임박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성도들을 교훈했다.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유언적 내용이다. 그는 자신의 죽은 후에도 성도들에게 필요한 때 이 진리가 생각나게(3번) 하려고 죽기 전에 힘써 교훈했던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이 있다. 여기에 좋은 책들이나 설교 녹화물들이 필요한 이유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며 좋은 책들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늘 기억하며 교훈을 얻고 은혜와 유익을 얻어야 할 것이다.

[16-18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사도 베드로는 특히 하나님의 복음 진리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과 강림하심 즉 그의 성육신(成肉身)에 대해 말한다. 그는 예수께서 본래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요 17:5) 사람으로 내려오신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소유한 분이심을 증거한다(요 1:14).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 내용이다.

베드로는 이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에 관한 진리가 ‘공교히 만든 이야기’ 즉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자신들이 그의 크신 영광을 친히 본 자라고 증거했다. 그것은 마태복음 17장이나 다른 복음서들에 기록된 대로(막 9장; 눅 9장) 그와 다른 두 제자들이 주와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주께서 영광스럽게 변화되셨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로부터 친히 음성으로 그에 대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증거하신 내용이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음성으로 그를 증거하신 것이었다. 이것은 확실히 예수님에 대한 한 중요한 증거이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얻으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신적 영광에 대한 목격자이었던 사도 베드로의 증언이다.

[19-21절]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注意)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經)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전통본문)말한 것임이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신적 영광에 대한 더 확실한 증거를 말한다. 그것은 구약성경의 증거를 가리킨다. 그것은 그가 친히 보았던 증거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라고 표현한다. 성경은 사람의 그 어떤 증거보다 더 확실한 증거의 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확실함을 위해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것은 어두운 곳을 비취는 등불과 같다. 어두운 밤에 불빛이 없다면 길 가는 자나 길을 찾는 자는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할 것인가? 죄로 인해 어두워진 세상에 성경이 없었다면, 우리는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과 우리를 죄와 불행과 죽음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바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라는 말은 우리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할 때 바른 깨달음이 생기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홀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과 특히 그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속죄의 복음 진리를 바로 깨달을 때까지 성경을 가까이 하며 읽고 묵상해야 할 것이다. 누가복음 24:25-27,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詳考)[자세히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사도 베드로는 성경이 예수님에 대한 중요한 증거이지만 그것을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성경은 사람이 주관적으로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책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해석해야 할 책이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자가 알아야 할 매우 기본적인 일이다. 성경이 중요한 만큼 그것을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경 해석의 건전한 방법은 첫째, 문법적으로 해석하고 둘째,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이해하면서 해석하고 셋째,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게 해석하는 것이다. 물론,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므로 성경을 연구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영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구하면서 읽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이다.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 곧 선지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받고 기록한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딤후 3:16).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교훈을 항상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책들로 남아 있다. 그것이 신약성경이다. 신약성경은 사도들의 교훈이다. 사도들은 우리 곁에 없지만, 우리는 그들의 책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책들을 남겨두신 것은 우리로 그들의 교훈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하심이다.

둘째로, 우리는 특히 사도들의 증언인 신약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믿고 확신하자. 그들의 증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친히 본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가 행하신 기적들을 친히 보았고 또 그가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 음성으로 그에 대해 증거하신 것을 들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과 영광에 대한 목격자들이며 증인들이었다.

셋째로, 우리는 그들의 증언들보다 더 확실한 성경의 증거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을 믿고 확신하자. 성경은 창조자와 섭리자이신 하나님에 대해 증거하였고 그의 보내시는 신적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였다. 구약성경은 모세가 그것의 처음 다섯 권을 쓴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책으로 인정되었다. 구약성경의 권위는 확고하였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믿는 자들은 그 성경이 증거하는 신적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잘 깨달을 수 있다. 메시아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신 아버지”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었다(사 9:6).

'성경공부 퀴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드로후서 2장  (0) 2021.05.30
삼위일체에 대하여  (0) 2021.05.23
베드로전서 성경퀴즈 2  (0) 2021.05.22
베드로전서 성경퀴즈 예상문제  (0) 2021.05.22
베드로전서 4장-5장  (0) 202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