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그리스도인다운 생활
1-6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
[1-2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전통사본)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무장하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성도를 가리켰다고 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기 때문에(3:18) 우리도 같은 마음과 생각으로 무장해야 한다. 즉 우리도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겨야 한다. 로마서 6: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고난을 받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하심이었다. 사람의 욕심은 죄를 만드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사람의 욕심을 따라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선한 생활을 해야 한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갈라디아서 5:16-17,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절]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할 이유는 이방인의 뜻을 좇아 죄악된 생활을 한 것이 지나간 때로 족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의 삶에 이끌리고 거기에 빠져 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지난날의 죄악된 삶으로 족하다. 그 죄악된 삶도 부끄러운 것뿐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말고 죄의 낙을 누리며 살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죄악된 일에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경고하기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였다(롬 8:13). 성도에게도 죄의 충동은 있으나 성도는 더 이상 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죄악된 삶은 지나간 때로 족하다!
[4-5절]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성도가 세상 친구들과 같이 극한 방탕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를 이상히 여기며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 친구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주께서는 마지막 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심판주이시다. 디모데후서 4:1-2,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의인들과 악인들은 마지막 날에 다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사도행전 24: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마지막 날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자기들의 죄들을 다 직접 고백하게 될 것이다.
[6절]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사람들을 따라, 사람들이 받는 것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장차 죽은 자들이 다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현재 죽은 자들에게도 그들이 살아 있었을 때 복음이 전파되었다. 비록 그들이 죽었지만 그들 중 어떤 이들은 그 영이 영생의 생명이므로 살아 있다. 육체로는 사람들이 받는 것처럼 심판을 받아 죽었지만, 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죄에 대해 죽은 줄 알고 죄를 멀리하며 더 이상 범죄치 말아야 한다. 요한일서 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계속]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우리는 우리의 죄악된 삶이 지나간 때로 족한 줄 알고 우리의 남은 날들을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두려워해야 한다.
7-11절, 근신, 사랑, 대접, 봉사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세상의 만물은 시작과 끝이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때가 그 시작이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때가 그 끝이다. 구약성경의 문자적 연대 계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지 4천년이 지난 때에 예수께서 오셨고 신약시대가 시작되었다. 사도들은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말했다. 고린도전서 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요한일서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신약시대는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할 시대이다.
이 세상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생활을 힘써야 한다. 본문은 그런 삶을 서너 가지로 증거한다.
첫째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의 일과 쾌락에 빠져 있거나 술 취하고 방탕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깨어 기도하기를 힘쓰는 것을 말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의 일들에 대해 그에게 감사하며 우리의 부족과 잘못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이해하고 그 뜻을 행할 힘을 간구하여 얻는다.
[8절]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둘째로, 우리는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이것은 주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순종하는 일이다.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다(롬 13:10). 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잠 10:12). 주께서는 새 계명을 주시기 전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 서로 용서하는 본을 보여주셨다. 사도 바울도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 말했다(고전 13:4, 7).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오래 참고 용서하며 사는 것이다.
[9-10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셋째로, 우리는 서로 원망하지 말고 대접해야 한다. 대접하는 것은 서로를 마음으로나 말로 너그럽게 대하며 상대가 아프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방문하고 물질로 돕는 것이다. 성도가 서로 대접하는 것은 받을 것을 예상하고 베푸는 것이 아니고 그냥 베푸는 것이다. 계산적이지 않게 대접하는 자는 상대가 자신을 위하지 않을 때라도 마음이 상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재능과 건강과 재물을 주셨다. 우리가 처한 가정 환경이나 사회 환경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다.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의 것인 양 우리 마음대로 쓰지 말고, 하나님의 것들을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서로의 유익과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리는 기꺼이 드리는 심정으로 서로 봉사해야 할 것이다.
[11절]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주신 말씀으로 말하는 것처럼 하고 봉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주신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범사에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영광과 권능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영원히 하나님께만 있다.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마지막에도 “[대개=이는=왜냐하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있사옴이니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이 세상의 종말이 가까움을 느끼면서 힘써야 할 일에 대해 몇 가지 교훈하였다.
첫째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들과 육신의 쾌락에 너무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세월을 아껴야 한다. 물과 같이 흐르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선용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경건한 생활을 힘쓰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깨닫고 그 뜻을 힘써 행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주께서는 친히 우리를 사랑하셨고 또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우리는 거룩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또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하며 우리의 사랑이 식어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 상대의 부족과 연약을 용서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서로 원망하지 말고 상대를 대접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무엇을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마음으로, 말로 서로를 향해 너그럽게 대하기를 힘쓰며 시간과 물질로 서로 섬기기를 힘써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섬겨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재능과 지식, 건강과 시간, 물질을 가지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섬겨야 한다. 우리는 먼저 믿는 형제들을 또 힘있는 대로 모두를 섬김으로써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12-19절, 성도의 고난
[12-13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고난들이 있다. 그것은 때때로 금광석을 제련하는 용광로의 불같은 고통스런 것도 있다. 용광로에 넣어진 금광석에서 불순물이 제거되고 마침내 순금이 나오듯이, 성도들이 당하는 불시험도 성도의 죄악성과 연약성을 제거하고 더욱 경건하고 거룩하며 선하고 진실한 인격이 되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서 불시험을 당할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욥기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사도행전 14:22,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성도에게 닥친 고난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든지, 순수한 시련의 고난이든지 간에, 고난은 성도에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성도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은 2천년 전 십자가 위에서 이미 완성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고난들은 성도에게 남아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고 의로우셨으나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다. 이와 같이 성도는 의롭고 선하게 살지라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 마태복음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골로새서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러므로 성도는 의의 고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인 줄 알고 즐거워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우리가 참 성도로서 그를 영접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14-16절]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는 그들에게 비난을 받으셨으나 너희에게는 영광을 받으셨느니라](전통사본).11)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이 일로](전통사본)12)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들이다. 베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그들 위에 계심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임이 확인된 자들이다. 세상 사람들은 성도를 핍박하고 욕할 때 그들 위에 계신 성령도 비난하고 욕한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주 하나님과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고 섬기며 그에게 영광 돌렸다. 성도는 확실히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 되었다.
성도는 자기 잘못 때문에 고난을 당해서는 안 된다. 즉 그는 살인하거나 도적질하거나 악을 행하거나 남의 일의 참견하다가 고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도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당할 때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17-18절]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하나님의 집 곧 교회 안에서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교회 안에 섞여 있는 가라지와 염소 같은 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일 것이다. 성도에게는 단지 하나님의 징계나 단련이 있을 뿐이다(히 12:8). 그러나 현재 성도에게 엄한 징계나 단련이 있다면,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에게 마지막 날에 내려질 심판은 얼마나 더 엄중하겠는가? 또 의인이 고난 중에 겨우 구원을 얻는다면, 경건치 않은 죄인들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
[19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이란 앞에서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12절),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13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것’(14절),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는 것’(16절) 등으로 표현되었다. 성도의 고난은 아무리 불같은 시험일지라도 성도를 단련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이다.
고난 중에서 성도가 취해야 할 또 하나의 태도는, 끝까지 선을 행하는 자로서 처신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신실하신 조물주께 부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도들에게는 고난이 있다. 그것은 원광을 용광로에서 제련하듯이 그들을 시련하는 것이다.
둘째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그 속에 남아 있는 찌끼 같은 죄악된 성질들과 연약성을 제거하여 좋은 인격을 만드는 단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또 그것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의미가 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믿는 일 때문에 선하게 살면서도 당하는 고난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셋째로, 성도들은 고난을 당할 때 우선 그 고난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고난을 통해 순금과 같이 신앙 인격의 단련을 받기 때문이다. 또 성도들은 그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또 그들은 고난 중에도 끝까지 선하게 살면서 자기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해야 한다.
5장: 장로들에게 주는 교훈
1-6절, 장로들과 젊은이들에 대한 권면
[1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장로들’은 일반 성도들 가운데서 감독자로 선택되어 세움 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을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증거한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들이었고 그의 부활의 증인이기도 하였다. 사도행전 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2:32,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15,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그들은 또 주의 재림 때에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자들이었다. 모든 참된 성도들은 주의 재림 때에 그 영광에 참여할 자들이다.
[2-3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13)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利)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준비된 마음으로, 열심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본문의 장로는 목사와 장로를 다 포함한다. 신약성경에서 장로는, 장로교 헌법에 표현한 대로, 설교와 치리의 일을 맡은 목사와 치리의 일만을 맡은 장로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말했다(딤전 5:17). 부활하신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었다. 요한복음 21:15, “내 어린양을 먹이라.” 21:16-17,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장로의 직무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일이다. 양무리를 치는 일 즉 목양(牧羊) 혹은 목회는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것은 담임목사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니고 장로들에게도 맡겨진 일이다. 그들은 다 목양의 직무를 맡았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두렵고 떨림으로 성실하게 그 직무를 다해야 한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칠 때 다음 세 가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첫째로, 그들은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해야 한다. ‘부득이함으로’라는 원어(아낭카스토스)는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선한 일이라도 우리가 억지로, 마지못해,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한 일들 중에 가장 귀한 일인 이 목양의 일을 우리가 억지로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장로들은 이 직무를 억지로, 단지 의무감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수행해야 한다.
둘째는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해야 한다. 목사들과 장로들은 교회의 일을 함에 있어서 사사로운 이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 봉사는 항상 순수하고 깨끗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사들과 장로들은 가능하면 교회 재정에 직접 관계하지 말고 만일 재정에 관계할 때에는 돈 계산에 있어서 정확하고 깨끗해야 한다. ‘즐거운 뜻으로’라는 원어(프로뒤모스)는 ‘준비된 마음으로, 열심으로’라는 뜻이다. 장로의 직분을 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동기와 준비된 마음과 열심이 필요하다.
셋째는 맡겨진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사람이 교인들의 대표자가 되고 인도하는 위치에 있을 때 다른 이들에 대해 높은 마음을 가지고 권위 의식을 가지고 대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악덕이다. 주께서는 이런 점에 대해,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교훈하셨다(마 20:25-27). 장로들은 주장하는 자세를 갖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4절]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목자장은 예수님이시다. 그가 다시 오실 것이다. 그의 재림의 날에 그는 충성된 종들에게 영광의 상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상 주시는 분이시다(히 11:6). 주 예수께서 마지막 날 복음의 일꾼들과 교회 장로들에게 주실 영광은 시들지 않는 영광이다. 그러므로 현재 목사들과 장로들은 주께서 주신 직분을 수행하는 일에 있어서 힘들고 어려운 점들이 많을지라도 낙심치 말고 목자장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고 또 우리는 부족투성이이지만 감히 그의 상 주심을 기대하며 충성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충성해야 할 것이다.
[5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서로에게 순복하고](전통사본)14)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엥콤보사스데)[옷을 입으라](원문, KJV, NASB, NIV).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드로는 장로들에 대한 권면과 더불어 젊은이들에 대한 권면을 하였다. 젊은이들에 대한 권면은 일반 교인들에게도 적절한 교훈이다. 베드로는 젊은이들에게 세 가지의 권면을 하였다.
첫째로,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복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성도들이 받아야 할 교훈이다.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특히 젊은이들은 대체로 아직 인생의 고난들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만하기 쉬운 때에 있다. 고난의 환경은 대체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양약(良藥)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법을 배움으로 지혜를 얻어야 한다.
둘째로, 젊은이들은 서로에게 순복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5:21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교훈하였다. 또 빌립보서 2:3에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교회의 구성원이 된 우리 모두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복종하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며 그러할 때 교회는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일치단합된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셋째로, 젊은이들은 겸손으로 옷 입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잠언은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이 존귀의 앞잡이라고 교훈하였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는 자신이 부족한 사람인 것을 알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깨닫는 자이다. 이렇게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장로들에게 순복할 수 있고 또 서로에게 순복할 수 있다.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주권자이시다. 그가 세우시면 세워질 것이고 그가 파하시면 파해질 것이다. 그가 높이시면 높아질 것이고 그가 낮추시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신명기 32: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사무엘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에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들을 결코 쓰지 않으실 것이다.
본문은 목자와 양의 관계에 관해 교훈한다. 첫째로, 목사와 장로는 좋은 목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고, 더러운 이익을 위해 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과 열심으로 하고, 맡겨진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목사들과 장로들은 이 교훈을 명심하고 그 교훈대로 힘써 실천하면 좋은 상을 받을 것이다. 좋은 목사들과 장로들을 둔 교회들과 양들은 참으로 복되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교인들은 좋은 양이 되어야 한다. 좋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잘 듣는 자이다.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그러려면 양들은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본문은 젊은이들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또 서로에게도 순복하고 겸손으로 옷을 입으라고 교훈한다. 이것은 모든 교인들의 의무이다. 모든 교인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목사들과 장로들에게 순종하며 또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교만은 불순종과 거역을 만들고 멸망에 이르게 하지만, 온유와 겸손은 순종을 가져오고 영생에 이르게 한다. 양들은 목자들의 바른 교훈에 즐거이 순종하고 따르며 행해야 할 것이다.
7-14절, 하나님만 의지하라
[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돌보심]이니라.
사람이 세상을 사는 데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염려거리가 항상 있겠으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시며 특히 자기 백성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며 날마다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모든 염려를 그에게 다 맡겨야 한다.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8-9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마귀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대적하는 자이다. 그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대적한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불신앙에 떨어지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서로 미워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그는 우는 사자같이 성도들을 삼키고 죽이며 멸망시키려고 한다. 어떤 때는 질병으로, 또 어떤 때는 가난으로, 또 다른 때는 가정적, 사회적 환난으로 성도들을 시험한다.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던 시대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거나 욕심을 품거나 세상이나 돈을 사랑함으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근신하고 깨어서 믿음을 굳게 하고 도리어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성경 읽기와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를 물리치는 검이다. 주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 기록된 성경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물리치셨다(마 4:4, 7, 10).
[10-11절]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권세와 영광] 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도들은 세상에서 마귀의 시험과 고난을 당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은혜가 풍성하시고 충만하신 하나님이시다. 그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부르셨고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다. 그것이 바로 영광스런 천국이며 또 거기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것이다.
영원한 천국에 비교해 볼 때, 성도들이 현재 당하는 고난은 ‘잠깐 고난’에 불과하다. 그것은 100년의 일생 중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천국과 영생은 영원하고 영광스럽다. 그러므로 바울도 고린도후서에서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말하였다(고후 4:17-18).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뜻하신 바를 남김 없이, 실패 없이 다 이루신다.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에는 우리의 구원이 있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성령을 보내어 일하게 하셨다. 이렇게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친히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케 하실 것이 분명하다. 과연 그러하다.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고 든든한 보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치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힘써 순종하자.
[12절]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이것이 너희가 그 안에 굳게 선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라].17)
실루아노는 바울의 협력전도자이었던 실라를 가리키는 것 같다(행 15:22; 고후 1:19; 살전 1:1; 살후 1:1). 실루아노는 베드로전서가 보내졌던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등의 성도들에게(벧전 1:1) 신실한 형제로 인정받고 있었고 베드로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또 그는 지금 베드로를 위해 이 서신을 대필(代筆)하고 있다. 실루아노가 실라라면, 그는 바울의 협력자인 동시에 베드로의 협력자가 되었다. 그는 바울이 전한 복음과 베드로가 전한 복음이 동일한 복음이라는 것을 잘 증거하는 인물이 된 셈이다.
베드로는 또 자신이 증거하고 권면한 내용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했다. 헬라어 전통사본에는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는 구절이 ‘너희가 그 안에 굳게 선’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참된 은혜를 수식하고 있다. 즉 베드로는 자신이 편지를 보내고 있는 성도들이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안에 굳게 서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확신 가운데서도 그는 또 그 은혜의 말씀으로 그들을 권면하고 격려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아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또 듣고 또 음미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13-14절]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멘.]
‘바벨론에 있는 교회’는 문자 그대로 바벨론[앗수르-바벨론 지역]에 있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 같다. 복음이 널리 바벨론에까지 퍼져 교회가 세워졌던 것 같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또 마가에 대한 언급도 앞절에 실로아노에 대한 언급과 같이 초대교회의 같은 신앙과 같은 사랑의 교제를 나타낸다. 마가는 사도 바울에게 협력자이었고 사도 베드로에게도 그러하였고 본절에서 ‘나의 아들’이라고 불리었다. 진정한 기독교는 일치된 진리와 일치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진리와 신앙을 확인하고 확신하고 이 진리와 신앙 안에서 일치된 기독교를 확증하고 혹은 회복시키고 그것을 널리 전파하고 후대에 전수시키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모든 염려를 그에게 맡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다. 또 그는 우리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 자이시다. 우리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짐을 그에게, 오직 그에게만 맡겨야 하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염려하기보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근신하고 깨어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마귀는 하나님과 온 교회의 대적자이며 우는 사자같이 세상을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말씀과 기도로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셋째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는 우리를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것을 작정하셨다. 그 계획은 실패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는 세상의 복잡한 현실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터를 견고케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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