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모화(思母花)(함동진)

헤븐드림 2021. 3. 20. 06:04

 

사모화(思母花)



                함동진



 어머니께서 우리 어린것들의 눈에 눈물을 머금게 하고 32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후 40여 년 더 지난 세월, 회갑을 바라다보며 늙어 가는 아들이지만 어머니 생각을 하면 언제나 눈시울이 화끈거리며 마음은 울먹거린다. 어린것들 때문에 차마 눈을 못 감고 숨지기 괴로워하시던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하랴. 생후 8개월 된 젖먹이 막내, 그 위로 세 자매와 제일 맏이로 13세된 소년인 나, 어머니의 운명과 함께 세상은 깜깜하게 무너져 내렸었다. 6·25전쟁으로 피난살이 객지에서 굶주림과 헐벗음의 고생이 우리들의 어미를 앗아가게 한 비운이었다.
  나의 어머니 그 분은 나리꽃 같은 분이시다. 비록체구는 작았지만 예쁘장한 여인으로 목소리가 청아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일구어 내는 가창력을 지녔었다.


  우리 가족들이 피난생활을 하던 충남 논산 부적 충곡리는 개척교회를 시작하신 아버지를 따라 든 곳이다. 그 곳은 전쟁 중 몇 년째 계속된 가뭄과 흉년으로 기근이 극에 달해 인간들조차 고갈되어 가던 곳으로만 내 기억 속에 남아 넘나든다. 바로 그러한 곳에서 나의 어머니는 나리꽃 같은 품새로 32년의 인생을 아물어 버리고 졌다. 그때의 아버지는 40대가 채 못된 혈기왕성한 청년말기로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성으로 복음전파에 열을 올렸다.
  나는 주일날이면 산이 헐벗어 황토흙이 흘러내리는 주위의 야산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생하는 나리꽃을 한 묶음 꺽어다 교회의 화병에 꽂아 강대상 위에 얹어 놓았다.


  나리꽃은 연주하는 황금나팔 모양으로 향기가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예배드리는 교회당 안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냈다. 어머니의 찬양송은 백합향이 퍼지듯 매끄럽게 신도들의 심금을 울리며 감동으로 흐르는 선율로 찾아들었다. 
  나리꽃은 '순결'이란 꽃말을 지녔듯 매우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풍기면서도 깔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꽃은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꽃이기도 하다.
  예수는 인간의 존귀함과 그 가치성을 나리꽃을 들어 비유하였다. 부강의 상징이요, 영화의 극치인 솔로몬왕의 영광으로 입은 화려한 의상일지라도 나리꽃의 아름다움과는 비교될 수 없다고 했다.(마태복음 6:28, 어느 성서 학자들은 이 꽃을 팔레스타인 들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는 붉은 색 아네모네꽃을 지칭한 것이 아니냐는 해설도 있기는 하지만‥‥‥.)
 

어머니는 평안북도 선천사람으로, 조선인을 학대하는 일본인 감독을 살해한 후 도피생활을 하던 풍운아 아버지와 만나 결혼을 하였다. 아버지는 잘 생긴 미남형 청년이며 바람둥이이고 술고래였다. 그러한 아버지는 외조모의 전도에 의해 기독교인으로 개종케 하고 목사가 되게 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목사가 되기까지 온갖 시련을 극복하며 내조하였고, 목사가 된 후에 가난하고 쪼들리는 살림에도 목사의 선량한 사모로 인상 한 번 흐트림 없는 후원자였다.
 

나리꽃은 백합과에 속하는 초본으로 참나리라고도 부르며 산과 들에 자생하고 관상용으로 정원에 재배하기도 한다. 잎은 가는 댓잎 모양새이고, 꽃은 T자 모양의 수술 아래에 씨방을 두고 종을 닮았다. 그 당시 시골에는 흰 나리꽃을 가꾸는 집을 찾기 힘들었고 흰나리 자체를 만나기도 힘들었다. 그러므로 야생나리꽃이 흰나리 대신에 자리매김을 했던 것이다.
  나는 나리꽃을 볼 때마다 사모하게 된다. 나의 사모화인 한국의 흰 나리꽃은 구미의 사람들에게 성모백합으로 대량 수출을 하기도 한다. 성모백합은 성모마리아가 부활한 예수의 무덤에 찾아왔을 때에 그 무덤에 피어 있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로 인해 백합은 성모를 상징하며 부활의 꽃으로 교회를 장식하는 꽃으로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흰 나리는 한국에 있어서 외화 달러벌이 꽃으로 농촌의 소득을 증대하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중국의 전설에 , 조래산(阻來山)에서 유생인 한 선비가 수도하던 중 모령의 여인에게 밤다마 유혹당하는 몽유병에 시달리다가 백합 뿌리를 캐어 달여먹고 정신질환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노이로제, 정신이상, 집착병 등을 백합병이라 하고 이를 나리뿌리로 다스리는 것이다.
  왕유라는 사람은 그리움과 사무침에 그칠 줄을 모르는 눈물을 마르게 하고자 백합을 취하였더니 눈물이 그쳤다고 한다. 나리는 지루제(止淚劑)로도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백합은 각종 감정이나 정신이상에 효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종기나 종독에도 효험이 있다고 초본강목에는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현대의 과학이 합성해 낸 기존의 항암제보다도 1백 배 가까이 더 강력한 항암효과를 지닌 성분의 물질을 백합에서 추출해냈다는 것이다. 암이란 것은 억압을 받은 사람의 오장육부 속에서 또는 기타 인체부위속에서 생기는 종기가 아니겠는가. 백합은 이러한 정신적 고통에서 비롯된 질환들을 치유했다는 전설이 그르지 않음을 현대의 과학도 입증한 셈이다. 다른 의미로 본다면, 예수가 인류의 질고와 죄로 인한 사망의 고통을 대신 짊어져 죽고 다시 부활한 것은 무덤 속에 피어난 백합의 전설을 합리화 시켜주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우리 어린 형제들은 어머니를 잃고 슬픔, 배고픔, 정신적 방황 속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았으면서도 별 탈 없이 장성한 것은 나의 사모화(思母花)인 나리꽃이 저 천상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지켜주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사모화 나리꽃은 전세계의 사람들도 공통으로 사모하는 꽃이 아닌가 하고 생각게 된다. 백합은 한국에서는 '나리',일본에서는'유리',중국에서는'마리',영어로는'릴리'라 부른다. 희한하게도 '리'자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꽃이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길쌈도 아니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질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신약성서 마태복음 6장 중에서) 나는 어머님이 그리운 날에는 나의 사모화 나리꽃을 화병에 꽂는다. 방안 가득히 퍼지는 어머니의 젖냄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