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울음
이진환
숲에서 하나 둘 나무를 세고가면
나무가 되었다 숲이 되었다 고요가 되었다
고요가 깊어지자 웅크리고 있던 숲이 안개처럼 몸을 푼다
불신의 늪이 꿈틀거려서다
한때, 뿌리 뻗친 늪에서 마구잡이로 우듬지를 흔들어대다
새 한 마리 갖지 못한 나무였다
눈도 귀도 없는, 그 몸속으로
흘러 다니던 울음을 물고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릴 적 어둑한 논둑길에서 두려움을 쫓던
휘파람소리와 함께 가슴을 졸이고 나오던 눈물이었다
울음의 반은 기도였으므로,
안개의 미혹(迷惑)에서 깨어나는 숲이다
고요란 것이 자연스럽게 들어서서 허기지는 저녁 같아
모든 생명이 소망을 기도하는 시간이 아닌가
두려움의 들녘에서 울던 오래된 울음이
징역살이하듯 갇혔던 가슴으로 번지고 있다
기도를 물고 돌아오는 새들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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